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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그룹 멤버의 죽음에 관한 단상

이 뉴스가 전해지면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돌 그룹의 관행에 관해 논란이 일었다. 하루가 다르게 신인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연예인들은 잠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라도 대중에 대한 노출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음반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와 기사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인피니트와 달샤벳 등 다른 아이돌 그룹도 회사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은비 사망 소식에 아이돌그룹 무리한 일정 도마에 올라.]

“레이디스코드”라는 걸그룹 멤버들이 탄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해 멤버 중 은비 씨가 사망하고 다른 둘이 중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는 한류(韓流)의 대표상품 중 하나인 걸그룹이 겉에 보이는 것처럼 발랄한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상황을 말해주는 사고라 할 수 있다. 자세한 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이 밝혀져야겠지만, 레이디스코드 등 한국의 많은 연예인들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과속차량에 몸을 싣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고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현실일 것이다.

대중음악 발전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의 음악 산업은 첨단으로 자본주의化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가 발명한 가장 맛깔스러운 산업 중 하나인 대중음악 시장은 비록 자본주의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다소는 비효율적인(?) 모습을 지녀왔다. 기업은 주요한 상품인 뮤지션을 기획해서 만들기 보다는 마이너 뮤지션의 데모를 듣고 메이저로 끌어올려 성공시키는 요행수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사용가치 중에서도 가장 알 수 없는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업계는 이런 방식을 선호해왔다.

뮤지션이 일정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곡까지 들고 오는 방식은 상품개발에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행수에 기대면서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90년대 대중음악 산업은 니르바나 Nirvana 라는 엄청난 히트상품을 얻었지만 업계가 통제되지 않는 리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말미암아 그 상품은 교환가치를 상실한 것이 한 예다. 이쯤 되자 업계는 이전에 간혹 시도되어 오던 기획 상품으로써의 뮤지션 양성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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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ce Girls in Toronto, Ontario” by Ezekiel.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기획적으로 만들어진 걸그룹의 한 예인 Spice Girls

이들은 음악 활동의 시작부터 철저히 기획사의 통제와 – 심지어는 사생활까지 – 훈련을 거친다. 주로 매력적인 외모와 군무(群舞)를 상품가치로 삼기 때문에 오디션과 고된 훈련이 필수과정이다. 곡을 직접 쓰기보다는 전문적인 팀이 만든 곡을 사용한다. 이렇게 훈육된 뮤지션의 음악은 유행하는 음악의 공통적인 문법을 답습하며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전의 마이너 뮤지션 뽑기보다는 시장 리스크를 줄인 셈이다. 단점으로는 상품의 기획 및 개발에 투입되는 투자비용이 이전보다 더 든다는 점이다.

업체 입장에서 이런 뮤지션들은 생산설비 등 고정자본(fixed capital)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 맑스는 자본가가 고정자본의 자본회전율을 높여 최대한 빠른 시간에 투자분을 회수하고, 시장변화에 따른 고정자본의 무용화를 방지하고, 종국에는 노동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잉여가치를 향유하려는 성향 때문에 노동착취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업체는 뮤지션의 상품성이 사라지기 전에 – 상품의 노후화1, 유행의 변화2 등으로 인해 –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돈 되는 곳은 과속을 해서라도 쫓아다녀야 한다.

대중음악 시장은 20세기를 거치며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인기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희로애락의 상황에서 위로를 받았고, 때로 뮤지션들의 영광과 죽음을 칭송하거나 애도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화려한 모습이 전면에 비춰지는 이면에는 무리한 일정 소화로 인한 피로감, 나아가서는 인용 기사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 등과 같은 비극적인 모습도 있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자본주의화된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David Cameron씨 내 노래 좋아하지 마~!”

현재 영국 수상 직을 맡고 있는 David Cameron은 여러모로 전통적인 영국 보수당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젊고 잘 생긴 외모에 대다수 보수들과는 달리 NHS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노회한 보수의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리버럴한 이미지가 더 풍긴다.(물론 그래봤자 토리~지만) 한편 그의 리버럴한 이미지를 보다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가 80년대의 전설적인 브리티시 뉴웨이브 밴드 Ths Smiths팬이라는 사실을 공언하고 다닌다는 점이다.

“보수당 당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모리시는 ‘누가 내 비참함을 알까’라구 생각하겠죠. 유감스럽게도 저는 짱팬이에요. 미안해요. (I’m sure that when Morrissey finds that he’s getting endorsement from the leader of Conservative Party, he will think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I’m a big fan, I’m afraid. Sorry about that.)”[Morrissey와의 토크쇼 중에서]

왜 이 사실이 리버럴한 이미지인가 하는 것은, 비록 The Smiths가 드러내놓고 정치적 슬로건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반골기질이 강한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그들의 대표적인 앨범의 제목은 The Queen is Dead다. 이외에도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Panic, There’s No Light That Never Goes Out과 같은 곡의 가사를 보면 그들이 보수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영국의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룹의 프론트맨은 각각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Morrissey와 Johnny Marr다. 이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Johnny Marr의 경우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David Cameron의 애정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Johnny Marr는 작년 12월 2일 트윗을 통해 “우리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Morrissey는 지지의 뜻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David Cameron은 의회에서 The Smiths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추궁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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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의회에서의 추궁 장면

우리로서는 이 정도의 일을 가지고 장난스럽게 구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윤도현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가 트위터에서 “내 노래 좋아하지 마”라고 트윗을 했다면 영국보다 훨씬 살벌한 전개가 펼쳐졌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영국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펼칠 수 있는 풍토가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직설적인 대중문화 풍토덕분이다. 대중문화의 이렇듯 솔직한 정치참여는 순수를 가장한 현실외면보다 훨씬 더 건강한 풍토인 것이다.

한편, 우리 너그러우신 Johnny Marr 님께서는 자신이 너무 몰인정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지난 2월 17일 트윗을 통해 David Cameron이 그들의 노래를 좋아해도 된다고 윤허하셨다. 문제는 단서조건이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라는 단 한곡을 2주일동안만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Johnny Marr가 노래제목을 통해 또 한번 David Cameron을 조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당이 진행하고 있는 개혁은 결국 끝낼 수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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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yle Council – Walls Come Tumbling Down

새벽에 온 비로 말끔하게 하늘도 개이고 멋진 하루를 보낼 신선한 공기가 폐로 밀려오는군요. 그 신선한 공기만큼이나 시원한 폴웰러의 멋진 목소리를 감상하려고 예전에 올렸던 글을 끌어올립니다. 자신의 사회주의 신념을 댄스음악에 실어 선동했던 재밌는 형님이죠.

The Style Council.jpg
The Style Council” by http://www.chic-a-boom.com/pics/stylecouncil.jpg, Copyright : Polydor, Ltd. (UK), 1988.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Style Council“>Fair use via Wikipedia.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나라답게 자본주의의 발전과 계급투쟁의 역사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나라다. 또한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소위 파플러음악의 본산지 역할을 하기도 한 나라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영국에서는 이른바 Punk Rock이라는 신진음악 조류가 등장하는데 Sex Pistols라는 노골적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드러낸 이름을 가진 밴드 등이 유행시킨 이 장르는 영국의 계급갈등을 문화적으로 해소하는데 일조를 한 장르였다.

초기 아나키스트적인 형태를 취하던 펑크락은 이후 The Clash, Gang of Four 등의 의식있는 좌파 성향의 밴드가 등장하면서 체계적으로 체제저항적인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일종의 체제저항의 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아오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The Style Council은 Paul Weller(그는 1987년 영국 대선에서 노동당의 승리를 위해 여러 뮤지션들이 조직한 Red Wedge라는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라는 맑시스트 성향을 지닌 급진적인 한 젊은이가 이끌던 밴드로 그가 이전에 몸담았던 The Jam 이 Punk Rock 이나 Power Pop의 형태를 취한 것과 달리 Dance Pop 스타일의 멜로디에 급진적이고 계급투쟁적인 가사를 담아내어 의식 있는 영국 청취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밴드다.

소개하는 곡은 탄광노동자의 대량실직으로 상징되는 쌔처 시대에 발표되었고 많은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그래서 당시의 영국 탄광촌의 상황이 잘 묘사된 작품 빌리엘리어트의 OST에 포함되어있다.

The Style Council – Walls Come Tumbling Down

뮤직비디오 보기

You don’t have to take this crap
You don’t have to sit back and relax
You can actually try to change it
I know we’ve always been taught to rely
Upon those in authority
But you never know until you try
How things just might be
If we come together so strongly

당신은 허튼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 없어요.
당신은 뒤로 물러나서 여유 잡아서는 안 돼요.
당신은 정말로 뭔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권위에 의존해야 된다고 배웠죠.
그러나 당신은 우리가 정말 힘차게 함께 할 때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노력해보지 않고는 결코 몰라요.

Are you gonna make this work
Or spend your days down in the dirt
You see things can change
YES an’ walls can come tumbling down!

당신은 이 일에 함께 할 건가요?
아니면 당신의 나날들을 쓰레기 속에서 보낼 건가요?
봐요 세상은 바뀔 수 있어요.
예! 벽은 무너뜨릴 수 있어요!

Government’s crack and systems fall
‘Cause unity is powerful
Lights go out- walls come tumbling down!

정부는 금이 가고 있고 시스템은 붕괴되고 있어요.
연대가 강하기 때문이죠.
불빛이 꺼져요. 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Yes they do yes they do
Yes they do yes they do

예, 맞아요. 예, 맞아요.

The competition is a colour TV
We’re on still pause on the video machine
They keep you slaves to the H.P.(H.P는 Houses of Parliament의 약자로 영국 의사당=의회(주의)를 의미함.)

경쟁은 일종의 컬러TV 죠.
우린 여전히 비디오에 정지 상태로 머물러있죠.
그들은 당신을 의사당의 노예로 머무르게 하고 있죠.

Until the unity is threatened by
Those who have and who have not
Those who are with and those who are without
And dangle jobs like the donkey’s carrot
Until you don’t know where you are

연대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의해,
그리고 함께 한 자와 함께 하지 않은 자에 의해
위협을 받을 때까지
그리고 당나귀의 당근과 같은 하찮은 일거리에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를 때까지

Are you gonna get to realise
The class war’s real and not mythologised
And like Jericho- Yes walls can come tumbling down!

계급전쟁이 실제하고
결코 신화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나요?
그리고 Jericho의 성(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장군의 인도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에 있는 성중에 최초로 공격하였다는 성이 Jericho의 성이다.)처럼 당신은 벽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Government’s crack and systems fall
‘Cause unity is powerful
Lights go out- walls come tumbling

정부는 금이 가고 있고 시스템은 붕괴되고 있어요.
연대가 강하기 때문이죠.
불빛이 꺼져요. 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Down we’re be to weak to fight it
Down not if we’re united
Down when you’re united

연대하지 않으면 싸우기에 너무 약해요.
연대하면 무너지죠.

Are you gonna be threatened by
The public enemy No. 10
Those who play the power game
They take the profits -you take the blame
When they tell you there’s no rise in pay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공공의 적인 10번지(다우닝가 10번지인 영국 수상관저, 즉 쌔처를 의미함)에
의해 위협받게 될까요?
그들은 잉여를 취하고 당신의 임금인상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 당신은 괜한 책망을 받네요.

Are you gonna try an’ make this work
Or spend your days down in the dirt
You see things CAN change
Walls can come tumbling down!

Government’s crack and systems fall
‘Cause unity is powerful
Lights go out- walls come tumbling down!

기타를 내려놔요 동지들!


The Featured Artists’ Coalition는 공연인들과 음악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출범한다. 우리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음악에 대한 보다 많은 통제권과 디지털 세대에서 창출되는 이익에 대한 보다 공정한 지분을 원한다. 우리는 아티스트들이 음반회사, 디지털 배급업체, 그리고 기타업체와 새로운 판매에로의 돌입을 지원하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구체적인 변화를 위해 활동해 나갈 것이다.
The Featured Artists’ Coalition campaigns for the protection of performers’ and musicians’ rights. We want all artists to have more control of their music and a much fairer share of the profits it generates in the digital age. We speak with one voice to help artists strike a new bargain with record companies, digital distributors and others, and are campaigning for specific changes.[그들의 웹사이트 첫 화면에서]

이 새로운 조직의 창립발기인은 다음과 같다.

Billy Bragg / Boilerhouse Boys / Chrissie Hynde / Craig David / David Gilmour / Gang of Four / Iron Maiden / Jazzie B / Jools Holland / Kaiser Chiefs / Kate Nash / Klaxons / Radiohead / Richard Ashcroft / Robbie Williams / Sia Furler / Soul II Soul / Stephen Duffy / The Cribs / The Verve / Travis / Wet Wet Wet / White Lies

이 조직의 창립은 명백히 헐리웃 작가조합의 파업을 연상시킨다. 즉 두 운동 모두 디지털 시대에 새로이 부각되는, 온라인 관련 이익에서의 창작인 들의 소외에 대한 항거가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갈등은 그동안 음악 산업계와 아티스트들 간에 알게 모르게 이어져왔고 이에 따라 몇몇 아티스트들은 저작물 창작 및 배급의 새로운 전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조직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더 공정한 계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로 Radiohead 는 작년에 EMI를 나와 신보 In Rainbows 를 “내고 싶은 만큼 내는(pay what you can)” 다운로드를 통해 판매하기도 했었다. 밴드의 공동매니저 Brian Message는 이러한 경험이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고 기득권층을 한 방 먹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Guitars down, comrades: rock stars launch union to stand up for their rights 中에서 발췌]

우리는 흔히 음악에 대한 저작권(혹은 지적재산권)의 침해는 창작인 들의 창작의욕을 꺾은 범죄행위라고 들어왔다. 물론 (상당 부분) 사실이다. 괄호를 쳐서 “상당 부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헐리우드 작가조합이 파업을 하고 영국의 탑아티스트들이 조합을 조직하는 상황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은 어쩌면 창작인 으로서의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이들은 어쩌면 저작권이 지켜야 할 창작인의 권리보호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역시 생산력이 변하면 생산관계가 조응하여 바뀌어야 하는가보다.

추. 위 명단을 보면서 흐뭇한 점은 지난번 David Byrne 이 친히 나서주었듯이 뭐 하나 아쉬울 것이 없는 거물 아티스트들이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Billy Bragg의 경우 노동당을 지지하는 좌익 아티스트들의 모임 Red Wedge 등으로 유명한 고참 음악가이고, David Gilmour 는 전설의 밴드 Fink Ployd 의 기타리스트였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이름은 Stephen Duffy인데 아시는 분이 있을라나 모르겠는데 이 양반은 Duran Duran의 보컬을 맡기도 했었다.(Simon LeBon이 오기 전에)

현재의 저작권은 창작 및 기술발전을 독려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 polls)

레코드회사들이 저지른 뼈아픈 실수 1위는?

Blender.com 은 최근 “20 Biggest Record Company Screw-Ups of All Time”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레코드 회사가 저지른 가장 멍청한 실수 20가지를 선정했다. 흥미로운 실수 몇 개를 살펴보자.

17위에 에디슨이 세운 레코드 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축음기의 발명가 에디슨이니만큼(사실 발명가라기보다는 사업가지만) 당연히 그는 National Phonograph Company(나중에 Edison Records 라고 개명)라는 이름의 레코드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처음에 이 회사는 관련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두 가지 실수는 이 회사의 수명을 단축했다. 첫 번째, 에디슨 회사의 레코드는 오직 에디슨의 플레이어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호환성이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재즈를 지독히 싫어했고(주1) 이러한 사적인 감정이 비즈니스에 반영되어 재즈 음반을 전혀 내지 않았다 한다. 결국 이차저차해서 회사는 1929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8위로는 워너뮤직 Warner Music 의 뼈아픈 실수를 소개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음악은 그 장르적 속성 자체가 정치적 성향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흔한데 대표적으로 보수적인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악은 바로 랩이나 힙합으로 불리는 흑인음악일 것이다. 힙합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이 음악의 최고의 수혜자는 워너뮤직이었다. 그들의 계열사 중 하나인 Interscope label 이 부분소유하고 있는 Death Row 사에 당시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Bob Dole 이 한 연설에서 이러한 이유로 워너뮤직을 비난하자 그들은 서둘러 Interscope 을 라이벌인 유니버셜에게 팔아버린다. 그뒤 유니버셜은 Interscope 이 배출한 Tupac, Dr. Dre, Eminem 등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가장 큰 레코드사로 성장한다. 워너뮤직은 서서히 사그러져 가다가 2004년 매각되었다.

그럼 대망의 1위는?

“Major labels squash Napster”

메이저레이블의 냅스터 진압작전이 선정되었다. 냅스터가 처음 서비스를 개시했을 적에 그 인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파일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컴퓨터를 아예 켜놓고 자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때문에 하드디스크가 엄청나게 팔려나갔을 것이다. Blender.com 은 이 P2P의 원조 사이트가 기존 기업들에게 자본조달을 요청했을 때 이를 무시하고 무력 진압한 것을 실수로 뽑고 있다. 왜냐하면 “냅스터의 사용자들은 사라지지 않고 수많은 대체 시스템으로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Napster’s users didn’t just disappear. They scattered to hundreds of alternative systems)”

그리고 이제는 냅스터를 찾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을 통한 영상 및 음악의 불법 다운로드나 판매의 문제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레코드 회사는 DRM이라는 있으나마나한 기술을 도입했다가 폐기했고, 여전히 온라인 다운로드에 익숙해있는 수많은 사용자들은 범법자로 낙인찍히고 있고, 이 와중에 저작권을 미끼로 법률 브로커가 용돈을 벌고 있는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서비스가 RCRD LBL(발음 그대로 “레코드레이블”) 이라는 블로그다. 이 블로그는 아티스트들에게 저작권이 제한되어 있지 않은 음악을 공짜로 제공하면서 벌어들이는 광고수익을 아티스트들과 나누는 구조다. 블로그의 운영자 Rojas 씨는 꼭 음악 자체가 팔릴 필요는 없으며 광고처럼 선전되어 아티스트들과 이 수입을 공유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서비스의 가능성은 아마도 그 정도의 수익공유로도 만족하는 독립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선에서의 시장에 국한될 것이다. 하여튼 이러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보다 다양한, 그리고 보다 건설적인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음악 산업계들이 그러한 실험을 거부한 채 자신들만의 이익추구에만 몰두한다면 다음에 Blender.com 이 선정할 리스트에는 아마 그때 일어날 실수가 1위로 선정되지 않을까 싶다.

(주1) 그는 “나는 언제나 재즈 레코드를 거꾸로 돌려서 들어. 그 편이 훨씬 나아”라고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주의 혁명, 아방가르드, 그리고 전자음악

1919년에 러시아의 음향 기술자 레온 테레민 Leon Theremin(본명 Lev Sergeivich Termen) 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전기적인 음률의 고저가 연주되는 테레민 theremin(또는 thereminvox, aetherphone 으로 불리기도 함)이라는 흥미로운 악기를 발명한다. 이 악기는 연주자가 악기에 손을 대지 않고도 연주하는 악기로서 연주자의 손이 금속봉에 얼마나 근접하는 가에 따라 음의 고저와 음량이 조절되었다. 테레민의 연주소리는 다소 기괴스러워서 10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공상과학영화나 공포영화의 사운드트랙에 곧잘 사용되었다.(예로 들자면 Spellbound, The Lost Weekend, Ed Wood, Mars Attacks!,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Lev Termen playing - cropped.jpg
Lev Termen playing – cropped” by Bettmann, Corbis – http://tygodnik.onet.pl/35,0,57107,sowiecki_faust,artykul.html (polish).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테레민을 연주하고 있는 레온 테레민

이 악기는 흥미롭게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과 그에 따른 단기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의 융성과 관련이 깊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그 태생과 발전 자체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급진성을 띠었으며 현실사회 전반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볼셰비키는 후진적인 러시아 사회에서의 선각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소수의 직업적 혁명가의 엄격한 집단을 표방하였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의 집단이었다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진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점이야말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줬다.”[마크 애론슨, 도발 아방가르드의 문화사]

그리고 혁명이 성공하자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볼셰비키는 아방가르드의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소비에트는 예술이 인민들을 사상, 감정, 분위기로 물들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겼고 아방가르드 예술을 일종의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은 아지프로 agitprop 라 불리며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약진을 해나갔다. 적어도 스탈린이 정권을 잡기 이전까지는…..

El Lissitzky, Lenin Tribune, 1920.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jpg
El Lissitzky, Lenin Tribune, 1920.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von El Lissitzky –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Lizenziert unter Public domain über Wikimedia Commons.

엘 리시츠키 El Lissitzky 가 레닌을 위해 제작한 연단으로 구성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여하튼 이 당시의 예술분위기는 모든 장르에서 전통적인 문법장르가 해체되는 시기였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 모두가 해체되고 재창조되어 이해 불가한 우스꽝스러운 소리조차 음악으로 포장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창조물이 바로 기계를 통한 실용적 작업이 소리와 결합된 레온 테레민의 작품 테레민이었다.

레온 테레민은 1895년 페테스브르그에서 태어났다. 귀족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과학에 소질을 보이며 남들과 다른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 후 그의 인텔리겐챠적인 지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혁명정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자유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테레민은 여러 연구를 하던 중 인체의 온도변화를 음향으로 전환하는데 착안하여 테레민을 만들게 되었다.

1921년 어느 날 레온 테레민이 자신이 발명한 새로운 악기를 레닌에게 시연해 보인다. 이 악기는 현도, 건반도, 마우스피스도 없는 악기였다. 음은 전기 장치가 부착된 상자에서 만들어졌다. 연주자는 상자에 부착된 안테나와 금속봉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를 연주한다. 이 악기는 전혀 새롭고도 으스스한 음을 만들어내었다. 레닌은 이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악기연주법을 배우기까지 했다고 한다.(레닌은 후진적인 농업사회였던 러시아가 사회주의 강국으로 거듭나는 길은 하루빨리 공업사회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기계에 대한 그와 집권세력의 집착은 매우 강했다. 그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Socialism equals Soviet power plus electrification.” )

이후 소비에트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선전도구로서 새로운 악기를 유럽에 선전하러 돌아다니던 테레민은 1927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 신기한 악기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많은 이들이 테레민에 관심을 보였는데 앨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도 매우 흥미있어 하며 그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다. 이듬해 그는 테레민의 특허권을 얻은 후 악기 제작권을 RCA에 팔았다. RCA는 이 악기의 연주가 “휘파람 부는 것처럼” 쉽다는 슬로건 하에 악기 판매에 나섰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악기연주가 휘파람 불듯이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1929년 미국에는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악기는 미키마우스 클럽에서 시연되기도 했었고 앞서 말했듯이 공상과학영화와 공포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이용되었다. 이 악기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는 전직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클라라 록모어 Clara Rockmore 였다. 레온 테레민은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에게 구애하였으나 그녀는 변호사 존 록모어 John Rockmore 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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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a.rockmores.lost.theremin.album” by [1].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Clara Rockmore

이후 테레민은 소수이긴 하지만 대중음악에도 사용된다. The Beatles나 The Rolling Stones 와 같은 몇몇 대중음악가가 이 악기의 소리를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곡이 비치보이스의 명곡 Good Vibrations 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이러한 컬트적인 현상과 별개로 현대 대중음악에 보다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업이 신서사이저를 발명한 로버트 무그 Robert Moog 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무그는 1950년대 혁신적인 신서사이저라 할 수 있는 미니무그 minimoog 를 발명하여 현대 전자음악(Kraftwerk, Gary Numan, Pink Floyd 등의 선구자적인 음악가들이 시도하여 인기를 얻었던 전자음악은 80년대 Synth Pop, New Romantics 등의 장르를 통해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이들 장르의 인기는 이전 같지 않지만 오늘 날 대중음악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이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테레민에 매혹되어 직접 제작하여 팔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미니무그는 많은 면에서 테레민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시대의 신서사이저 음악은 테레민의 은혜를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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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moog” by Krash – photo taken by Krash.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로버트 무그가 제작한 미니무그

1938년 그는 돌연 미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많은 이들은 소련의 스파이들이 그의 뉴욕 아파트에서 그를 납치하여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는 그가 빚 때문에 미국을 떠났고(RCA에 테레민의 권리를 넘긴 레온 테레민의 다음 프로젝트는 텔레비전의 발명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회사를 설립하고 많은 돈을 끌어 모았으나  그 프로젝트는 실패하였고 테레민은 빚더미에 앉았다고 한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소련에 호송되었다고 전하고 있다.(또는 그가 미국에서 명성을 얻었을때조차 지속적으로 소련 스파이들과 접선을 유지했고 이 당시 자발적으로 소련으로 돌아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는 그곳에서 혁신적인 도청장치인 The Bug의 작업에 참여하였고 이일로 인해 당시 소련사회의 최고 영예인 스탈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후에 소련에서 음악학교에서 음악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현대음악은 해로운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하여 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는 1991년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고 1993년 숨을 거두었다. 1994년 그의 업적을 기린 Theremin: An Electronic Odyssey 라는 다큐멘타리가 발표되었다.

요컨대 테레민의 개발, 발전, 그리고 이어지는 전자음악의 발달의 이면에는 사회주의 혁명, 아방가르드, 기계문명에 대한 낙관주의와 같은 20세기 초 인류문명사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놓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대중음악계는 지나친 악기의 기계화, 내지는 전자기기화에 싫증을 낸 이들이 소위 플러그를 뺐다는 의미의 unpluged 공연을 한동안 유행시키기도 했다.

테레민 연주 듣기

참고할만한 사이트들

거물가수가 말하는 신참음악가가 돈 버는 방법

최근 Wired.com 에서는 미국의 어느 고참 가수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David Byrne 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영미권의 펑크, 뉴웨이브 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전설적인 펑크락 클럽 CBGB를 통해 데뷔한 이래 펑크/뉴웨이브의 전형이 되어버린 그룹 Talking Heads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이었기 때문이다.(한국어 팬페이지 가기)

그런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기술혁신과 불법다운로드 등으로 망해간다고 아우성치는 음악 산업계에 일침을 놓는 글을 Wired.com에 올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이미 기득권인 그이지만 ‘총체적 폭로(total disclosure)’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이 글을 통해 음악 산업계의 감춰진 기득권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현재의 기술혁신 등의 상황이 음악가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임을 말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그동안 관련 산업계에서 회자되어온 내용이 많지만 그 산업에 직접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거물급의 인사가 한 말이기에 무게감이 한층 크다. 불법 다운로드, 음악의 거대산업화, 신인의 등용문 등 여러 주제가 많지만 글이 무척 길기에 편집자 마음대로 요약 발췌하였다. 원문의 의도와 다른 내용이 있다면 가차 없이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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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가 최신앨범을 온라인을 통해서 발표했고 Madonna는 워너브로스에서 콘서트홍보 회사인 라이브네이션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음악산업의 형태가 종말을 맡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오늘날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방법은 없다. 적어도 내 계산으로만도 여섯 가지의 방법이 있고 음악가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음악은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행사였다. 녹음기술이 존재하기 전에는 음악과 사회적 콘텍스트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교회, 술집, 군대 등에서 불리는 음악들은 각기 그 사회적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음악은 그저 경험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기술이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녹음을 통해 음악은 생산물이 되고 팔리고 거래되고 재생되었다. 이로서 음악은 경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레코드회사가 음악을 경제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자.

  • 자금조달
  • 상품제조
  • 상품유통
  • 상품홍보
  • 음악가들의 경력과 녹음의 조언 및 가이드
  • 회계정리

이것이 오늘날 상품을 내놓기 위해 시스템이 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레코드, 테잎, 디스크 등이 음악을 실어 날랐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똑같은 것들을 실어 나르는 데에 그 서비스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면

녹음비용은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음악가들은 녹음을 위해 레이블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음악가는 직업적인 스튜디오, 엔지니어, 프로듀서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최소자금인 1만5천불을 지불할 돈이 없다. 그러나 이제 앨범은 이메일을 확인하는 노트북으로도 만들 수 있다.(주1)

제조와 유통비용도 제로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LP나 CD는 기본적으로 드는 제조단가, 수송단가가 있다.(사실 우리는 음악에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플라스틱에 지불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을 통한 유통은 거의 공짜다. 이 방법을 통하면 100카피건 100만 카피건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레이블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몇몇 레이블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하던 역할이 보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Brian Eno(주2) 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I Think Music 이라는 인디밴드들의 온라인 네트웍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제작방식에 회의감을 표시했다.

“구조적으로 그들은 너무 크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전적으로 수세적인 위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라고는 음악가에게 큰 금액의 선금 –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밴드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 을 줄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그게 다다.”

라고 Eno는 이야기했다.

여섯 가지 음악유통 모델
현재 음악유통 모델은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모든 것이 기획사에 의해 기획되는 방식이다. Pussycat Dolls, Korn, Robbie Williams 등이 이러한 방식인데 이들은 일종의 브랜드가 된다. 회사는 이들을 이용해 음악, 티셔츠, 팬시상품 등 수많은 관련 상품으로 돈을 번다. 때로는 음악가들도 많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투자가들에게 흘러간다.

2. 전통적이고 표준적인 유통 모델이다. 과거의 Talking Heads 가 이런 식이었는데 레코드 회사가 녹음, 제조, 유통, 홍보를 하고 음악가는 로얄티를 받는다. 이 방식은 레이블이 녹음한 것들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소유한다.

3. 라이센스계약은 표준적인 방식과 비슷하나 이 경우는 음악가가 지적재산권과 마스터레코딩의 소유권을 가진다. 재산권들을 향유할 권리가 레이블에 주어지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음악가에게 귀속된다. 만약 음악가들이 기업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이 방식을 살펴볼만 하다. Arcade Fire가 인디레이블인 Merge와 맺는 관계가 이런 식이다.

4. 이익분배 모델인데 내가 2003년 Lead Us Not Into Temptation를 내놓을 때 Thrill Jockey와 일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레이블에게 최소한의 선금만 받고 이익은 분배하였다.

5. 음악가가 제조, 유통만 빼놓고 다 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역할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센티브도 적다. 이 모델에서 음악가는 창의성을 보장받지만 도박이기도 하다. Aimee Mann이 이 방식을 채택했다. 그녀는 “많은 음악가들이 그들이 벌 수 있는 많은 돈들이 소유권과 라이센싱을 포기함으로써 날아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6. 셀프유통모델이다.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생산하고, 연주하고, 판매한다. CD는 공연이나 웹사이트에서 판다. 홍보는 MySpace 를 이용한다. 음악가는 총체적으로 창의적인 권리를 부여받는다. 실제로는 거리에서 CD를 팔고 라이브를 하는 신참 음악가에게는 의지할 곳 없는 자유, 대단히 추상적인 독립이긴 하다. Radiohead 가 이 DIY 모델을 채택했다. 소비자들은 음악을 다운받고 그들이 지불하고 싶은 가격으로 지불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이들과 같은 유명밴드에게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변화의 초석이기도 하다. Radiohead의 매니저 Bryce Edge는

“이 업계는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반응한다. 그들은 음악을 평가절하시키고 무료배포한 것처럼 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전혀 다른 의미다.”

라고 이야기했다.

자유 VS 실용주의
어떠한 모델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위의 모델들을 혼합하고 적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음악 산업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읽은 적이 있는가? 실은 좀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대스타들에게는 여전히 그들의 신보를 작업해주고 홍보해줄 전통적인 대규모 기획사를 필요로 하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회사들을 통한 작업도 진행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하한의 모델은 단일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다. : 우리가 음악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음악이 우리를 이끄는 우리 머리와 가슴 속의 대지(大地)로 이끌 것인가. 우리는 음악을 통해 그곳으로의 여행 티켓을 얻을 수 있는가.

(주1) 이를 두고 어떤 누리꾼은 원 사이트 댓글에 ‘어떻게 메일확인하는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드느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난독증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일 뿐이다.

(주2) 또 하나의 거물음악가로 Roxy Music의 멤버이기도 하였으며 프로듀서로서 수많은 명반을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