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짧은 재구성

Posted at 2010/03/06 17:28 | Posted in 경제/무역_FTA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2월.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별관의 인수위 사무실에서 미팅이 있었다. 김현종 세계무역기구(WTO) 법률자문관과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대표, [중략] 40~5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 그룹 6~7명이 노 당선자와 만났다. 이날의 기억은 노 대통령의 뇌리에도 오래도록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해 5월 그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차관보)에 오른다. 노 대통령의 파격 인사다. 김 본부장은 당시 노 대통령에게 한.미 FTA 협상의 필요성과 수순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시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협상에선 이니셔티브(주도권)가 중요하다. 우리가 미국에 FTA를 하자고 먼저 제안하면 주도권이 그쪽으로 넘어간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미국 시장의 문을 열게 할 방법이 뭘까. 캐나다를 먼저 치는 것이다. 우리가 캐나다와 FTA를 한다는 얘기를 흘리면 미국이 달려들 것이다. 협상은 자신있다."
그리고 2005년 9월. 해외 순방을 위해 멕시코로 날아가던 비행기 안에서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결심한다. 동석했던 고위 인사는 "몇 수를 미리 읽는 (김 본부장의) 전략적 마인드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 사로잡은 김현종 본부장, 2007.4.6, 중앙일보]

미래가 불확실한 경우에 뛰어들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세계 경제가 이렇게 운동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FTA를 회피해도 함께 갈 수 있는 것인가? 낙오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불확실하지만 뛰어들어야 적어도 낙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일찍 뛰어들면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입니다. 버거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또는 지금부터 변화를 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을 때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적응력이 높습니다. 감당해갈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공과 좌절, 노무현 씀, 학고재, 2009, pp230~231, planet2.textcube.com에서 재인용]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처럼 ‘전관(轉官)’한 사례가 눈에 띄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FTA를 추진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009년 3월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영입된 것이다. [중략] 미국 변호사인 김현종은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 이익을 지키는 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게다. 이런 생각대로라면, 대기업 경영자가 되는 것과 정부 고위 관료가 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없다.[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씀, 사회평론, 2010, pp13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