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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책들 단평

진정 회개할 곳은 교회다

스스로가 목사인 저자 권영진 씨가 한국 개신교계의 문제를 내부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책. 그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한국 개신교계가 어떻게 성경을 편의적으로 해석하였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의 일탈을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에 대안을 제시해야 할 교회가 가장 “자본주의”적이 된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정의란 무엇인가?

“인문학 책은 안 팔린다”는 통념을 깨부순 베스트셀러. 그 광풍이 지나가고 먼지가 가라앉은 즈음에 읽었다.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흥미로운 주제를 솜씨 있게 엮어낸 수작. 다만 날선 이념적 대립이 여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갈등에 대해서는 애써 피해가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하는 점이 아쉽다. 센델이 말한 “연대적 의무”에서 연대의 당사자들에 대한 고찰이 더 필요하다.

사모펀드의 제왕 : 블랙스톤 그룹과 슈워츠만 이야기

현대 자본주의의 중추적인 투자행태가 된 프라이빗에쿼티 중에서도 걸출한 플레이어가 된 블랙스톤에 관한 이야기. 인사이더들이 읽어도 도움이 될 정도로 펀드의 성장에 관한 밀도 높은 이야기들이 잘 서술되어 있다. 이런 정도의 취재력과 날카로운 시각을 유지하는 서적이 발간된다는 상황이 부럽기도 하다. 다만 긴 역사를 책 한 권에 풀어내다보니 후반부 들어 조금 지루해지는 감도 있다.

적군파 내부 폭력의 심리학

학생운동이 왕성했던 1960년대의 일본,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다”는 신념하에 결성된 조직이 적군파다. 좌익세력 내에서도 소수였던 이들이 공안의 탄압을 피해 산으로 피신하고 벌어진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기 파괴적 행위.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책.

사볼타 사건의 진실 v.264

1920년대 ‘사볼타’라는 한 무기회사에서 벌어지는 파업 사태를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사랑하고 증오하고 반목하는 관계를 그린 소설.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한 소설은 누군가의 법정증언, 1인칭 시점의 독백 등을 시간상으로도 앞뒤로 뒤섞어 서술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계급상승을 꿈꿨던 한 가난한 젊은이의 삶이 구차해보이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하게 만들던 상황.

이상호 기자 X파일 :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삼성 재벌이 정치권을 휘어잡기 위해 꾸몄던 음모가 담긴 육성녹음 파일이 있었고, 이를 보도하기 위한 한 기자의 외로운 싸움이 있었다. 자본이 정치를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외곬수가 그 자본에 대항하여 어떻게 싸워왔는지에 대한 기록. 결과는 절반의 승리? 또는 또 다시 평안한 일상? 이 사건은 이건희, 이상호, 노무현, 노회찬 등의 인물들을 엮으며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와중에 안철수 국회의원 탄생.

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서양의 시각, 금(金)의 시각으로 서술됐던 경제사를 동양의 시각, – 사실은 다분히 중국의 시각이지만 – 은(銀)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본 책. 유럽의 금융발전, 주식회사의 탄생, 중국의 제조업, 유럽의 남미 수탈, 금본위제, 아편전쟁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은(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촘촘히 알려준다.

긍정의 배신 書評

최근에 <긍정의 배신>이란 책을 읽었다.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가 유방암에 걸린 후, 미국 사회 전반에 어느덧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만연해 있음을 깨닫고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쓴 책이다. 유방암에 걸린 후 저자가 직면한 세상은 자신의 처지를 긍정해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의 세상이었다. 의사들은 과학적 근거가 거의 없음에도 긍정적으로 사고해야 병이 더 빨리 낫는다고 채근하고, 환자들은 밑질 것 없다는 심정으로 “긍정 이데올로기”를 공동체 내에서 공유한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항변은 패배적 사고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로 치부되었다.

저자는 책의 나머지에서 자기계발서, 동기유발 강의, 종교, 심리학, 경제 분석 등 사회 곳곳에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음을 고발한다. 자기계발서나 동기유발 관련 강의 등은 이미 “긍정 이데올로기”가 그 사상적 기반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라는 고통스러운 속세에 대한 뉘우침을 주업으로 하는 분야에까지, 그리고 나의 콤플렉스의 기원이 손수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학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심리학1에까지 “긍정 이데올로기”가 퍼져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의외였다. 어쨌든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경제 분야에서 정점을 이룸을 고발한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폭발하면서 전 세계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은,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 그 사태를 묘사할 때는 반드시 대문자를 써야 하는 – 엄청난 사건이었다. “음악이 흐르고 있는 동안에는 춤을 춰야 한다”는 시티그룹 CEO였던 찰스 프린스의 발언이나 “설사 소가 만든 상품이라도 등급을 매겨야” 한다던 S&P 직원의 발언은 미국 경제에 만연해 있던 “긍정 이데올로기”에 찬물을 끼얹는 냉정함이 얼마나 심각한 배신행위였을 지를 잘 설명해주는 명언들이다. 결국 “긍정”이 문제가 아니라 악화되는 현실에 대한 외면이 문제였던 것이다.

긍정은 좋은 것이다. 긍정을 긍정해야 한다. 하지만 매사를 긍정하면 음양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현실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데, 내가 “끌어당김”의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턱없는 낙관으로, 가장 큰 무언가를 얻은 이는 <시크릿>의 저자 론다 번이다. “실직이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다”라는 동기유발 강사의 강의로 가장 이득을 누리는 이는 노동자를 해고한 회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청춘을 위로하는 책을 통해 가장 크게 위로2받은 이는 저자인 김난도 씨다.3 진정한 긍정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주의이지, 현실의 외면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긍정적 사고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의 이면이다.[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 전미영 역, 부키, 2011년, 27p]

서울에서 월스트리트로 短評

영주 닐슨이라는 성공한 채권 트레이더가 쓴 월스트리트 성공기다. 누군가 자신이 쓴 책이라도 제목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던데 이 책의 제목 <서울에서 월스트리트로>도 작가의 의도와는 약간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오히려 <동양여자로서 월街에서 홀로 서기> 정도의 제목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너무 설명을 하는 투이긴 하지만) 한편 신용위기 이후 월街를 다룬 모든 책이 그럴 필요까지야 없었겠지만 이 책이 다루는 신용위기의 국면은 투자은행의 행태에 대한 반성이나 반추라기보다는, 자신이 다루던 prop trading부서가 해체되는 조직의 구조조정에 대한 계기를 마련한 정도로의 서술밖에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면이 있다. 결국 조금은 철지난 “월스트리트 성공기”인지라, 성공기에 포커스를 맞춘 출판사의 의도였을 수도 있고 독자도 잿더미위에서의 성공기는 바라지 않았을 것이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엄청난 사건이 미풍 정도로 간과되었던 것은 의외였다. 그러한 점이 리만브라더스의 임원이었던 로렌스 G 맥도날드의 <상식의 실패>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물론 <상식의 실패>는 성공기가 아니라 실패기이긴 하다.

오늘의 교훈 : 모르면 함부로 베끼지 말자

현대 금융은 부채(負債)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인 토킹 헤즈(The talking heads)는 ‘생(生)에 단 한번’(Once in a life time)이라는 뮤지컬에서 노래한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큰 자동차와 아름다운 집과 멋진 부인을 가졌습니까?” 답은 부채였다. 과거에는 숨겨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부채는 현대인들의 필수 생활 양식이 됐고, 근검보다는 낭비가 미덕이 됐다. 은행들도 한몫 했다. 투자자들을 상대로 대출을 늘려 온 은행은 금리 차이로 몸집을 키웠다.[[經-財 북리뷰] 익스트림 머니]

조선비즈에 실린 ‘익스트림머니’라는 사트야지트 다스의 신작의 리뷰다. 사트야지트 다스의 책은 전에 ‘파생상품, 드라마틱한 수익률의 세계’를 읽은 적이 있다. 풍부한 금융관련 지식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같은 대중문화의 유머스러운 코드를 섞어 재밌게 책을 써내는 재주가 있던 작가로 기억하고 있다.

각설하고 저 리뷰는 우리나라 기자가 썼는데도, 리뷰에 국내에서 그리 인지도가 높지 않은 Talking Heads를 언급하고 있어 나름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작은 문제가 하나 있는데 Once in a life time은 뮤지컬이 아니고 싱글곡이란 점이다. 내가 아는 바 그 이름의 뮤지컬도 없고, 물론 토킹헤즈가 출연한 적도 없다.

결국 기자는 토킹헤즈를 모르고, 그 노래도 모르고, 그 뮤지컬(!)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기자는 그 노래를 언급한 것일까? 답은 사트야지트 다스가 그의 책에서 그 노래를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출판사는 보도자료에 이 사실을 언급했을지도 모르고 기자는 그것을 보고 기사를 쓰며 베꼈을지도 모른다.

extreme money could only beget a financial crisis
혹시 이 문장 때문에 뮤지컬이라고 생각했다면 기자 바보~(출처)
 

오늘의 교훈 : 모르면 함부로 베끼지 말자.

어떤 예술작품이 창조되었던 과정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전방위적 아티스트인 David Byrne이 최근 How Music Works라는 책을 냈다. 전설적인 펑크/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True Stories라는 영화를 감독했고, 많은 미술작품을 만들었고, 뉴욕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전거 예찬론을 책으로 펴낸, 그야말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멋진 분이시다.

How Music Works는 그의 음악가로서의 경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낸 책인데, 서구의 여러 언론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그 책에 관해, 그리고 그의 음악적 경험에 관해 인터뷰한 내용의 일부다. 이 부분은 소위 예술의 “집단창작”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 하는 것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라 여기에 옮겨 적는다.

개인적으로 저는 책에서의 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내가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인 당신의 토킹헤즈와의 경험과 당신의 토킹헤즈와의 작곡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Remain in Light이 집단적인 즉흥연주의 결과였다는 것 말이에요.
우리는 Fear of Music에서 일부 그런 시도를 했었어요. 즉흥적으로 작업한 곡이 몇 개 있죠. 그리고 이런 경험이 “와~ 썩 훌륭하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졌죠. 그리고 the Bush of Ghosts 레코드에서는 모든 작업이 스튜디오에서 즉흥적인 것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이 전혀 다른 음악들로 귀결되었고 약간은 바보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이들이 개입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었죠. 모든 밴드들이 해볼 만한 재밌는 일이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 방법으로 나아갔고 최소한 두어 장의 앨범에서 그렇게 시도했죠. 그리고 대부분 제대로 됐어요. [웃음] 놀랍지도 않지만 코드 변화는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 재밍(jamming)이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두 개나 세 개 정도의 코드 정도로 끝났죠. 그러나 그루브나 질감은 만약 기타 하나로 홀로 앉아 있었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할 그런 것들로 완성되었습니다. 세 개내지는 네 개의 파트가 함께 포개어지는 것이죠. 각각의 파트는 퍼즐 한 조각 같고, 질감과 그루브가 함께 섞입니다.[인터뷰 전문 보기]

예술이나 혹은 다른 발명들이 많은 경우 개인의 재능으로 창조되지만, 이 사례처럼 여러 재능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사례라 생각된다. 또한 이렇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의 공명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절대 다수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에 대한 모방을 통해 재창조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는 “창조적 모방”일 것이다. 덕분에 Remain in Light은 토킹헤즈의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앨범 수록곡 Once In A Lifetime

오늘 아침에 경험한 생각의 흐름

얼마 전에 수잔 손택이라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저명한 평론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우디 알렌의 초기작인 가짜 다큐멘터리 Zelig에서 그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지적인 외모와 목소리로 짐짓 진지하게 우디 알렌의 엉터리 캐릭터를 분석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그래서 회사 도서실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를 빌려 아침 일찍 출근할 때마다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이 에세이 모음집에는 Jack Smith 감독의 기괴한 걸작 Flaming Creatures(1963)에 대한 옹호 글도 있다. 노골적인 섹스씬도 있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포르노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이 수잔 손택의 입장이다. 이 에세이에서 작가는 이 영화를 “팝아트의 엉성함, 방자함, 느슨함”이 담겨져 있어 “팝아트라는 경박한 이름으로 통하는 장르의 휼륭한 견본이 되는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수잔 손택은 “팝아트 운동이 지닌 한 가지 위대한 미덕은 뭔가 주제에 대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낡은 규범을 후려갈기는 방식에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에세이 모음집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수잔 손택은 “예술가의 숭고한 중립성”을 방해하는 일체의 시도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석은 “우리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예술을 “다루기 쉽고 안락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잔 손택의 팝아트에 대한 그러한 칭찬에 생각난 비디오가 있었다. 팝아트의 가장 유명한 전도사였던 앤디 워홀의 인터뷰다.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부른, 노골적인 反骨기질을 가진 앤디 워홀은 이 인터뷰에서 시종 일관 “I don’t know.” 등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는데, 수잔 손택이 말하는 “주제에 대해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낡은 규범”을 무성의하게 후려갈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생각난 이들이 이번에는 Curiosity Killed The Cat이라는 80년대 팝밴드였다. Misfit, Ordinary Day 등의 인기곡을 내놓았던, 그렇지만 단명한 이 밴드가 생각났던 이유는 앤디 워홀이 이들의 뮤직비디오 Misfit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밥 딜런의 비디오를 흉내낸 이 작품은 앤디 워홀이 감독했고 직접 출연도 한 작품이다. 그가 생전에 했던 작업들 중 가장 마지막 작업이라고도 한다.


Curiosity Killed The Cat – Misfit by Konk1905
 

이 노래를 즐기던 중 이번에는 사이몬 코웰(Simon Cowell)이 떠올랐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TV쇼 American Idol에서 독설을 내뱉는 냉정한 패널로 유명한 그는 사실 영국의 방송인이고 Curiosity Killed The Cat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문제는 일설에 따르면 그가 당시까지도 잘 나가던 Curiosity를 히트곡 리메이크에나 써먹으면서 더 발전할 기회를 막았다는 평가도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평가는 Curiosity의 비디오에 대한 유튜브에서의 댓글 속에서 발견했는데, 정확한 워딩은 찾지 못했다. 다만 인터넷을 검색하다 흥미롭게도 이 CD를 발견했다. The Best Of Simon Cowell 이란 제목에 사이먼의 얼굴이 전면에 박힌 이 CD에는 Curiosity를 비롯하여 그가 거느린 가수들의 곡이 들어가 있다. 뭔가 참 구린 기획의 CD란 생각은 든다. 가수의 사진이 아닌 사이먼의 사진이라니.

이게 오늘 아침 출근해서 근무 시작 전까지의 나의 생각의 흐름이었다. 우디 알렌, 수잔 손택, 앤디 워홀, Curiosity Killed The Cat, 사이먼 코웰. 한때 유행했다는 Six Degrees of Kevin Bacon 게임처럼 우디 알렌이 사이먼 코웰까지 도달한 셈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직접 구성해야 했다면 아마 우디 알렌이 아메리칸아이돌에 깜짝 출연하여 자신이 악성(樂聖)이라고 주장했어야 했을 것이다.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읽고

현대사의 비극은, 우리가 그 비극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그 비극이 상상이상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당혹감 때문에 더욱 그 슬픔이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서울시민이라면 광화문에만 나가도 허름한 천막 속에서 어떤 역사가 진행 중인 사실을 알 것이다. OECD가입국에 세계 9위 규모의 무역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의 역사가 말이다.

쌍용자동차의 비극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전형적인, 한 기업의 굴곡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과 이에 따른 부실, 부실화된 기업의 생존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조치, 이에 따른 이해당사자들(특히 노동자)의 엄청난 고통 등등. 한 가지 보다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무려 22명이나 목숨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늦가을의 낙엽처럼 힘없이.

인기 소설가 공지영 씨가 쓴 ‘의자놀이’는 이 전형적이면서도 한편으로 기이한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한 “르포르타주”다. 책은 쌍용차 사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작가가 하나둘씩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작가의 느낌을 적고 있다. 쌍용차의 주인이 쌍용인 것으로 알고 있었던 무지한 작가는 발품과 주변의 도움을 통해 회사주인이 쌍용이 아닌 사실 이상의 엄청난 비밀과 비극이 숨어 있음을 깨닫고 분노한다.

이 책이 특히 많이 할애하고 있는 부분은 회사의 정리해고에 저항하여 조직된 77일 간의 파업투쟁 중, 그리고 그 이후 마치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이어졌던 연이은 노동자의 죽음의 현황과 원인에 대한 묘사다. 노동환경연구소가 노조원 25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정상인 사람이 7%밖에 안 된다”(147쪽)는 기가 막힌 사실은 그 어느 사실보다 충격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정신병동을 세울 일이다.

하지만 그간 진행되어온 모습은 야만적으로 진압당한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불법파업 세력”이자 가해자로 자리매김 되었고 정신치료는커녕 체포와 구속으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지역사회는 그들을 “빨갱이”라 부르면서 외면했다. 책에서 재인용한 PD수첩에서의 한 노동자의 증언이 이 상황에서의 노동자의 박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회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나가달라고.”(149쪽)

22명이 목숨을 내려놓는 끔찍한 상황이 우리의 시선을 쌍용차에 더 머물게 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고 그러한 이유로 공지영 씨 역시 서둘러 책을 내게 되었지만, 사실 비슷한 패턴의 “합리적인”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노동자의 투쟁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쌍용차처럼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간 르노삼성은 매각설이 나오고 있고, 현대자동차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을 건 싸움이 진행 중이다.

‘의자놀이’에서의 아쉬운 점은 이렇게 반복되는 경제상황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여 페이지의 짧은 르포르타주1란 점도 제약요인이거니와 경제현상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작가 역량의 한계도 엿보인다. 쌍용차 매각과정에서의 의심스러운 사실관계는 노조 측 전문가의 의견을 많이 참조하여 기술하였지만 이러한 개별사실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컨소시엄이란 규모가 큰 사업이나 투자 따위를 할 때, 여러 업체 및 금융 기관이 연합하여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데, 상하이차의 매각에 왜 컨소시엄이 필요한지 모르겠거니와 이때 난데없이 맥쿼리 증권의 이름이 보인다. 맥쿼리? 들어본 이름이지 않나? 최근 제멋대로 통행료를 올린 우면산 터널에도 맥쿼리란 이름이 보이고, 지하철 9호선에도 보이고, 인천공항을 파는 것이 소원인 이명박 대통령만큼 간절하게 인천공항을 사고 싶어 하는 명단에도 이 이름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큰 아들 이지형이 2007년 9월까지 맥쿼리 IMM의 자산운용사 대표로 있음을 참고로 알려드린다.(84쪽)

M&A는 자산실사, 증권발행 등 많은 제반절차를 수반하므로 당연히 컨소시엄이 필요하거니와, 맥쿼리 증권은 “우면산 터널”,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그 맥쿼리” 자산운용사2와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음모론적 시각은 자본주의 일반의 역학관계를 나꼼수 식 정치공학 놀음에 머물게 하는 시도일 뿐이다. 이런 시각은 작가의 소설 ‘도가니’ 식으로 묘사하자면 이럴 것이라는 다음의 묘사에서 희극으로 변신한다.

‘도가니’의 장경사 식으로 이야기하면 “아니, 아직까지 노무현 때 경찰 이미지 쇄신한다 뭐다 해서 게으른 게 이골이 난데다가, 요즘 노무현 자살하고 나서 나름 그 사람 흠모하던 말단들이 아무리 말해도 잘 안 움직인다고. 그러니 당신들이 요청해야지.(106쪽)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해고라는 직격탄을 날린 법적근거를 마련해준 정부가 김대중 정부였고, 쌍용차가 의심스러운 정황으로 매각된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 노동자의 탄압에 “그 사람을 흠모하던 말단들이 잘 안 움직인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소설적인 상황일 뿐이다. 정리해고 사유가 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엄격하게 제한되었었다는 사실관계 없는 서술(160쪽)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위험한 편견이다.

이 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있어 “강력한 무기”다. 사회가 시선조차 돌리지 않던, 기껏 돌린 이도 빨갱이라 매도하던 노동자들이 실은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약자란 사실을 유명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땅의 노동탄압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 좁은 시선을 제시했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하종강 씨와의 갈등도 작가의 이런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획과 더불어, 현장을 지키고 있는 다른 수많은 무명작가와 목격자들의 존재가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