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敔)

오늘 날씨도 좋아 아내와 경복궁 나들이를 갔다. 그곳 박물관에서 아래와 같은 문화재를 발견했다.


이건 ‘어(敔)’라는 궁중 타악기다. 엎드린 호랑이 모양을 나무로 깎아 만든 악기로 음악의 끝을 알리는 악기라 한다. 연주법(?)은 머리를 세 번 내리치는 것이라 한다.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가 머리를 두들겨 맞고도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앞에서 ‘어’를 보면 더 재밌다.


빨간 립스틱까지 그럴듯하게 바른 모양이다. 그런데 난 이 모습을 보고 다른 어떤 캐릭터가 떠올랐다.


일본만화 ‘미소 짓는 세일즈맨(笑ゥせぇるすまん)’의 주인공 캐릭터다. 얼굴의 반은 차지하는 치열, 굵은 입술, 졸린 눈매가 영락없이 닮았다.

‘미소 짓는 세일즈맨’은 어릴 적 만화 서점에서 3권짜리 시리즈로 구입한 작품이다.(물론 불법 번역물이겠지) 내용은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들 면면히 보잘 것 없는 이들이었고 주인공은 이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불행에 빠트린다는 충격적인 줄거리다.


일본에서 발매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커버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이 만화의 작가가 그 유명한 아동만화 ‘도라에몽’을 그린 원작자 중 하나인 ‘후지코후지오A(藤子不二雄A)’라는 사실이다. 도라에몽과 같이 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을 그린 이가 이런 음울하고 루저틱한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도라에몽 역시 별로 “꿈과 희망”스럽지 못한 면이 적지 않다. 늘 희한한 장난감을 가져오긴 하지만 도라에몽 역시 실패한 로봇일 뿐이고 나머지 캐릭터들 역시 정상적인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 작품은 세일즈맨의 어린이 버전일뿐?

경복궁의 악기 ‘어’에서 어쩌다보니 도라에몽까지 오게 되었는데… 뭐 하튼 인생도 그렇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저런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생산적으로 가다보면 좋은 삶이 되는 것이고, 나쁜 쪽으로 흐르면 인생 망치는 것이고… 음… 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