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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단상

‘연금재원을 소비세로 하자’고 제안했을 때 반드시 나오는 반론이 있다. 그것은 ‘소비세에는 역진성(逆進性)이 있다’는 주장이다. [중략] 그래서 내가 제창하고 싶은 것이 ‘환급금부 소비세’다. 예를 들어 소비세가 20퍼센트가 되었을 때, 연수 200만 엔인 사람들의 소비세 부담은 (모든 수입을 소비로 돌렸다고 하면) 40만 엔이 되는데, 이 세율 인상과 동시에 ‘전 국민에게 균등하게 매년 40만 엔씩 환급한다’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중략] 이 같은 ‘환급금부 소비세’의 아이디어의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은 ‘베이직인컴(기초적 소득)’이라는 세상이다. [중략]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덴마크는 기초연금은 세금방식이고, 모든 거주자에 대해서 무조건으로 지불한다. [중략] 연금은 퇴직 후에 평등하게 주는 급부인데, 이것도 퇴직 후라고 하지 않고, ‘지금 당장’, 모든 연대의 사람에게 확대하는 것이 베이직인컴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2009년, pp343~347]

사실 노동당 일부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소비세와 결합시켜 역진성을 없애고 기초생활도 보장하자는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물론 소비세와 결합하면 실질적으로는 기본소득이 이미 낸 세금에 대한 환급금에 불과하므로 상쇄효과 밖에 없다는 점이 눈에 띄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차원이므로 소비세 수입을 통한 추가적인 복지혜택 등과 결합하면 재분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어쨌든 기본소득은 일반인의 ‘소득’에 대한 통념, 즉 ‘소득은 노동에 대한 반대급부다’라는 선입견에 비추어 볼 때 좀 의아한 개념이다. 존 로크가 재산형성의 기본적인 경로를 ‘노동’으로 정의한 이후 대부분의 사상가는 노동을 소득과 재산의 기본전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 맑스가 노동자의 노동을 부불(不拂)노동으로 정의한 이후 투여노동이 꼭 소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종의 균열이 생긴다.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체제라면 개인의 소득은 시장에서 결정된 노동에 대한 가격이므로 전적으로 개인이 시장에서 검증받은 능력에 대한 대가라고 정당화할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시각의 맹점으로 특정인이 금융구조화 능력이 뛰어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배경에는 금융시장이 발달한 시공간적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즉 사회 없이 개인의 특출함만으로 대가를 받는 것은 아니란 점을 지적한다.

마가렛 대처는 ‘사회란 없다’고 일갈했지만 소득은 개인의 능력과 함께 사회가 그 능력에 지불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가능한 것이다. 시장 역시 사회 안에 존재하며 맑스에 따르면 시장에서의 대가 중 지불되지 않는 노동도 있다. 적정한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는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역할 또한 사회가 맡아야 한다는 당위에 비추어 보자면 ‘기본소득’은 진지하게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공적부조의 수단일 것이다.

뉴욕과 고담, 두 도시 이야기

민주당은 지난 20년 동안 뉴욕시장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금융 권력을 상징하는 뉴욕이란 도시답다는 생각이 든다. 얼핏 생각나는 시장들이 루디 쥴리아니나 마이클 불름버그인데 이들은 모두 자본가였고 엄청난 부자였다. 그런 와중에 월스트리트저널이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진보적인 후보 빌 드블라시오(Bill de Blasio)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내놓았다.

다른 것보다, 드블라시오 씨는 5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뉴욕 시민에 대한 세금인상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계속하여 부자와 빈자 간의 소득격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뉴욕을 하나의 “두 도시 이야기”라 묘사하고 있다. 드블라시오 씨의 대변인 댄 레비탄은 후보가 “이 도시의 불평등으로 인한 위기가 부자와 빈자를 포함한 모든 뉴욕시민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있다. 이 도시가 연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학교와 근린에 투자하여 모든 뉴욕 시민들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New York Mayor Race Worries Business]

뉴욕, 두 도시 이야기, 빈부격차 등 키워드가 얼마 전 상영됐던 The Dark Knight Rises를 연상시켜 흥미롭다. 그 영화에서는 혁명주의자(좌파?)를 악당으로 그려 상당히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했었다. 드블라시오는 영화속 베인과 같은 혁명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뉴욕의 자본가들에게 베인 못지않은 극좌주의자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좀 과한 비유 같지만 아래의 발언을 들어보면 과장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로타 씨(공화당 측 후보 – 역자주)를 돕기 위해 최근 만들어진 정치단체 대변인 마이클 맥큰은 “사람들이 단지 그가 이 도시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좌측으로 몰고 가려는지 이해하고 그것이 암시하는 바들이 그들의 주머니란 사실을 이해할 때, 내 생각에 그들은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주시할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검증된 리더십’이라는 이름의 이 그룹은 오랜 기간 공화당원과 보수적 운동단체들을 지원해왔던 억만장자 데이빗 코크(David Koch)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같은 기사]

데이빗 코크는 미드 The Newsroom을 즐겨본 이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데이빗 코크는 각종 보수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억만장자다. 그는 형 찰스 코크와 함께 석유, 가스, 광물 등을 취급하는 코크 인더스트리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고 이제 그 돈을 밑천 삼아 ‘미국번영재단(Americans For Prosperity)’이라는 단체를 직접 설립하여 티파티 등을 배후조종하고 있다.

다시 The Dark Knight Rises가 생각난다. 배트맨은 어떤 인물인가? 배트맨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무술인 이기도 하지만 그를 다른 슈퍼히어로와 구분 짓게 하는 특징은 그가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자본가 부르스 웨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데이빗 코크처럼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재력을 이용하여 그만의 정의를 실천하는 행동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데이빗 코크와 유사하다.

빌 드블라시오는 베인이 아니고 데이빗 코크는 부르스 웨인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수의 (정치적 신념이 매우 확고한, 또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몇몇에게는 빌 드블라시오가 베인으로, 혹은 데이빗 코크가 부르스 웨인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오세훈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을 통해 어느새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도시 내에서의 이념전쟁이 뉴욕이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벌어질 것인지 자못 흥미로워진다.

지역은 돈 많은 浪人인 기업을 어떻게 유혹할 수 있을까?

The Verge라는 온라인 매체에서 일본 제조업의 상징인 거대기업 히타치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보도했다. 그 기사가 내 눈길을 잡아끈 이유는 기사 제목 때문이었다. 기사의 제목은 “히타치에게 좋은 것이 일본의 히타치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What’s good for Hitachi isn’t good for Hitachi, Japan)”. 무슨 의미일까 하고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 문장은, 히타치라는 이름의 기업이 기반을 두고 있는 일본의 도시 이름 또한 히타치임을 감안하고, 이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만든 문장이다.

기업 히타치와 도시 히타치의 운명은 일본의 제조업이 싹트기 시작한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설립한 구하라광업소히타치광산(久原鑛業所日立鑛山)이 모체인 히타치는 광산용 전기기계의 수리공장을 1910년에 히타치市로 이전하면서 오늘의 사명을 갖게 되었고, 이후 도시와 기업은 자웅동체로서 상생해왔다. GM의 前 CEO 찰리 윌슨이 남긴 명언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이 이 도시와 기업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인 셈이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 몇 번 개탄했다시피, 위와 같은 명제는 점점 더 그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진보, 자본의 경영전략, 각국의 기업유치전략 등에 따른 자본의 세계화가 주요원인이다. 히타치에게 있어서는 한 가지 사정이 더 있는데 바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히타치는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친 2008년 7873억 엔의 순손실을 기록한다. 회사는 수익성 있는 부문을 팔아치우고, 주종목을 전자제품에서 산업기계로 바꾸며 생존을 도모했다. 이중에는 물론 해고와 고용의 해외이전도 포함되어 있다.

한때 40만 명에 달하는 고용을 창출했던 히타치의 현재 고용 인력은 323,500명이며 이중 3분의 1은 해외에 기반을 둔 인력이라고 한다. 이런 세계화 전략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히타치市는 피해를 입고 있다. 시의 인구와 제조업 인력은 지난 10년 동안 각각 20% 씩 줄었다. 시의 유일한 백화점은 2008년 문을 닫았고 극장은 한 군데도 없다. 비슷한 운명의 가메야마市 – 일명 “샤프” - 에 비해서는 나아보일 수도 있겠으나, 도시의 미래는 장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적다는 점에서 가메야마市와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인다.

산업과 지역경제와의 함수관계에서의 비극은 자본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었는데, 이는 두 체제 공히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체제였고 지역단위 경제가 특정산업 혹은 특정기업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역시 풀어야할 숙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경제가 산업 및 기업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닌, 히타치처럼 상호갈등 관계로 바뀌는 경우다. 도시의 이름을 바꾼다고 한풀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전에 HBR은 기업과 지역의 모순관계에 관한 글에서, 기업이 특정 지역에 초래한 적자에 세금을, 기업이 기여한 흑자에 세금혜택을 주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세금이 기업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써 효력을 잃어가는 상황이나 자유무역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이 해법이 실현가능할지 의문이다. 미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되찾고 있다는 글에서 보듯, 입지의 자유를 획득한 자본은 세금, 생산성, 임금, 인프라 등의 변수를 조합해 최적화를 시도하고, 노동자와 지역은 다만 자본의 처분만을 기다릴 뿐이다.

재정절벽(Fiscal Cliff)이란 무엇인가?

법이 바뀌지 않거나, 또는 의회와 대통령이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1월 1일에 다음과 같은 지출삭감과 세율변화가 자동적으로 효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총계 6,680억 달러, GDP의 4.0%
  • 지출삭감 : 1,360억 달러, GDP의 0.8%
    • 870억 달러(GDP의 0.5%) : 내무와 국방, 그리고 재량적인 지출의 전면적인 삭감
    • 350억 달러(GDP의 0.2%) : 실업급여의 연장 만료
    • 150억 달러(GDP의 0.1%) : 메디케어 의사 비율 감소
    • 세금증가 : 5,320억 달러, GDP의 3.1%
  • 240억 달러(GDP의 0.1%) : 오바마의 헬스케어 법률에 의한 신규세금
    • 870억 달러(GDP의 0.5%) : 다른 세금조항들
    • 1,270억 달러(GDP의 0.7%) : 지불급여세 면제기간 종료
    • 2,950억 달러(GDP의 1.7%) : 소득세율의 2001년 수준으로의 회귀; 대체 최저한세는 중산층에까지 이른다

출처 : 의회 예산정책처, 노무라 증권, 월스트리트저널

재미있는 세금 : 수염세

수염세는 1705년 수염을 기르는 사람에게 부과되는 세금이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선진유럽의 모델을 따라 러시아 사회를 선진화시키려는 목적의 일환으로 수염세를 제정하였다. 세금을 내는 이들은 “수염 토큰”을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이 토큰은 러시아의 독수리가 한쪽에 그려져 있고, 다른 쪽에는 소염이 달린 코와 입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토큰에는 두 개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는데 “수염세가 실시됐다”와 “수염은 불필요한 짐이다”라는 문장이다. 다만, 표트르 대제가 수염세를 부과한 첫 번째 지배자는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수염을 기르고 있던 영국의 헨리 8세는 1535년 수염세를 도임했다. 이 세금은 누진세였는데 수염을 기르는 이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양하게 부과되었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수염세를 재도입하였는데 2주일이상 기른 수염에 대해 과세했다.[원글 보기]

수염을 기르는 이들은 이 토큰을 가지고 다니면서 도시를 드나들 때마다 냈다고 한다. 헨리 8세가 어떤 생각으로 수염세를 도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수염을 길렀던 것을 보면 그리 성공적인 세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 본인도 계속 기르고 있었으니 수염이 표트르 대제의 생각처럼 “불필요한 짐”이라 여기지도 않았을 것 같다.

또는 불필요한 짐이라 생각했더라도 원래 인간은, 특히 “고매한” 지위를 지닌 이들은 그런 짐을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데 즐겨 사용했으므로 – 예를 들어 유럽 귀족 여성들의 불필요한 머리장식이나 중국귀족들의 긴 손톱 등 – 특별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결국 세수의 증대가 가장 큰 목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금은 어떠한 특수한 목적이 명분으로 사용되든지 간에 본질은 정부라는 권력의 재산 상태를 향상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종국의 목적이었다. 그 세금이 이렇게 수염을 기르는 이에게 과세될 수도 있고, 집의 창문에 과세될 수도 있고, 소득에 과세될 수도 있다. 앞의 두 세금은 없어진 것을 보면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세금은 소득세인 것 같다.

미국의 고용상황과 그 해법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지난번에 소개한 Econ4 라는 사이트에서 첫 작품을 내놓았다. 미국의 고용상황을 중심으로 경제전반을 훑으면서 고용창출에 있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현 상황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2분 정도의 짧은 길이고 그래프 등 관련 데이터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므로 영어공포증이 있으시더라도 한번 보시길.

사회성과연계채권,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진정한 대안인가?

복지를 위한 재원조달은 다시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여 복지를 확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중략] 공공복지 논쟁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 방안으로서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미국과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 “열린 정부”(Open Government) 구상이다.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s : SIB)은 열린 정부의 기본 철학을 자본시장을 통해 구현하는 방안이다. [중략] 사회성과연계채권이란 사업성과 목표달성을 조건으로 하는 정부의 지급보증 약정을 바탕으로 사회사업 주체가 원리금의 상환이 사회성과와 연계된 채권을 민간투자자에게 발행하는 내용의 투자계약을 의미한다. 사회성과연계채권 투자구조에 있어, 정부는 사회성과연계채권 발행기구인 SIBIO(Social Impact Bond-Issuring Organization)와 사회적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SIBIO는 민간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하여 해당 사회사업의 운영자금을 조달하며, 정부는 약정된 사회적 성과가 달성된 경우 예산절감 효과를 고려하여 SIBIO에게 성과보상을 지급하고, SIBIO는 성과보상을 다시 채권자에게 상환하는 내용의 계약관계를 가지게 된다.[사회성과연계채권(SIB)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원리, 자본시장 Weekly 2012-40호, 연구위원 김갑래]

사회성과연계채권은 보아 자본주의가 처한 두 가지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첫째, 재정투입 없는 공공서비스 제공이다. 정부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점점 더 적기의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 이는 매우 매력적인 요소다. 그리고 실제로는 민간투자사업 등을 포함한 민영화를 통해 이런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신자유주의 반대론자 등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익을 우선해야 할 공공서비스가 이윤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공익과 이윤을 매치시키는 것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대안이다.

즉, 인용문에서 보듯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은 “약정된 사회적 성과가 달성된 경우 예산절감 효과를 고려하여 성과보상을 지급”하기에 공공서비스가 애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용이하다는 뜻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예전에 썼던 글 “민영화, 두 가지 접근법”에 보면 기존의 민영화와 사회성과연계채권이 가지는 차이를 알 수 있다.

민간의 자금으로 건설되고 운영되는 교도소는 통상 민간 사업자에게 침대 개수마다 일정금액을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나 민영화 반대론자 등 비판자들은 이들 민간 기업들이 정부에 로비를 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민간 사업자는 정부가 교도소의 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많은 교도소를 민간에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입법로비 등을 통해 인종차별적인 판결과 수감, 불필요한 수감기간 연장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중략] 이들은 소위 “사회영향채권(social-impact bonds)”을 발행하여 모인 자금으로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교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을 투자자들과 나눈다는 계획이다. [중략] 즉 앞서의 미국 민간 기업들이 더 많은 수감자들로부터 이윤을 창출하였다면 사회영향채권의 투자자들과 사업시행자들은 수감자들이 출소한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재범률이 낮아질 경우에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수익률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게 된다. 확실히 이윤동기가 이전 교도소와 달리 제공하는 서비스의 본래 목적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면이 있다.[민영화, 두 가지 접근법]

인용문에서 보듯이 감옥이라는 공공서비스를 똑같이 민간의 손에 맡기는 방식이지만, 전자가 오히려 재소자의 양산(?)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는 반면, 후자는 범죄율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크다 할 수 있다. 후자의 방식은 예를 들면 투자자의 수익률을 재범률과 반비례하여 보장하는 방식으로 시행할 수 있다.

요컨대 여태의 민영화와는 다른 채권이라 할 수도 있다. 물론 문제도 있다. 그 채권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당시 누군가와 농담으로 출소자가 범죄를 저질러도 걸리지만 않으면 돈을 주겠다고 투자자가 회유할 수도 있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또 다시 꼼수가 등장할 수도 있는 기술적 어려움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기술적 어려움은 정밀한 설계나 시행착오 등을 통해 조절 가능할 것이고, 또 하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기존의 공공서비스 민영화가 정부재정의 부외금융(off-balance)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성과연계채권 역시 일종의 복지의 증권화 및 유동화를 통한 부외금융에 불과한 미봉책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채권은 “고쳐 쓰는 자본주의”의 최신 버전인데, 고쳐 쓸 때는 고쳐 쓰더라도 과연 계속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재범률이 낮아지면 장기적으로 감옥의 수요가 적어지니 장기적으로 재정이 건전해지겠지만, 단기적으로 이들 나라가 처한 구조적인 재정적자를 메워줄 수는 없다.

기업들은 점점 더 초국적화되어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일국의 조세체제를 “합법적으로” 회피하고 있고, 소득세 역시 획기적인 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포퓰리적적인 세금감면, 양극화로 인한 세금면제 계층의 확대 등은 재정적자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요소다. 사회성과연계채권은 그 깊은 상처를 감싸기에는 너무 작은 반창고다.


미국의 재정적자 전망 및 적자의 사유(출처)
Bonus : 밋롬니의 구체적인 세금감면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