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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코카콜라

멜로 영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스 영화 ‘남과 여’(1966년)를 보면 주인공들이 그들의 자녀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과 여는 각각 와인을 즐기는 와중에 남자주인공 장은 아들 앙뚜완에게 어떤 음료수를 각각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로 뭐라고 하는지를 묻고는 아이들을 위해 그 음료수를 주문해준다. 그 음료수는 바로 코카콜라. 1966년의 작품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 당시면 이미 프랑스에 가장 미국적인 음료 코카콜라가 대중적인 기호식품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랄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코카콜라의 프랑스 입성이 ‘남과 여’의 정적인 전개만큼 평화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먹을거리에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에게 있어 코카콜라는 처음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타락한 음료였다. 1950년대 전후 미국 대중문화의 유럽으로의 유입시기에 발맞춰 진입을 시도한 코카콜라는 프랑스의 좌우를 넘어선 연합전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와인 등 전통음료산업의 위기감,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거부, 특히 미국식 대중문화의 거부감 등 온갖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있었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게 뭔지, 또는 공화제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눌 때면 우리가 미국이라는 처녀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에 대해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곤 했다. 우리에게 그 처녀란 미국이었고 민주주의였으며, 코카콜라, 햄버거, 청결한 잠자리, 혹은 미국의 생활방식이었다.’[코카콜라의 신화, 프레드릭 앨런 지음, 현준만 옮김, 열린세상, 1996년, p63]

<신은 나의 동반자>라는 책에서 콜로넬 로버트 L. 소코트가 적은 글을 재인용한 글이다.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이들이 한때 그들의 슬로건을 The United Taste of America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만큼이나 코카콜라를 소비하는 이들도 코카콜라를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였음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로 대표되는 그 반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카콜라 그 자체가 이미 1950년대에 미국적 대중문화의 대표적 코드 중 하나였음은 자타가 모두 인정하였던 셈이다.한편 프랑스와 코카콜라 간의 무역전쟁은 뇌물공세, 금지입법, 이념전 등 다양한 양상을 띠더니 급기야 양국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미국언론은 프랑스를 쇄국주의라 비난했고 먀살플랜의 원조금을 삭감시켜야 된다는 주장까지 해댔고, 급기야는 프랑스가 코카콜라를 반대하는 이유는 프랑스 좌익들이 코카콜라의 나라를 좋아하지 않아서라는 매카시즘까지 동원되었다. 결국 미국 내 프랑스상품 불매운동이라는 무역전쟁으로 발전한 이 사태는 코카콜라의 프랑스 내 판매를 실질적으로 허용하는 새로운 보건법의 제정으로 막을 내렸다. 코카콜라의 승리이자 우익의 승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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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a-Cola logo” by The Coca-Cola Company – Brands of the World.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 뒤로 코카콜라의 세계화는 거칠 것이 없었다. 미국 대중문화는 모든 대중문화 중 선두에 서있었고 코카콜라는 그 상징이었다. 그 결과로 코카콜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이를 통해 200여 나라에 500여개가 넘는 브랜드의 음료를 팔고 있으며, 회사 전체로는 총 매출 약 320억 달러(연차보고서  참조, 2008년 기준)의 초국적 매머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 종류의 음료수 브랜드가 쌓아올린 거대한 제국의 현황이다. 한때의 적들도 이제는 코카콜라의 길들여진 입맛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싹트고 있다. 한때 월스트리트저널이 진지하게(!) 몸매가 너무 좋아서 인구의 반절 이상이 비만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개진을 한 바 있는 오바마가 바로 그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탄산음료세(Soft-Drink Taxes)`를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비만 퇴치와 관련해 정크푸드와 탄산음료에 과세하자는 주장은 오래전에 제기됐으며 오바마의 이번 발언은 그러한 맥락의 연결선상에 있다.

또한 탄산음료에 대한 과세는 오바마가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헬스케어 시스템 개혁에 대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즉 헬스케어의 전 국민 적용에 따라 필연적으로 증가되어야 할 예산을 탄산음료세로 충원한다는 것이 그들의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현재 코카콜라, 펩시콜라, 카길 등 관련업체들이 이런 제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로비 중이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논리가 과거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국가가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된다는 이념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 vast majority of Americans have heartburn when the government uses the tax code to tell them what to consume, We’re going to remain vigilant.”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은 정부가 소비할 것에 대해 세금을 통해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속 쓰림을 느낀다. 우리는 불침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원문 보기]

아름다운 코카콜라 병 디자인, 그 유려한 로고,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할아버지, 여유롭게 콜라를 마시는 하얀 북극곰 등. 사실 우리는 코카콜라를 마셨다기보다는 코카콜라를 둘러싼 풍경을 향유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환상이 현실에서의 뚱뚱하고 병든 몸에 대한 대가라면 그 대가는 너무 비싼 것도 사실이다. 소비를 만끽할 수 있는 상품이 반드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당위는 없지만, 적어도 선후관계와 사실관계는 알고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자’로서의 덕목일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서둘러 환골탈태하여야할 대표적 기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비관적 견해의 근거

클래리움(Clarium Capital Management LLC를 의미함)은 낙심한 구직자들과 그들이 풀타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실업률을 관찰하고 있다. 해링턴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조정을 통해 본 7월의 실업률은 16%로 노동부에 따른, 널리 보도된 9.4%보다 상당히 더 높은 수치다.
Clarium watches the unemployment rate that accounts for discouraged job applicants and those working part-time because they can’t find full-time positions, Harrington said. July joblessness with those adjustments was 16 percent, according to the Department of Labor, rather than the more widely reported 9.4 percent.
매크로(헤지펀드) 매니저들의 회의적인 생각은 부분적으로 지난해의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여전히 그들의 대차대조표에 팔기 어려운 자산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Macro managers’ pessimism is fueled in part by the U.S. government’s response to last year’s financial crisis, which they say fails to address the root cause. Banks still hold hard- to-sell assets on their balance sheets, the managers said.[Goldman Sachs Wrong on Economic Recovery, Macro Hedge Funds Say ]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가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고 경제회복기에 들어섰다고 전망한 것에 대해 매크로 헤지펀드들의 펀드매니저들이 매우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의 일부분이다. 여러 잡다한 이야기가 적혀있는데 눈에 띄는, 그리고 중요하다 생각되는 두 문단을 꺼내 다시 옮겨적는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위 비자발적인 실업까지 합치면 실제 실업률은 16%에 달한다는 것이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생각이다. 위에서 “낙심한 구직자들(discouraged job applicants)”을 아마도 구직을 포기해서 아예 정부의 실업률의 모수(母數)에 잡아넣지 않은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면 실업률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파트타임들은 엄밀히 말하면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여하튼 어떤 식으로든 그들도 반(半)실업자인 셈이다.

9.4%의 수치도 2차 대전 이후 서구에서, 특히 미국에서는 사상 두 번째로 10%에 근접한 수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장래의 선순환적 경제성장의 동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수치임에 분명하다. 나아가 실제 실업률이 16%에 달한다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노동자들이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는 사회구조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정부의 재정적자로 메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하나 금융부문의 자산부실이 아직도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다는 이야기다. 버냉키가 악취 때문에 코를 부여잡고 줬다는 – 그래서 더 샌 돈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 천문학적인 지원금은 이러한 부실자산을 떨어내고 대차대조표를 건전하게 만드는데 별로 쓰이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부실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파생상품의 특성상 단순히 한 기업의 부실을 뚝 떼어내 털어버리는 것처럼 털어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심각한 실업률과 함께 경제회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변수다. 실업률이 소비성향의 회복의 전제조건으로써 수요측면의 주요변수라면 부실자산을 털어내지 못한 금융부문의 존재는 투자 및 대출에 관한 공급측면의 주요변수다. 금융부문의 부실자산이 돈줄의 공급을 옥죄고 그나마도 소비여력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앞뒤로 꽉 막힌, 정부 혼자서 돈쓰고 난리치는 경제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금융부문의 국유화 논의도 배드뱅크 논의도 다 포기하고 결국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고서는 – 물론 월스트리트에만 – 기껏해야 그 돈으로 보너스 주겠다는 은행가들을 비난하기만 했을 뿐이다. 앞서 두 개의 대안이 더 옳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들이 그 어떤 진지한 논의도 없이 그렇게 신속하게 폐기처분되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실업률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숫자의 장난질로 은폐하려 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 오바마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헬스케어의 개혁이 예상치 못한(?) 반대에 부닥치고 있는 주요 원인은 단순한 이념적 혐오감에서라기보다는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경제실상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들의 증세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 푼이 아쉬운 미국인들은 장래의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보다는 현재의 일자리와 불안감의 종식에 더 목말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헬스케어에 관한 몇 가지 사실

up until now, being sick in America has been a private matter; and as a result, 47 million Americans have no health insurance today. [중략]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reports that thousands of Americans die each year because they are denied the most basic health care.
현재까지 미국에서 아픈 것은 개인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결과 오늘날 4천7백만 명의 미국인이 건강 보험이 없다. [중략] 세계보건기구는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매년 가장 단순한 보건치료를 거절당하여 죽고 있다고 보고하였다.[출처]

미국 헬스케어 서비스의 척박한 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슈피겔이 미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이태리, 영국 등 주요국가의 보건 관련 현황을 비교한 표를 보면(표 보기) 미국의 의료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헬스케어에 대한 비용지출 비중은 영국의 그것의 2배에 육박하며 비교국들 중 최고지만 의료인이나 병원 침대의 수는 최저다. 원인은 지극히 단순하다. 비용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있고 다른 곳으로 새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공적 부조의 빈곤이 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리고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정작 사실을 살펴보면 미국정부의 의료비 지출이 민간부문의 지출보다도 더 크다.

보건개혁 논쟁에 있어 진정 놀랍고 우울한 사실은 이미 우리 정부가 민간 보험회사(35%)보다 더 많은 의료 청구비를 지급하는(총액 중 47%)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화된 의료”에 대한 끈질긴 공포감 유발이다.
One of the truly amazing and depressing things about the health reform debate is the persistence of fear-mongering over “socialized medicine” even though we already have a system in which the government pays substantially more medical bills (47% of the total) than the private insurance industry (35%).[출처]

그런 한편으로 기업 또한 의료비에 대한 부담으로 자체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최근 파산을 선언한 GM의 파산사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에 회사가 부담해야 했던 막대한 유산비용(legacy costs)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중 많은 부분이 “美 의료보험 시스템의 취약성으로 인한 기업의 의료보장비용”이다.(주1)

요컨대 미국의 의료비 지출은 막대하다 그것이 전체 GDP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 그로 인해 경제가 좋아지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 해마다 그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정부부문의 지출이 사적부문의 지출보다 많다. 그런데 그 질적 수준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를 ‘시장의 효율’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시장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주1)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위기에 따른 해고자의 증가는 또한 의료취약계층의 증가로 이어진다.

Health Care

요즘 ‘매사귀차니즘’ 시즌에 접어들어 시사를 따라잡고 있지는 않지만 대강 살펴보기에도 큰 집 미국에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헬스케어의 개혁이다. 시사만화는 헬스케어 개혁의 부진함을 질타하고 있고 오바마는 트위터에서 헬스케어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트위터 이용자들이 의회를 압박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주된 논점은 헬스케어를 여태 그래왔듯이 시장(市場)에서 공급하게끔 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에서 공급하게끔 하여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다만 그 폭에 있어서는 좌우 양쪽에서 치열한 공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폴 크루그먼은 블로그에서 왜 헬스케어가 비시장적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헬스케어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하나는 당신이 언제 치료를 필요로 할지 치료가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런 상태라면 그 치료는 매우 비쌀 수 있다. [중략] 소비자선택은 헬스케어에 있어서만큼은 난센스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보험회사를 믿을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건강, 또는 당신의 건강을 위해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헬스케어에 관해 두 번째 특징은 그것이 복잡해서 당신의 경험이나 또는 비교 구매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중략] 그러나 자유시장의 법칙에 근거해서 성공한 헬스케어의 사례는 없다. 단 한 가지 단순한 이유인데 헬스케어에서 자유시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re are two strongly distinctive aspects of health care. One is that you don’t know when or whether you’ll need care – but if you do, the care can be extremely expensive. [중략] Consumer choice is nonsense when it comes to health care. And you can’t just trust insurance companies either. they’re not in business for their health, or yours. [중략] The second thing about health care is that it’s complicated, and you can’t rely on experience or comparison shopping. [중략]  There are, however, no examples of successful health care based on the principles of the free market, for one simple reason: in health care, the free market just doesn’t work. [출처]

그는 요컨대 헬스케어라는 서비스는 (1) 소비자 스스로가 소비의 시기와 소비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는 특수성과 (2) 서비스의 형태가 복잡해서 – 즉 어떤 의미에서는 표준화가 어려워서 – 과거의 경험치나 비교견적이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우리가 이른바 공공재의 특성이라 이해하고 있는 비경합성이나 비배재성과는 다른 뉘앙스의 특성분석이다. 논리는 수긍이 가지만 일부 이견도 있다.

그런데 내 짧은 지식으로는 여전히 대부분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허다한 보험은 어느 정도는 위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강의 이상과 같은 불확실성 또는 잠재위험은 개인의 여타 삶이나 – 예를 들어 화재로 인한 재산 파괴 – 비즈니스의 분야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에 그것들을 제거(hedge)하기위해 이해당사자들은 보험에 든다. 또한 유사한 성격으로 외환이나 금리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각종 파생상품이 오늘날에도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의 입장을 확대해석하면 이러한 것들의 서비스는 시장에서 공급되어서는 위험하다는 논리로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금융위기는 수요이든 공급이든 간에 통제되지 않은 그러한 각종 보험 성격의 상품들이 기초자산을 – 헬스케어로 치면 보험수혜자? -훨씬 초과하는 시장규모를 가지게 된 바람에 악화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이제 크루그먼은 그것들도 사회화(또는 비시장화)시켜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미국 금융권의 악성자산을 정부에서 인수해주는 것이 욕먹을 일이 아니라는 논리를 간단한 셈법으로 풀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기업의 이자비용이 정부의 이자비용보다 비싸서 할인율이 높으므로 악성자산을 정부에 이전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논리에 찬성하면서 그렇다면 왜 악성자산은 정부에 넘기는 것이 타당하지만 비즈니스는 여전히 사기업 혹은 시장의 영역이라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유지비용은 싸지만 기대수익은 시장보다 적다는 논리를 전개할 수도 있다. 즉 정부는 공적영역의 특징으로 간주되고 있는 – 이 또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수익성의 극대화가 가능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연성 발휘가 핵심 포인트가 아닌 헬스케어는 정부가 떠안아도 되지만 그밖에 유연성이 요구되는 보험시장이나 파생상품시장은 여전히 시장의 영역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왠지 혼자 북치고 장고치는 느낌이지만 요는 이렇다. 건강은 인간의 생로병사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대체소비나 소비감소 등의 시장변동성이 거의 없는 상품이다. 소비자는 그 서비스로부터 역으로 선택당하는 입장이고 그 형태도 매우 복잡하여 시장으로부터 그것을 공급받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고 유지비용이 싼 정부가 공급한다(또는 최소한 비시장화시킨다). 다른 불확실성이나 잠재위험도 그에 상응하긴 하나 그 정도가 덜하고 시장변동성도 있는지라 시장에서 공급하여도 무방하다(또는 더 효율적이다). 이 정도가 나름대로 구성해본 헬스케어 사회화 논리의 보론이랄 수 있다.(주1)

헬스케어는 전체 인류역사에 비추어 볼 때 공적 부조가 국가의 예산 범위 내에서 공급가능하다는 것이 실증된 이후부터 발달한 극히 최근에 시작된 서비스다. 그 기간 동안 대부분 국가는 그 서비스를 일차적으로 시장 바깥의 부문에서 공급하였지만 미국은 그것을 철저히 시장화 시켰고 그로 인해 그 짧은 기간 동안 서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 갈 길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헬스케어 시장을 둘러싼 엄청난 이권과 사회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알러지 반응이 그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에 올바르게 헬스케어를 개혁하여 손가락이 두 개 잘린 사람이 보장범위가 한정적이어서 어느 한 손가락만을 봉합할지 선택하여야 하는 나라가 안 되길 기원해본다.

(주1) 파생상품 등을 그럼 마냥 시장에 내버려두자는 이야기냐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 블로그에 몇 번 오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실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생략

보건은 상품이 아니다

영국과 전 세계에서의 부자와 빈자간의 의료격차가 “불공평하고, 부당하며, 회피할 수 있는”것이라고 목요일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에서 이 정부의 불평등에 관한 음침한 현황들을 강조하면서 말하고 있다. WHO의 의료의 사회적 결정자에 관한 위원회는 “잘못된 정책, 경제, 그리고 정치의 치명적인 조합”을 비난하면서 부당한 조치가 “광범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불평등을 줄이는 일은 “윤리적으로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The gap in health between rich and poor in Britain and around the world is “unfair, unjust and avoidable”, a World Health Organisation report said Thursday, pointing a spotlight on the government’s dismal record on inequality. Blaming a “toxic combination of bad policies, economics and politics”, the WHO’s commission on the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said injustice was “killing people on a grand scale”. Reducing health inequities was “an ethical imperative”, it said.[WHO attacks ‘avoidable’ health inequalities, Financial Times, August 28 2008]

위와 같은 문구로 시작되는 이 기사는 세계보건기구의 주장을 인용하여 의료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주거조건과 근로여건 등에 대한 개선과 의료보장에 대한 보편적인 적용 등의 조치가 필요하며 권력, 돈, 자원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도 저지하여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실제로 WHO의 보고서는 현재 전 세계인의 보건의료가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는 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공공부문의 역할강화를 통해 달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나 파이낸셜타임스 기사 베끼기에 익숙한 보수언론조차 – 프레시안은 이를 보도했지만 - 이 보고서의 존재를 알릴 이유는 하등 없을 것 같다.

보건은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권리의 문제이고 공공부문의 의무이다. 그러하기에 건강을 위한 자원들은 공평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의 이슈가 있다. 첫째,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교육이나 의료보장과 같은 필수 공공재의 상업화는 의료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그러한 필수 공공재의 공급은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놓기보다는 공공부문에 의해 관장되어야 한다. 둘째, 보건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의료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상품, 활동, 그리고 조건들의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규제에 대한 공공부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세 번째의 모든 정책결정과 시장규제에 대해 충분하고 정기적인 의료평등 영향평가가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Health is not a tradable commodity. It is a matter of rights and a public sector duty. As such, resources for health must be equitable and universal. There are three linked issues. First, experience shows that commercialization of vital social goods such as education and health care produces health inequity. Provision of such vital social goods must be governed by the public sector, rather than being left to markets. Second, there needs to be public sector leadership in effective national and international regulation of products, activities, and conditions that damage health or lead to health inequities. These together mean that, third, competent, regular health equity impact assessment of all policy-making and market regulation should be institutionalized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Closing the gap in a generation, WHO, 2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