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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렌의 이례적인 발언

1989년 이래로 현재의 형태로 조사를 시작한 소비금융조사에 따르면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상위 소수 가구로의 소득집중이 증가세다. [중략] 물가상승을 보정한 상위 5%의 가구소득은 우리가 표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89년에서 2013년 사이 38% 증가하였다. 반면 나머지 95% 가구의 평균 실질소득은 10% 미만으로 증가하였다. [중략] 그리고 소비금융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1989년 이후 부의 불평등은 소득의 불평등보다 더욱 증가세다. 표3에서 보면 1989년 조사에서 상위 5%의 미국 가구는 전체 부의 54%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지분은 2010년에는 61%로 증가하고 2013년에는 63%로 증가했다.[Perspectives on Inequality and Opportunity from the Survey of Consumer Finances]

이 발언은 재야의 “좌파” 경제학자의 발언이 아니라 재닛 옐렌 美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10월 17일 가진 보스턴 연방준비제도은행에서의 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연준 의장이 경제 전망이나 통화정책이 아닌, 이른바 “사회적 이슈”를 연설에서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불평등 이슈가 경제정책에서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한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어쩌면 피케티 열풍의 한 편린일 수 있을 것이고 관찰한 현상도 피케티의 그것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금융 및 제조업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제조업의 일자리를 뺏어서 중산층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반면 금융자산을 쥐고 있는 상위가구의 재산을 증식시켜주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위시한 대기업 경영진의 보수는 해당 기간 동안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 역시 소득불평등에 기여했을 것이다. 옐린 의장은 교육과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근본해결책일지 미봉책일지는 알 수 없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같은 현상을 놓고도 다르게 해석하여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불평등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세는 그들이 현실사회에 대해 발언할 때 더욱 냉혹하게 비쳐지는데, 예를 들면 소득불평등의 주요한 원인인 불법 파견근로1 에 대한 시각도 ‘다른 나라 다 하는 것을 법원이 막으면 우리는 경쟁에 뒤쳐질 것이다2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이제 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경제수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한 걸그룹 멤버의 죽음에 관한 단상

이 뉴스가 전해지면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돌 그룹의 관행에 관해 논란이 일었다. 하루가 다르게 신인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연예인들은 잠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라도 대중에 대한 노출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음반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와 기사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인피니트와 달샤벳 등 다른 아이돌 그룹도 회사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은비 사망 소식에 아이돌그룹 무리한 일정 도마에 올라.]

“레이디스코드”라는 걸그룹 멤버들이 탄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해 멤버 중 은비 씨가 사망하고 다른 둘이 중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는 한류(韓流)의 대표상품 중 하나인 걸그룹이 겉에 보이는 것처럼 발랄한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상황을 말해주는 사고라 할 수 있다. 자세한 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이 밝혀져야겠지만, 레이디스코드 등 한국의 많은 연예인들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과속차량에 몸을 싣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고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현실일 것이다.

대중음악 발전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의 음악 산업은 첨단으로 자본주의化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가 발명한 가장 맛깔스러운 산업 중 하나인 대중음악 시장은 비록 자본주의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다소는 비효율적인(?) 모습을 지녀왔다. 기업은 주요한 상품인 뮤지션을 기획해서 만들기 보다는 마이너 뮤지션의 데모를 듣고 메이저로 끌어올려 성공시키는 요행수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사용가치 중에서도 가장 알 수 없는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업계는 이런 방식을 선호해왔다.

뮤지션이 일정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곡까지 들고 오는 방식은 상품개발에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행수에 기대면서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90년대 대중음악 산업은 니르바나 Nirvana 라는 엄청난 히트상품을 얻었지만 업계가 통제되지 않는 리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말미암아 그 상품은 교환가치를 상실한 것이 한 예다. 이쯤 되자 업계는 이전에 간혹 시도되어 오던 기획 상품으로써의 뮤지션 양성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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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ce Girls in Toronto, Ontario” by Ezekiel.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기획적으로 만들어진 걸그룹의 한 예인 Spice Girls

이들은 음악 활동의 시작부터 철저히 기획사의 통제와 – 심지어는 사생활까지 – 훈련을 거친다. 주로 매력적인 외모와 군무(群舞)를 상품가치로 삼기 때문에 오디션과 고된 훈련이 필수과정이다. 곡을 직접 쓰기보다는 전문적인 팀이 만든 곡을 사용한다. 이렇게 훈육된 뮤지션의 음악은 유행하는 음악의 공통적인 문법을 답습하며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전의 마이너 뮤지션 뽑기보다는 시장 리스크를 줄인 셈이다. 단점으로는 상품의 기획 및 개발에 투입되는 투자비용이 이전보다 더 든다는 점이다.

업체 입장에서 이런 뮤지션들은 생산설비 등 고정자본(fixed capital)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 맑스는 자본가가 고정자본의 자본회전율을 높여 최대한 빠른 시간에 투자분을 회수하고, 시장변화에 따른 고정자본의 무용화를 방지하고, 종국에는 노동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잉여가치를 향유하려는 성향 때문에 노동착취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업체는 뮤지션의 상품성이 사라지기 전에 – 상품의 노후화1, 유행의 변화2 등으로 인해 –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돈 되는 곳은 과속을 해서라도 쫓아다녀야 한다.

대중음악 시장은 20세기를 거치며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인기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희로애락의 상황에서 위로를 받았고, 때로 뮤지션들의 영광과 죽음을 칭송하거나 애도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화려한 모습이 전면에 비춰지는 이면에는 무리한 일정 소화로 인한 피로감, 나아가서는 인용 기사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 등과 같은 비극적인 모습도 있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자본주의화된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국경제신문의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격렬한 저항에 관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새 경제팀의 핵심정책 중 하나인 사내유보금 과세 정책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매체는 한국경제신문이다. 매일경제신문의 경우 어느 정도 정책도입의 필요성을 찬성하는 편인 반면, 한경은 과세원칙이나 실효성 등과 같은 논란을 뛰어넘어 “사회주의자들의 음습한 노림수”라는 표현까지 등장시키는 이념적 잣대까지 들이대가며 그 부당성을 계속하여 주장하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은 바로 복지국가라는 이름 아래 환생(還生)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은 그런 사회주의자들의 음습한 노림수를 사려 깊지 못한 정치권이 수용하려는 태도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활보조 차원을 넘어 나이나 계층 등의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전방위적 증세를 알리는 신호탄이다.[유보금 과세, 국가 정체성 훼손하는 강제]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의 칼럼이다. 이 글에서 그는 복지국가로의 지향이 사회주의 이념의 환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내유보금 과세는 그 이념의 환생에 기름을 부을 전방위적 증세의 신호탄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14명중 8명 찬성, 2명 반대, 4명 입장유보인데, 필자의 주장에 따르면 8명 의원은 사회주의자의 노림수를 모르는 사려 깊지 못한 정치권인 셈이다.

사내유보금은 자본의 항목으로서 부채비율의 분모를 증가시키고 부채비율을 감소시켜 신용등급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중략] 이런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임금 인상은 이익 감소로 직결돼 현재도 저조한 추세인 기업의 수익성이 더 낮아진다. 배당 증가는 유보이익을 감소시켜 투자 감소로 연결된다. 현금성자산이 줄어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투자여력도 감소한다. [사내유보금은 나쁜 것인가]

좀 더 이성적인 한인구 KAIST 경영대학 교수의 글이다. 재무제표 중 재무상태표의 자본 항목에 해당한다. 이에 자본을 분모로 하는 부채비율의 산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후 왜 이익잉여금을 남겨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신선하지 않다. 기업수익성 악화방지를 위해 임금도 배당도 늘이지 않겠다는 주장은 주주 자본주의나 이해자 자본주의 모두의 이해관계에 반한다.

배당수입으로 가계소득이 늘어난다면 이미 서민도 아니다. 기업이익을 임금 인상에 반영하라는 것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만 더 벌어지게 할 것이다. [중략] 여러번 강조할 이유도 없이 기업이익의 처분은 기업가의 지극히 고유한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문제다. 오늘과 내일, 단기와 장기에 걸친 자원의 배분이야말로 기업가의 선택이요 경영행위의 본질에 속한다.['기업소득 환류'로 간판 바꾼 유보금 과세, 정말 이럴 건가]

앞서의 글이 외부필진의 칼럼이라면 이건 사설이다. 배당수입이 있으면 서민이 아니랄지 임금 인상하면 임금격차만 벌어진달지 하는 것은 괜한 오지랖일 뿐이다. 사설의 핵심은 기업이익의 처분이 “기업가의 고유한 경영판단”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 부총리는 이미 법인세 깎아줬더니 투자를 안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처분할 기업이익의 원천은 정부가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다. 이건 정부의 고유한 정책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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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 and Engels” by Original uploader was Σ at en.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음습한 사회주의자들

요컨대 한경의 논조는 사내유보금 과세는 정부가 기업의 고유한 경영판단에 간섭하는 짓이며 기업이익을 감소시키고 종래에는 사회주의자의 음습한 노림수에 놀아나 그 이념의 환생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과잉주장은 과세의 실효성이랄지 정책연계성 등에 대한 건설적 논의를 가로막을 뿐이다. 한편으로 사회잉여를 선순환 경제에 분배하지 않고 한 푼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스크루지의 추한 얼굴도 떠오른다.

새 경제팀의 정책방향에 대한 단상

자본주의의 3대 경제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다. 기업과 가계는 노동력을 사고팔아 각각 돈을 벌어 정부에 세금을 낸다. 정부는 이 세금을 걷어 주로 시장이 채워주지 못하는 영역에 돈을 지출한다. 기업이나 가계 역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벌어들인 돈을 소비한다. 가장 일반적인 경제지표중 하나인 국내총생산(GDP)은 이렇게 소비, 투자, 정부지출의 합에 수출을 더하고 수입을 빼는 형태로 추산된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이란 자료에서는 우리의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의 패턴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기간의 패턴과 유사하다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성장률은 바로 GDP의 변화추이로 산정되는데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2001~2011년 기간 동안 연평균 4.4%성장하였으나 2012~2013년 기간 동안은 2.6% 성장에 그쳐 일본과 유사하다는 것이 경제팀의 판단이다.

경제팀은 특히 경제성장의 3대 추진과제를 ‘내수활성화’, ‘민생안정’, ‘경제혁신’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현재의 경제상황이 ‘내수침체형 불황’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 판단이다. 경제팀은 ‘내수활성화’를 위해 소위 “41조원 + α”의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1조원의 패키지는 실제로 정부지출은 아니고 각종 기금의 추가집행이나 민간투자의 활성화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41조원 + α” 정책 패키지보다 더 혁신적인 경제팀의 아이디어는 기업에 너무 많은 돈이 쌓여있고 이를 가계로 순환되도록 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경제팀은 “내수부진이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가계↔기업↔정부의 경제 선순환 고리가 약화된 구조적·복합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임금 상승세가 둔화되고 비정규직 문제가 지속되면서 기업의 성과가 가계로 환류 되지 못 하고”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팀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문제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간 거의 찾아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게다가 야당에서나 주장하던 “사내유보금 과세”라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재계는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기업이익의 처분은 기업가의 고유한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팀은 대상을 신규 유보금으로만 물러설 뿐 과세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경제팀이 강행하려는 배경으로 기업과 가계간의 분배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사라졌다”는 인식은 국회예산정책처도 동일하게 판단하고 있는 상황이 깔려 있다. 가계의 실질소득 및 가처분소득은 악화되고 있고 이 부분이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경제성장률 저하와 경상수지 증가의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팀이 법인세 증세가 아닌 “근로소득 증대세제”와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당장의 정책효과를 논하기에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일단 경제팀의 문제인식과 이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다만 정부 전체적으로 보다 전향적인 노동정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단순한 정부정책의 수혜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임금결정력과 고용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활성화, 부당노동행위 엄단 등을 지원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않는” 反노동 행위가 엄존하고 있다.

노동자가 자산가 의식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는 ‘대중’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한 적이 없다. 가장 가난한 미국인도 하나의 개인이고, 잠재의식적으로도 역시 한 개인주의자다. [중략] 미국인 노동자들은 그 자신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큰 자긍심을 지닌 자산가들에 속한다.[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아인 랜드 저, 이종욱/유주현 역, 자유기업센터, 1998년, pp345~346]

사회주의는 미국에서 뿌리내린 적이 전혀 없는데, 이는 가난한 이가 그들 스스로를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로 여기는 대신 일시적으로 가난한 백만장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Socialism never took root in America because the poor see themselves not as an exploited proletariat but as temporarily embarrassed millionaires. [John Steinbeck]

두 인물이 미국의 빈곤계층 혹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에 대해 같은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인 랜드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철저한 자본주의자로 살았던 소설가인 반면,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 등 미국의 노동계급에 대한 애정을 담은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다. 이처럼 경제체제에 입장을 보면 좌우의 대척점에 서있는 소설가가 미국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들은 개인주의적 사고나 자기책임 의식이 강한 편이다. 아마도 건국초기 드넓은 땅을 개척해야 하는 성향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어쨌든 두 작가가 보기에 노동자의 그런 성향이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접어든 시기에도 여전히 타국의 노동자에 비해 더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아인 랜드는 긍정적으로 스타인벡은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노동자가 개척정신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창업 등의 방법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삶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초기 적잖은 노동계급 출신의 가난뱅이가 사업을 벌여 성공적인 자본가로서의 삶으로 안착한 사례도 많다. 문제는 그런 성공사례가 본인의 의지로만 성취될 수 없을 때조차, 여전히 노동자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근거 없는 긍정주의나 당의정과 같은 허위의식일 것이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 현재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소득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소득 상위 10%가 48.16% 점유)에 육박하는 수치[중략]다. 1979~1995년 30%에 머무르던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2000년 35%를 넘었고, 2006년 42%로 치솟았다.[“OECD도 몰랐던 사실.... 한국은 심각한 소득불균형 국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의 열풍 등 세계적으로 소득불균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미국 못지않게 소득불균형이 심하다고 주장하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에 관한 소개기사다. 우선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소득불균형이 심하다는 사실은 미국인의 낙관적인 개척정신에 다소 배반되는 현실이다. 또한 김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역시 그네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사실 창업정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 사람을 따라갈 이들이 없다. 터키나 멕시코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세계최고다.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일시적으로 가난한 백만장자”라고 여기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자긍심을 지닌 자산가”로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부지런히 창업하고 부지런히 망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노동자의 삶이 고달파서 창업하는 경우도 많아 안타깝다.

신세계그룹이 공격적인 편의점 진출 계획을 공개했다. [중략] 신세계는 편의점의 로열티을 없애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중략] 편의점 업계의 고질적 병폐인 24시간 영업 강요도 없앴다. [중략] 위드미는 또 편의점 경영주와 가맹본부간의 단골 분쟁 사항인 위약금도 받지 않기로 했다.[신세계 편의점 '위드미' 선전포고.."매장 1000개 늘린다"]

한때 트위터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계급적으로 소비를 하냐’고 비아냥거려 구설수에 올랐던 정용진 씨가 이끄는 신세계의 파격적인 사업계획이다. 그간 편의점 사장을 사실상의 노예로 만들었던 병폐를 모두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존 업계에겐 ‘대기업의 횡포’지만 창업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염려스러운 점은 또 하나의 이런 시스템이 창업주의 창업정신을 올곧이 지켜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의 당의정은 아닌지?

어쨌든 모든 노동자가 백만장자가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의 노동관

인류가 향유(享有)하고 있는 고도의 물질 문명(物質文明)과 정신 문화(精神文化)는 그 모두가 사실상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근로자의 노동력이야말로 국가 사회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하고도 존귀(尊貴)한 원동력(原動力)이라 할 것이다. – 66.3.10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1

흥미롭게도 박정희 前 대통령의 이 발언만을 놓고 보면 그가 노동가치론자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일찍이 윌리엄 페티, 존 로크 등의 사상가들이 주창하였고 고전경제학의 거두 아담 스미스가 이론적으로 정립하였으며 칼 맑스에 의해 “반역의 경제학”의 재료로 쓰였던 노동가치론이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사장님의 치사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다.

노동을 천(賤)하게 여기고, 근로자의 존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가 건전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인 것이다. 특히 조국 근대화의 드높은 기치(旗幟) 아래 한마음으로 뭉쳐서 모든 국민이 생산과 건설과 수출에 총진군(總進軍)해야 할 이 마당에 우리 근로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사명은 실로 막중(莫重)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 66.3.10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

대통령의 앞서의 발언은 노동가치론의 이론적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바로 이 주장을 위한 말머리로 꺼낸 것 같다. 즉 “노동을 천하게 여기고 노동자의 존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를 나무라기 위해서 모든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노동력의 산물임을 강조한 것이다. 노동이 없었으면 그 모든 것이 없었을 것이기에 “근로자”를 “공돌이”라 비웃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만이 “생산과 건설과 수출에 총진군”할 수 있다.

만일 노임을 노동 생산성을 훨씬 넘게 비싸게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중략] 상품의 가격이 따라서 올라가게 될 것이고, 상품 가격이 오르면 수출 증대가 어려워 질 것이다. [중략] 이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실업자(失業者)가 늘어나고, [중략] 결국 얼마 안 가서 자연적으로 근로자 여러분의 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 70.3.10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

어감이 조금 이상하다. “물질문명과 정신문화는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고 “근로자의 존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전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근로자의 임금은 노동생산성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오르면 결국 근로자의 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고 한다. 익숙한 수출주도형 “先성장 後분배” 논리이자 “트리클다운 효과” 논리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서구(西歐)의 여러 나라에서는 노사(勞使)의 협조 문제가 제기되었고, 오늘날 발전 도상에 있는 신생 국가(新生國家)들은 성장과 균형된 배분(配分)이라는 문제가 때로는 서로 상충(相衝)되는 현실 문제로서 대립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 67.3.10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주창되는 “先성장 後분배” 의 논리다. “먼저 파이를 키워야 나눠먹을 것이 있다”는 “트리클다운 효과”의 논리다. 요컨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노선은 명확하게 저임금을 기조로 하는 수출주도를 통한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하는 노선이었다. 상품경쟁력이 없는 제3세계의 흔한 노선이었고 박정희 역시 이 노선을 채택했다.

二차 대전 후 독일의 노동자들은 독일의 경제가 다시 부흥(復興)될 때까지 노동 쟁의(勞動爭議)를 하지 않겠다 하는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독일은 지난 二O여 년 동안에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기적이다, 경이적(驚異的)이다 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만큼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 국가도 그만큼 발전하고, 기업주도 그만큼 발전하고,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얻고, 노동자들이 여러 가지 처우(處遇)와 사회 보장(社會保障)을 받게 된 것이다. – 69.1.10 기자 회견에서

1964년 박정희는 서독을 방문했다. 그는 이 방문에서 서독의 여러 모습, 특히 노사관계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어록집 여러 군데에서 이 발언과 같이 서독의 노사관계와 남한의 그것을 비교하는 발언이 꽤 있다. 결국 그는 서독식 사회적 합의주의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독과 달리 남한의 사회적 합의주의에는 결여된 것이 있었다. 노동자의 발언권.

전후 독일에 있어서 어떤 회사가 종업원에게 노임을 올릴 것을 제의하자, 공장의 노동자들은 공장이 더 건전하고 충실하게 될 때까지 보류해 달라고 결의했다는 갸륵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러한 미담은 한국의 현실에서도 수없이 꽃을 피워야 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 65.3.10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상승이 우리 청년의 탓”이라는 KBS 보도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가 힘든 일이라며 취업을 기피하다 보니 고임금을 주고라도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2백만 원 이하를 받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줄고 2백만 원 이상 받는 근로자 수는 크게 늘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3D 업종의 중소기업들의 경우, 사람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위해 외국인 산업연수생 수를 2만 4천 명 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해 결국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만 올라가고 있습니다.[값싼 외국인 노동자 ‘옛말’... 월 400만 원!, KBS 뉴스, 2014.4.16.]

“우리 청년들의 3D업종 기피 현상” 운운은 꽤 오래된 레퍼토리다. 그런데 이 보도는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해서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만 올라가고 있다는 상관관계까지 도출하였다. 좀 더 이 논리를 확대해보자면 결국 ‘우리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만 고집하지 말고 3D업종에 취업하였으면 3D기업의 일자리 부족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에게 쓸데없는(!) 고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는 논리일 것이다. KBS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럴듯한 통계자료까지 제시했다.


출처 : KBS 트위터

통계자료의 진위여부는 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KBS가 제시한 자료는 해당 포털에서 올라온 ‘월평균 임금수준/성별 임금근로자’ 현황을 가공한 자료였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월평균 200만원 미만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4만6천명 감소한 반면, 200만원 이상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2만2천 명 늘었다. 감소한 절대숫자는 정부가 줄인 산업연생 수와 일치한다. 과연 KBS의 보도대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문제는 임금상승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월평균 임금수준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100만원 미만 52 42 -10 -19.2%
100만원~200만원 미만 519 483 -36 -6.9%
200만원~300만원 미만 143 159 16 11.2%
300만원 이상 45 51 6 13.3%

출처 : 국가통계포털

KBS는 ‘우리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고집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즉, 3D 노동시장에 우리 청년이 참여하지 않아 노동수요가 늘고 임금이 오른다는 논리다. 하지만 KBS는 이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임금상승의 주범으로 ‘우리 청년’을 겨냥했으면 마땅히 그 근거자료도 제시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한편, 통계적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하였으나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KBS의 제시자료가 2012~2013년 자료인데 여타 노동관련 자료는 최신 데이터가 2012년까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현황에 대한 각종 자료는 2013년까지 정리되어 있어서 다양한 원인 중에 우선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시장 내부를 훑어볼 수는 있었다. 우선 살펴볼 것이 ‘직업별 취업자 현황’이다. 비임금근로자까지 포함한 자료이긴 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데 통념과 달리 전문가, 사무종사자 등의 소위 화이트칼라 외국인 노동자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반면 기능원ㆍ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는 동기간 4만6천명이나 감소했다. 흥미롭게도 줄어든 200만원 미만의 월급 노동자 숫자와 일치한다.

직업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관리자,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 91 93 2 2.2%
사무종사자 20 24 4 20.0%
서비스ㆍ판매종사자 87 87 0 0.0%
농림ㆍ어업숙련종사자 24 23 -1 -4.2%
기능원ㆍ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330 284 -46 -13.9%
단순노무종사자 239 250 11 4.6%

출처 : 국가통계포털

또 하나의 변수를 살펴보자면 ‘근속기간별 취업자 현황’과 ‘한국에서의 동일직업 근무기간별 취업자 현황’이다. 두 통계 공히 2년 이상의 장기취업자 수가 많이 늘어났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현황이 단순한 산업연수생의 미숙련노동에서 취업기간이 긴 노동자의 숙련노동 위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당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기간 우리나라 전체의 제조업과 건설업의 상용월급여액은 각각 3.7%, 6.5% 상승했다. 임금의 자연적 상승요인도 있다는 의미다.

근속기간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6개월 미만 192 159 -33 -17.2%
6개월~1년 미만 163 130 -33 -20.2%
1~2년 미만 228 208 -20 -8.8%
2~3년 미만 101 112 11 10.9%
3년 이상 107 150 43 40.2%

출처 : 국가통계포털

한국에서의 동일직업 근무기간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6개월 미만 88 72 -16 -18.2%
6개월~1년 미만 111 100 -11 -9.9%
1~2년 미만 206 176 -30 -14.6%
2~3년 미만 114 130 16 14.0%
3년 이상 271 282 11 4.1%

출처 : 국가통계포털

요컨대, 외국인 노동시장은 3D업종의 저임금 노동자 일색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점차 사무직, 전문직 종사자의 수도 늘고 있는 상황이며, 산업연수생 제도 등에 의해 노동력이 공급되는 기능원 등의 미숙련노동은 일시적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그와 함께 근속기간은 유의미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이것이 임금의 자연적인 상승분과 함께 임금상승의 주요원인일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상승은 KBS의 주장처럼 우리 청년의 3D기피 때문일까? 외국인 근속연수가 우리 청년 때문에 느는 것인가?

KBS의 보도가 안타까운 이유는 밑에 깔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잔업까지 포함해서 3백9십만 원을 받고 있는 고소득(?!) 외국인 노동자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 청년들의 게으름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외국인에게 주지 않아도 될 고임금을 준다는 그 주장이 담고 있는 시각이 인종주의적 시각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 외국인이 되었든 내국인이 되었든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KBS는 우리 청년이 3D시장에 어서 편입되어 임금이 하향평준화 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