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感想文

요즘 아이패드로 이런저런 명화 컬렉션 앱으로 명화를 감상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런 앱들 중 하나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을 담은 Louvre HD다. 그림들은 당연하게도 성화(聖畵)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그림들보다는 화가가 살던 당시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風俗畵)가 더 마음에 든다. 그런 풍속화도 당시 화가들의 주요고객이었던 귀족이나 부자들의 초상화가 많지만 때로는 거지나 저자거리의 상인 등 삶이 고달픈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출처)
 

그런 그림들 중 유난히 내 눈을 잡아끈 그림이 있어 소개한다. 캥탱 마시(Quentin Matsys 1466~1529)라는, 지금의 벨기에인 플랑드르의 화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1514년作)가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귀족이 아닌 고리대금업자라는 상인이라는 점이다. 당시 플랑드르는 유럽의 상업 중심지였고 고리대금업자라고 해서 꼭 부정적인 뉘앙스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를, 그것도 그가 일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 이채로웠다.

그림을 상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전체적인 그림을 보자. 신중하게 금화의 무게를 재고 있는 업자의 표정에는 장인정신을 느낄 정도의 숙연함이 있다. 옆의 부인도 무심한 듯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생생하다. 힘줄까지 느껴지는 손들의 묘사력도 뛰어나다. 당시의 복식문화를 알 수 있는 의상, 여러 정물들의 터치도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는 처음 봤을 때 연상되는 그림이 있었는데,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년경 ~ 1441)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1434년作)이었다.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2인 초상화 (출처)
 

그림의 의미를 살펴보자. 후대의 ‘미술 역사가’들의 평은 이 그림이 풍자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다.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중세엔 아직 고리대금업자는 도덕적으로 떳떳한 직업은 아니었다. 당시교회는 이자수취를 금지하고 있었고, 주로 차별받는 유대인이 이런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고리대금업자의 아내가 성가족(聖家族)의 그림이 담긴 종교서적은 건성으로 넘기고 남편의 일에 신경을 쓰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모양새다.

한편,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몇 명일까? 책 속의 마리아와 예수를 뺀다면 다섯 명이다. 그림의 오른쪽에 아내의 옆을 보면 창밖으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의 모습이 부부 앞에 놓인 볼록 거울 – 이 정물이 또한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을 연상시킨다 – 에 비춰지고 있다. 화가가 왜 이런 사람들을 슬쩍슬쩍 배치해두었는지, 그 상징적 의미가 무척 흥미롭다. 집밖의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거울에 비친 터번을 두른 이는 왜 거기에 있는 것일까?


거울 속에 비친 미스테리의 인물, 흑인인 것 같기도 하고 또는 死者?
 

일단 집밖의 두 사람에 대해서는 업자의 작업실이 저자거리에 있었으니 집밖에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거울에 비친 사람이다. 어떤 역사가는 이 사람을 창문 밑에 숨은 도둑이라고 했다는데, 역사가고 뭐를 떠나 어떻게 이런 해석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방의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 터번을 두른 사람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해도 이 사람은 고리대금업자의 동업자이거나 그에게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산토스 마누엘 레돈도(Manuel Santos Redondo)라는 한 교수는 이 그림에 도덕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보다는, 마시가 당시 플랑드르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경제행위에 대한 묘사를 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있다. 아내가 종교서적을 펴들고 있는 것도 그들의 상행위가 종교적으로 옳은 것인지를 참고하고 있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그림에 과도한 풍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대사가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로 이 그림이 그려진 25년 뒤, 마리우스 반 레이메르발(Marinus Van Reymerswaele)이라는 화가가 똑같은 이름과 비슷한 구도로 또 하나의 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라면 아내가 보고 있는 책이 종교서적이 아니라 회계장부란 점이다. 레돈도 교수는 이런 패턴의 그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저 막 루터 종교개혁이 막을 열던 시대상황의 경제행위에 대한 묘사일 뿐 다른 풍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미학적으로 마시의 그림에 한참 떨어진다 (출처)
 

어쨌든 레돈도 교수의 해석도 또 하나의 의견이다. 개인적으로는 호사가적 취미 때문에 풍자적 알레고리가 어느 정도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심미적 쾌감을 충분히 주는 걸작이라는 점에서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요컨대 마시의 그림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며 의미를 부여할만한 재밌는 소재는 많지만, 꼭 특정 역사가의 해석대로만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들여다보는 계기 정도로 삼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感想文

예술, 그 중에서도 미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재능이 미술을 미술답게 하고 우리에게 예술적 쾌감을 안겨주는가? 이러한 질문은, 예를 들면 마르셀 뒤쌍의 작품 ‘샘(Fountain)’을 대할 때 더욱 대답하기 난감해진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볼 때에는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던 것이 ‘샘’과 같은 현대의 추상예술에 접어들면 흐릿해지는 것이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이런 현대미술의 모호함을 고발한 책이기도 하다.

한편 언젠가부터 이러한 제도권의 위선을 비웃으며 미술계의 ‘힙합전사’가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친 거리의 청년들이 극장의 호화스러운 무대에서 우아한 춤을 추는 대신에 거리에서 골판지를 깔아놓고 힙합댄스(또는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것처럼, 일군의 예술가들은 거리의 벽이나 광고판에 불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놓기 시작한다. 그런 예술가들 중에서 내가 알게 된 최초의 거리예술가는 아마도 장 미쉘 바스키아였던 것 같다.

바스키아의 현란한 색채감과 절제되지 않은 형태의 자유분방한 작품을 접한 제도권은 그에게 ‘검은 피카소’란 별명을 지어줬고, 이윤극대화를 위해 그의 재능을 빠른 속도로 확대재생산한다. 결국 그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작품‘공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착취당하며 괴로워하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만, 거리 예술가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한 프랑스인이 이러한 거리의 삶을 아무 생각 없이 필름에 담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거리 예술가인 뱅시(Banksy)가 감독했다는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영화는 어릴 적 경험한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것을 비디오로 기록해야만 성이 풀리는 집착증을 가지게 된 티에리가 어떻게 거리 예술가의 모습을 찍게 되었고, 뱅시를 만나게 되었고, 뱅시의 권유에 따라 스스로 거리 예술가가 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지를 경쾌하지만 냉소적인 유머감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다큐에 따르면 원래 뱅시는 그가 기획한 미국에서의 전시회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또 다시 거리예술이 제도권의 상업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면서, 거리예술의 진정한 모습을 티에리의 기록물을 통해 알리기 위해 티에리에게 기록물을 편집해 작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티에리의 재앙 수준의 작품에 넋을 잃은 뱅시가 작품의도를 완전히 바꾸고 티에리의 자료를 기초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즉, 뱅시의 권유에 따라 티에리 스스로가 전시회를 기획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 과정이 제도권 미술계의 허영심에 찌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간파한 뱅시가 작품을 거리예술에 대한 소개 다큐가 아닌 거리예술을 기록하고 다니던 티에리의 인생역전 드라마로 바꿔 버린다. 이를 통해 그는 다다이즘, 바스키아, 그리고 뱅시 그 자신 등, 미술계의 연속되는 사기극이 티에리에 이르러서도 반복재생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티에리가 존경하는 뱅시의 권유에 따라 기획한 전시회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어이없는 대규모의 전시회로 만들고, 구인모집을 통해 작품을 제작할 기술자들을 모집하고 – 마치 다큐에 언급된 데미안 허스트처럼 – , 전시장을 기존의 팝아트를 포토샵으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메워가는 과정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재생산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사기극의 극적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예술의 자판기 수준이랄까?

예술적 재능과 관련 없는 티에리의 성공에 대해 뱅시 등 거리예술가들은 씁쓸한 미소를 짓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티에리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이룬 성공에 흡족해 한다. 작품구입자들은 티에리의 작품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건 간에 다음 거래에서 만족할만한 투자수익을 거두기만 하면 되니까, 어쨌든 이 예술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은 시장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보관되거나 유통될 것이다.

재밌는 비디오 및 스마트폰 앱 소개

RSS 구독하는 블로그들 중에 PostSecret 이라는 블로그가 있다. 엽서에 이런저런 그림을 뜯어 붙이고 거기에 남모르는 비밀을 적는다는 형식의 예술작품을 선보이며 유명해진 블로그다. 작가는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는 등 이 블로그를 통해 명성을 쌓고 있어, 블로그를 통한 파워블로거가 된 한 전형이 되었다. 그런데 이 블로그가 최근 아이폰/안드로이드 앱을 선보였다. 아직 써보지는 않았는데 이를 홍보하는 비디오까지 만들었기에, 그리고 이 비디오가 꽤 훌륭하기에 여기 소개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공유하는 앱. 나도 한번 비밀을 공유해볼까? 당신의 비밀은 무엇인가요?

 

레트로퓨처리즘 그림 하나


(source: “Le monde et son aventure”, illustrator: F.H.K. Henrion)

개인적으로 레트로퓨처리즘적인 그림이나 사진들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옛날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의 도시풍경 그림이 특히 마음에 든다. 그 중에서도 F.H.K. Henrion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맘에 들어 공유한다. 선명한 색감과 직선적인 건물들의 담대한 묘사가 특히 마음에 든다. 이 그림을 보면 예전 사람들의 상상력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 그 공통점은 날아다니는 공공교통수단과 빌딩을 관통하는 도로다.(이런 개념이 들어 있는 그림들은 여기, 여기여기에서 볼 수 있음)

하지만 날아다니는 교통수단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로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고(예로 하늘에서 교통사고라도 났다가는 그야말로 재앙일 듯), 빌딩을 관통하는 도로는 zoning의 어려움으로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일본에서는 간혹 시도하는 사례가 있긴 하다). 여하간 이 그림에서는 그렇게 두 가지 교통 대안을 통해 확보된 지상의 토지를 녹지에 할애하고 있다. 이렇게 널찍하게 도시의 땅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는 하다. 도시계획은 만만한 것이 아니거든.

페르낭 레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큐비즘, 기계, 건축, 공산당, 서민적 레크리에이션 등등.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큐비즘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인 페르낭 레제(Jules Fernand Henre Léger)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나열해보았다.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중 하나로는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립 퐁피두 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2008년 한국에서 열린 ‘퐁피두 센터 특별전 <화가들의 천국>’이 열릴 때에 국내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작품이 앞서 나열한 페르낭 레제의 그림에 관한 키워드가 포괄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Les Loisirs. Hommage à Louis David
huile sur toile de Fernand Léger – 1948-1949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Georges Pompidou
© ADAGP Paris 2004
© CNAC / MNAM – distr : RMN / Jean-François Tomasian

1881년 생인 페르낭 레제는 건축을 공부하다 1910년경부터 큐비즘 운동에 참가, 피카소, 로베르 들로네 등과 함께 적극적인 추진자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그는 기계문명, 건축, 추상회화의 접점을 모색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1919년 그린 ‘도시’라는 작품을 보면 이러한 경향을 잘 목격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기계문명에 대해 낙관적이었고 이를 즐겨 표현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기계문명과 기술진보에 대해 낙관적이란 점에서 목가적인 反기계문명론자와는 다른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장이 유별날 것은 없다.

그의 작품만의 특징을 하나 들자면 유난히 원통형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기계 플랜트에 들어가는 각종 배관을 염두에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그의 경향에 대해 한 평론가는 큐비즘이란 단어를 재밌게 비틀어 튜비즘(Tubism)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런 레제의 원통형에 대한 집착은 구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그가 그린 사람들은 원통형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사람들은 뚱뚱해 보인다기보다는 튼튼해 보이는 골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난히 뚱뚱한 사람을 즐겨 그렸던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 작품을 맥락 없이 전시장에서 만난다면 그저 평범한 남녀가 여가를 즐기는 모습쯤으로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술진보로 노동자들에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작품이다. 예의 원통형 몸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유입된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하고 하이킹을 즐기고 있는데, 기술진보로 직장에서 잘리는 대신 여가를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그린 사회는 이미 이상적인 노동자 중심의 사회가 전제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레제가 이런 낙관적인 이상향을 묘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좌익들이 확실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좌익은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 하에 사회당, 공산당 등이 결합한 인민전선을 결성한 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1936년 6월 총파업 이후 전국적 규모의 중앙노사협정인 마티뇽 협정(Accords de Matignon)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대표적 노동조합의 개념과 단체협약의 효력확장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 협정에는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2주간 유급휴가제’가 도입되어 노동자는 비로소 유급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퐁피두 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레제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를 위한 유급휴가를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휴가는 이전까지 귀족이나 부르주아지의 전유물이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프랑스 노동자는 마티뇽 협정 이전까지는 유급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통한 자본가와의 타협, 기술진보로 인한 사회잉여의 증가 등이 노동자의 여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이 시기부터 만들어졌다. 그래서 자연히 이 작품에는 혁명까지는 아니어도 사회개혁을 통한 노동자 세상에 대한 낙관이 담기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노동자의 유급휴가는 – 사실 잘 알다시피 그마저도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지난한 계급간의 갈등과 투쟁, 그리고 레제와 같은 예술가들의 선전선동에 의해 기틀을 다져온 것이다. 일단 무엇이든지 가지게 된 자들은 웬만해선 기득권을 잘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풍을 “사회주의 이론의 결과이되, 전투적인 맑시스트라기보다는 열정적인 휴머니스트”적인 것이라 평했는데, ‘여가’는 이러한 평가에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알베르토 코르다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 작가 자신의 명성보다 더 유명한, 예술작품 중에 가장 빈번히 복제된 이미지의 창작자이다. 그가 찍은 쿠바의 영웅 체게바라(Che Guevara) 사진 한 장이 이탈리아 출판업자의 손에 건네지면서, 그 이미지는 수많은 변주곡으로 복제되었고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급기야 상업적으로도 변용되어 왔기에, 쿠바 혁명에 대한 그 어떠한 서술보다도 더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Foto original del Guerrillero Heroico de Alberto Korda

얼터너티브락 밴드 Radiohead는 그들의 대표곡 Creep이 너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자신들의 음악적 의도가 곡해되었기에 그 곡을 싫어했다는 미확인 에피소드가 있지만, 적어도 코르다는 체게바라의 사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뭐 어쨌든 그로 인해 전 세계, 특히 유럽 권에서 적지 않은 명성을 얻었고, 이를 통해 다른 작품들도 소개할 수 있었으니 일종의 세상을 향한 깔때기의 역할은 충분히 한 셈일 테니 말이다.(그리고 역시 그 덕에 한국에서도 작품전이 열렸고…)

코르다의 전시장은 코엑스 전시장이다. 뭐 다른 전시장도 크게 유별난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나는 반(反)자본주의적인 작품들의 전시장소가 자본주의의 첨병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인 코엑스에서 열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 체게바라 사진으로 돌아가서, 그 작품이 지닌 이념적 지향성이 지속적인 복제를 통해 – 특히 상업적 복제 – 많이 희석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장은 전시공간의 협소함 때문에 1관과 2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별히 감상의 맥을 끊는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작품의 배치와 섹션별 공간 활용이 맥을 끊었다) 전시된 작품은 그가 스튜디오 코르다에서 찍은 광고사진들, 피델 카스트로, 체게바라, 기타 혁명영웅들을 찍은 사진들, 기타 쿠바 민중들을 찍은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양적으로는 일종의 비공인 관제 사진사였던 관계로 압도적으로 카스트로 사진이 많다.

하지만 카스트로에 대한 사진이 많은 것이 곧 그에 대한 우상화 내지는 편향된 시각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혁명>지의 고용사진사로 일한 혁명적 예술가를 자처한 이이기에 쿠바 혁명과 카스트로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타의 사회주의 영웅의 사진과는 구별되는 시각이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 바로 <군중에게 연설하는 카스트로>다.

<군중에게 연설하는 카스트로>, 전시회 작품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이 작품의 이미지를 올리려고 무려 3시간 여를 인터넷을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결국 기억을 더듬어 발로 그린 유사(?) 이미지를 올리게 됨. 언젠가 찾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혁명 영웅이자 지도자인 카스트로가 프레임에서 매우 희한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물론 그가 사진의 중앙에 있긴 하지만 황당하게도 연설을 듣는 이의 발아래 서있다. 자칫 불경한 사진으로도 읽힐 수 있는 이 도발적인 구도를 통해 코르다는 카스트로를 비롯한 혁명 영웅들이 인민들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인민과 구분되어 있는 레닌의 연설 장면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주1)

이런 작품 이외에도 링컨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는 카스트로의 모습이랄지 군중 속에 파묻혀 있는 카스트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진을 통한 개인의 우상화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하였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자유로운 구도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기는 하지만 자유주의적 중산층의 삶을 누렸던 코르다 개인의 리버럴한 성향이 일정 정도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코르다는 광고사진 작업으로 사진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또한 이전에는 회계를 배워 쿠바에 있는 포록터앤갬블이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여자를 좋아하고 파티를 좋아하는 젊은 미남 코르다에게 인민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들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어떤 이는 벤쯔를 몰고 다니며 호사를 누리는데 어떤 이는 아이를 데리고 구걸을 하러다니는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시장 외벽에 설치된 코르다의 젊은 시절 사진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인민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어느 농장에서의 광고사진 작업 중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다. 코르다는 농장에서 한 소녀를 발견하였는데 그 아이는 작은 나무토막을 안고 있었다. 코르다는 그 나무토막이 어떤 용도인지 궁금했으나 놀란 아이는 도망가며 나무토막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야 울지마.” 그 나무토막은 소녀에게 인형이었던 것이다. 코르다는 이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다.

La niña de la muñeca de palo, 1959

그리고 쿠바혁명이 일어나자 그 혁명의 정당성을 받아들이고 자본주의의 분장사에서 사회주의의 선동가로 전향하게 된다. <혁명>지의 사진사로 활동하면서 카스트로를 비롯한 쿠바 집권층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되고, 이 덕에 마침내 1960년 5월 5일 열린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한 프랑스 화물선으로 인한 사망자 추모식에서 전 세계에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게 된 체게바라의 사진을 찍게 된다.

전시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전시회는 이러한 삶의 질곡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도록 알찬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20분짜리 다큐멘터리도 상영되는데 그의 인터뷰가 담겨져 있어 작품의도와 그의 삶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전시의 흐름이 그의 사상의 변화에 맞게 배치되지 않았다는 – 예를 들면 카스트로 사진은 전시회 전반부, 광고사진은 후반부에 배치되는 등 – 점이다.

몇 년 전에 지적재산권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이래, 이번에 그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사진예술 또한 작가의 삶, 그 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환경, 작품의도를 알 때에 더욱 마음에 와 닿게 마련인데 이번 전시는 한국 땅에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중에서도 드문 경우에 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Karsh가 탐미적이라면 Korda는 유쾌하고 혁명적이다.

그의 작품들 감상하기

(주1)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이미지들은 기존의 지도자적 시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敔)

오늘 날씨도 좋아 아내와 경복궁 나들이를 갔다. 그곳 박물관에서 아래와 같은 문화재를 발견했다.


이건 ‘어(敔)’라는 궁중 타악기다. 엎드린 호랑이 모양을 나무로 깎아 만든 악기로 음악의 끝을 알리는 악기라 한다. 연주법(?)은 머리를 세 번 내리치는 것이라 한다.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가 머리를 두들겨 맞고도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앞에서 ‘어’를 보면 더 재밌다.


빨간 립스틱까지 그럴듯하게 바른 모양이다. 그런데 난 이 모습을 보고 다른 어떤 캐릭터가 떠올랐다.


일본만화 ‘미소 짓는 세일즈맨(笑ゥせぇるすまん)’의 주인공 캐릭터다. 얼굴의 반은 차지하는 치열, 굵은 입술, 졸린 눈매가 영락없이 닮았다.

‘미소 짓는 세일즈맨’은 어릴 적 만화 서점에서 3권짜리 시리즈로 구입한 작품이다.(물론 불법 번역물이겠지) 내용은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들 면면히 보잘 것 없는 이들이었고 주인공은 이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불행에 빠트린다는 충격적인 줄거리다.


일본에서 발매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커버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이 만화의 작가가 그 유명한 아동만화 ‘도라에몽’을 그린 원작자 중 하나인 ‘후지코후지오A(藤子不二雄A)’라는 사실이다. 도라에몽과 같이 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을 그린 이가 이런 음울하고 루저틱한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도라에몽 역시 별로 “꿈과 희망”스럽지 못한 면이 적지 않다. 늘 희한한 장난감을 가져오긴 하지만 도라에몽 역시 실패한 로봇일 뿐이고 나머지 캐릭터들 역시 정상적인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 작품은 세일즈맨의 어린이 버전일뿐?

경복궁의 악기 ‘어’에서 어쩌다보니 도라에몽까지 오게 되었는데… 뭐 하튼 인생도 그렇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저런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생산적으로 가다보면 좋은 삶이 되는 것이고, 나쁜 쪽으로 흐르면 인생 망치는 것이고… 음… 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