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견실주의(金融堅實主義 ; financial prudence)

소비(消費)는 – 분명한 것을 반복하자면 – 경제활동의 유일의 귀착점(歸着點)이며 목적(目的)이라 할 수 있다. 고용(雇用)의 기회는 필연적으로 총수요(總需要)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 총수요란 오직 현재의 소비(消費)로부터, 또는 장래의 소비를 위한 현재의 준비(準備)로부터 유발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미리 유리하게 대비할 수 있는 소비를 한없이 뒤로 미루어 둘 수는 없다. 한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장래의 소비를 위하여 금융적 방편(方便)으로 대비할 수는 없으며, 오직 경상적인 현물(現物)의 산출(産出)을 통하여 대비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사회조직과 기업조직이 장래를 위한 금융적 준비를 장래를 위한 실물적 준비로부터 분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자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후자를 수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것이 사실인 이상 금융견실주의(金融堅實主義)는, 허다한 예가 증명하듯이, 총수요(總需要)를 감소시키고 따라서 복지(福祉)를 저해할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리 대비한 소비가 크면 클수록, 미리 대비하기 위한 무엇인가를 또 발견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수요(需要)의 원천으로서 우리가 현재의 소비(消費)에 의존하는 정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소득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소득과 소비와의 차액도 늘어난다. 따라서 어떤 진기한 방편이 없는 이상, 우리가 후에 보는 바에 같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없다. 다만 우리의 소비가 우리의 소득에 미달하는 액수가 (오늘 생산(生産)하는 것이 채산에 맞는) 장래소비(將來消費)를 위한 물적(物的) 준비와 동등한 액수를 초과하지 않도록, 충분히 많은 실업(失業)이 유지됨으로써 우리를 빈곤(貧困)에 얽매어 두는 길이 있을 뿐이다.[John Maynard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조순譯, 비봉출판사(2007), pp 122~123]

케인즈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그는 “자본은 소비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소비성향의 약화는 모두 소비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자본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약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용한 문단은 그 중에서도 소비성향의 약화의 원인으로 “금융견실주의(金融堅實主義 ; financial prudence)”를 지목하고 있다. 얼핏 익숙하지 않은 용어인데 다음과 같은 케인즈의 설명에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만약 이것의 효과가 ‘견실(堅實) 금융주의(financial prudence)’에 의해, 즉 설비가 실제로 소모되는 것보다도 더 빨리 원가를 ‘상각(償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의해 악화된다면, 그 누적적인 결과는 사실 매우 심각하게 될 수 있다.[같은 책, p118]

즉 한 기업주가 설비의 감가상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보수적으로 그 소모분보다 더욱 많은 금액을 상각하고, 이것이 전 사회적으로 누적될 경우, 그것은 소비수요 약화에 이은 자본수요의 약화로 귀결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예를 들면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은행들이 BIS 비율 확충을 위해 노력하게 되면 결국 대출여력이 줄어들어 가계소비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적 관점의 폐해가 [기업의 금융견실주의적 비용증가 -> 소득감소 -> 소비수요/저축 감소 -> 자본수요 감소] 순환과정에서는 타당한 논리이지만 케인즈가 별로 주목하지 않는 소비원천에 대해 살펴보면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득을 소비의 거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노동계급은 실질소득이 크게 증가하는 한편으로, 그에 상응하게 빚을 지게 되었다. 안락한 교외주택, 큰 배기량의 자동차, 각종 가전제품이 중산층의 풍경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은 마르크스나 심지어 케인즈도 인지할 수 없었던, 단순한 임금재 이상의 소비력을 과시하게 되었고, 이중 상당부분은 빚으로 채워온 것이다.

즉 소비적 측면에서의 금융의 기능은 케인즈의 염려와 반대로 ‘금융방임주의’적인 순환과정이 형성되어왔고, 그것의 하이라이트는 1980년대부터 급속히 성장한 주택담보대출, 이른바 모기지론이라 할 수 있다. 모기지론 증권화를 통한 급속한 신용확대과정은 이후 카드론, 오토론, 스튜던트론에서도 그대로 복사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금융위기, 나아가 경제위기를 불러온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케인즈는 “은행권을 폐광에 묻었다가 다시 파내게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이것은 결국 총소비가 총소득을 초과하여 지속적으로 왜곡된 자본수요를 불러오는 경제체제에서는 통하지 않을 말인 것 같다. 요컨대 현재의 양적완화, 금리인하, 주택담보대출 비율 완화 등의 경제해법들은 금융견실주의적 자세를 견지하지 않아 붕괴된 소비수요를, 자본부문에서의 금융견실주의의 폐기로 만회해보자는 시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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