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소위 PIGS라는 다소는 모욕적인 신조어로 불리는 남유럽 국가들의 신용위기의 진원지는 그리스였다. 즉, 2009년 10월 사회당에 의해 새로 꾸려진 정부가 예상 재정적자를 종전의 6%가 아닌 12.7%로 수정하면서 시장에 공포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12월 S&P와 Moody’s 등이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심화되었다. 위기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유럽의 주변국들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PIGS는 이들 주변 유럽국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을 말한다. 여기에 이탈리아가 가세하면서 PIIGS로도 불린다. 현재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 상태다. 신용등급도 연달아 계속 강등되면서 채권상환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으로 주류 미디어들은 주로 방만한 재정운용, 그 중에서도 과다한 복지지출로 인한 소위 복지병(病)을 들고 있다.
지구촌 복지병의 진원지는 PIGS로 불리는 남유럽 국가들이다. 특히 최근엔 이탈리아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글로벌 시장도 휘청거리고 있다. [중략] 5년 안에 갚아야 할 정부 빚은 무려 9000억유로다. 이는 ‘노인 천국, 청년 지옥’으로 불리는 퍼주기식 복지의 결과다. 이탈리아는 소득의 40%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은퇴 후엔 연금 등 각종 혜택으로 돌려받는 전형적인 고부담, 고복지 국가다.[복지함정 빠진 위기의 대중 민주주의]
인용한 한국경제의 기사는 PIGS를 “지구촌 복지병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PIGS는 공히 과다한 복지지출 등 방만한 재정운용을 통해 재정을 악화시켰을까? 인용기사를 보면 우선 현 시점에서의 PIGS의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적자 추이가 명확히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위기의 원인이 아닌 결과에 가깝다. 위기 이전인 2000년 초에서부터 위기 이전까지의 기간을 보면 PIGS의 개별국가에 따라 재정상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신영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2007년 기간 동안 평균 재정적자 비율은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는 적자인 반면, 스페인, 아일랜드는 오히려 흑자였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경우 고용위기로 인한 사회보장성 지출이 큰 몫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PIGS의 복지지출은 여타 주요 국가의 지출과 유사하기에 주요인으로 보는데 무리가 있으며, 금융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등의 재정지출이 공히 재정적자를 심화시켰다 할 수 있다.

한국의 처참한 복지지출을 보라(출처 : OECD)
위기의 원인은 유로화 사용 등으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유럽의 주변국들은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재정적자는 불규칙한 양상을 보인 반면, 경상수지 적자는 공히 급격히 증가하였다. 단일통화권으로 통합되면 유럽 전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기업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것이라는 것이 통합론자들의 주장이었지만, 이는 주로 독일이나 프랑스들 핵심국가의 기업들에게 주어진 기회였고, 오히려 주변국들은 강해진 유로화로 인해 對독일 및 역외무역수지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유로화 강세로 수출경쟁력이 저하. 유로화 가입 전에는 개별 회원국의 자율적 통화정책 수행으로 경제위기가 오더라도 순응적 대응이 가능. 하지만 유로화 가입으로 더 이상 독자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가운데 유로화 강세로 인해 수출경쟁력마저 약화. 최근 수년간 유로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PIIGS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약화. 수출경쟁력 약화는 PIIGS의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부터 쉽게 탈출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남유럽 재정위기의 현황과 전망’]
이렇듯 유로존의 등장은 남유럽과 같은 유럽 주변국들이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면서도 적절한 통화정책을 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남유럽은 경상수지적자 보전을 해외차입에 의존함에 따라 대외부채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대외부채의 증가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주요 채권자는 유로존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었다. 따라서 남유럽의 위기는 다시 중심국으로 전염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었다.
그리스 채권을 다량 보유 중인 프랑스 두 대형은행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최고신용등급(AAA) 국가 프랑스까지 재정위기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는 모습이다. 한국 증시도 유럽위기 우려로 폭락했으며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100원 선을 넘어섰다.[유럽 재정위기 프랑스까지 여파… 대형은행 2곳 신용등급 강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유럽의 부채 위기는 오랜 동안 가능한 것들 중 가장 건전하다고 여겨져 온 투자 형태인 — 유럽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와 관련되어 있다. 이는 또한 정치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상황인데, 국채 투자에 부여되는 리스크의 평가와 관련된 기존규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은행들이 일종의 버퍼로써 얼마만큼의 자본을 투입하여야 하는 것을 결정할 때에, 국채와 관련된 금융적 손실의 리스크는 0으로 간주된다. 금년 중반에, 많은 은행들은 이미 임박한 부채탕감의 탓에 그리스의 채권 21%의 결손 처리를, “헤어컷”이라고 알려진, 강요받았다. 그럼에도 이걸로 충분할 것 같지 않다. 그리스의 채권은 조만간 가치의 절반이 — 더한 손실이 아니라면 — 날아갈지도 모른다.[Europe's Attention Shifts to Its Ailing Banks]
PIGS만 문제인가?
남유럽 국가들의 위기는, 사실 개별국가들의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데 일률적으로 묶여서 도매금으로 취급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경제위기가 시작될 시점부터 이미 영국과 프랑스도 동일한 증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핵심국인 미국은 이러한 위기의 확대판 및 결정판이다. 최근 경제학자 맨큐는 미국이 “제2의 그리스”가 되어간다고 경고했지만, 실은 그리스가 미국의 축소판일 뿐이다.
더 심한 문제는 여태 들여다 본 각종 통계들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정위기에 몰린 그리스가 골드만삭스를 고용하여 실질적으로 부채나 다름없는 파생상품을 사용하였던 것에도 볼 수 있듯이 각국의 통계지표는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에 정책운용은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Fed의 막대한 부채가 실질적인 국가채무임에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전 세계가 분식회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스왑을 가장한 이러한 신용은 그리스의 부채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로스타트의 보고 규정은 금융 파생상품과 관련한 거래들을 통합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마스트리흐트의 규정들은 스왑을 통해 법적으로 완벽하게 회피할 수 있습니다.” 한 독일인 파생상품 딜러의 말이다. [중략] 때가 되면 그리스는 그들의 스왑 계약들을 상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재정적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채권의 만기는 10년에서 15년까지이다. 골드만 삭스는 이 계약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받았고 2005년 한 그리스 은행에 이 스왑 들을 팔았다.[How Goldman Sachs Helped Greece to Mask its True Debt]
중국과 같은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 중국 역시 분식회계의 의혹이 짙지만 – 예외 없이 경제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실질적인, 그리고 거의 유일한 방법은 기업들에 대한 증세, 또는 그것을 넘어서는 부의 이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세금을 더 걷자는 온건한 주장에조차 빨갱이의 딱지를 붙이는 현 상황에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