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권

주권 권력이란 (대부분) 국가에 독점되어 있다. 국가는 따라서 스스로가 발행한 채무 증서들, 예를 들어 통화 및 지급준비금을 그 사법권이 미치는 영역 내에서는 거의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은행 및 여타 금융 기관들은 보통 자기들의 채무를 국가의 채무로 전환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행의 당좌예금을 ‘요구불 예금 demand deposits’이라고 부른다. ‘요구하는’ 즉시 은행들이 자신들의 채무를 국가의 채무로 (즉 중앙은행권 – 옮긴이) 바꾸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균형재정론은 틀렸다, L. 랜덜 레이 지음,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p53]

읽는 이에 따라 조금은 헷갈릴 수도 있는 서술일 수도 있다. 이 짧은 글에서 담고 있는 요지는 이렇다. 중앙은행권은 – 또는 중앙은행권이 발행되기 이전에 각 은행에서 발행했던 은행권 – 그 발행 주체인 국가의 채무 증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은행의 역할은 자신들의 채무를 – 예금 – 채권자(예금자)의 요구가 있을 시 국가의 채무(은행권)로 전환해주는 것이라는 서술이다. 요컨대 우리 국민들은 은행권(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한 국가에게 있어 채권자다. 은행권은 국채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발행한 채무 증서이고 우리는 그 채무 증서를 들고 있는 채권자다. 은행권과 국채 간의 차이라면 전자는 이자를 받지 못하고 후자는 받는다는 점이다. 예금으로 보유할 때는 은행의 채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자를 줬지만, 우리가 은행권으로 전환하는 순간 국가는 우리에게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다. 조금은 억울하지 않은가?

빌 더블라지오 : 아마존이 거부한 길(Bill de Blasio : The Path Amazon Rejected)

아마존이 뉴욕시에 제2본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하자 국내외 언론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순진한 “사회주의자”들이 뉴욕 경제를 살릴 기회를 걷어찼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 와중에 빌 더블라지오(Bill de Blasio) 뉴욕 시장이 아마존의 결정을 비판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자본주의 시장과 도시경영에서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그 부작용에 대해 뉴욕시의 수장으로서의 통찰을 읽을 수 있기에 전문을 번역했다. 원문은 여기로.

Bill de Blasio 11-2-2013.jpg
By Kevin Case from Bronx, NY, USA – Bill de Blasio, CC BY 2.0, Link

아마존이 뉴욕시에 25,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가져다줄 협약을 백지화하려 한다는 소리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은 목요일 그 뉴스가 보도되기 한 시간 전이었다.

그 통화는 짧았고 회사의 변심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불과 며칠 전에, 나는 아마존의 한 임원과 그들이 어떻게 몇몇의 비판자를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논했다. 노동조합을 만나라.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를 고용해라. 인프라스트럭처와 기타 커뮤니티의 요구에 투자하라. 롱아일랜드의 노동자들에 대한 공정성과 기회 창출에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줘라.

분명한 길이 앞에 놓여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 당신이 당신 회사의 의도나 진심을 의심하는, 소규모지만 소란스러운 뉴요커 그룹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라.

그 대신에 아마존은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주민들과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을 만난 지 불과 두 시간여 후에 회사는 갑자기 모든 것을 취소해버렸다.

나는 소득 증가와 부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진보주의자다. 지난 11월에 아마존과 체결한 협약은 탄탄한 기초였다. 이는 적어도 조직화된 건설 및 서비스 노동자를 포함한 25,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교통이나 적정한 주택에 우선순위를 둘 270억 달러의 신규 세수를 – 시와 주(州)가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양보하기로 한 세금의 아홉 배에 해당하는 – 창출할 수 있었다.

뉴욕으로의 이 소매업 거인의 확장은 미국 주식회사(corporate America)에 대한 점증하는 분노 탓에 적지 않은 반대에 부딪혔다. 수십 년간, 부와 권력은 극상층에 집중되어 왔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아마존의 회장 제프 베조스가 가장 확실한 사례다.

이 지점에서의 교훈은 기업은 더 이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나 오클랜드에서 시외에 있는 사무실로 향하는 기술직 노동자를 태운 버스에 돌멩이를 던졌던, 실리콘밸리를 휘저었던 분노를 목격했다. 우리는 지난 달 열린 다보스에서 기업 권력의 점증하는 독점에 대한 저항에서 그것을 목격했다.

저항에 직면하여 공을 들고 집으로 가버린 아마존의 변덕스러운 결정은 그러한 분노를 잠재우진 못할 것이다.

시와 주는 우리의 목표를 잠시 유보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 대부분의 뉴요커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새로운 본사에 대한 지지는 그들이 누려야할 경제적 기회를 너무도 자주 갖지 못한 유색인종 커뮤니티와 노동계급 사이에서 가장 높았다. 수천의 중류층 가족에게 활로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시애틀에 있는 이사회에 앉아 있는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좌초했다.

결국 아마존은 그들의 프로젝트를 꾸며나갈 방법에 대해 커뮤니티에게 굴복하거나 심지어는 진실되게 대화하고자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비판자와 협상해야 하는 도시에는 여하한의 경우에도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일종의 패턴이다. 시애틀의 시의회가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한 대기업이 세금을 통과시키자 그 회사는 7,000개의 일자리를 위험에 처하게 할 대규모 확장 계획을 중지하겠다고 협박하여 세금을 폐지시켰다.

경제적 권력은 – 이 나라의 모든 대도시 지역에서 5만 개의 일자리와 수십억의 매출을 모가지 날려버릴 수 있는 – 지속적으로 더 적은 수의 손아귀에 놓이고 있다.

한세대에 걸쳐, 일하는 이들의 생산력은 점점 더 높아지고, 더 많은 시간 일하고, 그들의 몫을 정당하게 챙기지 못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의 업무를 통한 혜택은 치솟고 있고, 그 와중에 실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들은 더 적게 가져가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아마존이 여기에 제2본사를 짓지 않겠다는 결정을 발표한 같은 날에, 회사가 지난 해 창출한 수십억의 이익에 대한 연방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수백만의 노동계급과 중류층 미국인이 올해 부자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안겨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정책이 그들에게는 쥐꼬리만한 세금환급만을 안겨주는 것을 알아차린 와중에 더더욱 분통 터지는 소식이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도시의 시장으로서, 진보적 봉화이자 자본주의 핵심적인 상징인 곳의 시장으로서 나는 미국 주식회사에 분노하고 있다. 이 나라의 다른 나의 동료 시장들 역시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 게임이 조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기업이 우리를 각자도생의 경쟁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우리 주민에 대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또 다른 레이스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아마존의 제2본사 입찰전은 그러한 부당함의 전형이다. 기업이 도시들을 맞붙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대안으로 경제적 전쟁을 종식시킬 시점이다.

몇몇 회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세일스포스(Salesforce)의 설립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무주택자들을 위한 서비스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기업세에 찬성했다. 1월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의 적정한 주택 공급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억 달러를 약속했다.

뉴욕에서의 아마존의 앞길은 그들이 우리 주민들의 경제적 불안과 유동성에 대한 공포를 이해했더라면 그리고 그들과 직접 대화했더라면 더 부드럽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의 집중이 거대기업의 손아귀에 놓일 때 어떻게 되는 지를 목격했을 뿐이다. 다음 기업이 분열과 정복을 시도하기 전에 규칙을 바꾸자.

셰일가스, 또 하나의 거품인가?

한때 남미 사회주의 블록의 구세주였던 베네수엘라가 오늘날 저런 무정부 상태의 국가가 된 이유가 뭘까? 정치 사회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저유가를 빼놓을 수 없다. 베네수엘라는 다른 산유국의 원유에 비해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탓에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여왔다. 그렇다면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저유가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을까? 한동안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라는 표현이 일종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었는데 말이다.

그 비결은 바로 ‘Fracking Miracle(수압파쇄 기적)’에 있다. 고압의 액체를 이용하여 광석을 파쇄하는 채광 방법인 프래킹이 유전에 적용되면서 주요 산유국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괄목할 만큼 늘어 왔다. 2016년 현재 미국에서의 원유 생산량 중 프래킹 기술에 의한 생산량이 51%를 차지하는 기적이 달성된 것이다. 25년 전 이 기술로 생산되는 원유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 기술이 대규모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래킹 기적은 멈출 생각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증가 추이(출처)

이 기적은 미국과 주변 정세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프래킹 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셰일가스 덕분에 미국은 경제 호황을 누리며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더불어 ‘눈엣가시’와 같은 반미(反美) 성향 산유국들의 목덜미를 붙잡고 흔들 수 있게 되었다. 한편, 25년 전에는 적용도 하지 않던 프래킹 기술이 어떻게 오늘날 주류로 자리 잡게 됐을까? 무엇보다 기술적인 진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바로 프래킹 업체들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대주는 금융시장의 존재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통적인 IB 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했던 프래킹 비즈니스가 사실은 벤처 투자적 성격이 있었는데, 서서히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서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금을 조달한 많은 업체가 중기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저유가 및 최근의 금리상승 기조와 이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자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또 금융회사는 더 높은 금융비용을 요구하며 추가 대출의 창구가 사라지고 있다.

요컨대, 신기술에 의한 원유 생산 증가 덕분에 미국 경제는 호황을 즐겼고, 나머지 산유국은 경제 불황에 시달려 왔던 것이 에너지 시장의 상황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잉공급을 통한 저유가는 서서히 지속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곧 그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심지어 프래킹 업체는 과잉 공급을 방지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태워 없애버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무정부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에너지 시장에서 재연하고 있다.

결국 흥미롭게도 이러한 상황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을 닮아있다. 거칠 것 없는 낙관주의,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금융시장의 과잉 유동성 등, 그리고 가격 하락과 높은 레버리지로 인한 채무자의 지급능력 상실. 다만 전국적 규모의 주택시장과 달리 한정적인 시장이라는 점에서 그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다루는 상품이 원유라는 점에서 의외로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결국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일까? 희극이길 바라지만.

증거인멸에 나선 조선일보를 위한 캡처 이미지

이번 ‘홍석천씨 오보’는 조선일보 역시 <홍석천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이태원 가게 2곳 폐업”>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홍석천 씨의 비판 이후 중앙·동아일보는 제목을 바꿨지만, 조선일보는 계속 애초 기사 제목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면 “해당 기사 링크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중앙일보 ‘홍석천 오보’ 개인사과로 끝낼 일인가]

최근에 가게 두 곳의 문을 닫은 홍석천 씨가 이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언급만 따옴표를 써서 오보를 냈던 조중동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는데, 인용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앙은 슬쩍 제목만 바꿨고 조선은 기사를 없애버렸다고 한다.(그 와중에 동아는 복지부동) 증거를 인멸한 뻔뻔한 조선일보의 기억력을 회복시켜주는 차원에서 캡처 화면을 제공하도록 하겠다.

 

기업이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하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2012년에 애플, 아마존, 구글 등에 의한 세금회피와 관련한 스캔들로 대중이 분노하고 이로 인해 G20이 행동에 나섰을 때, OECD는 국제적인 법인세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3년 후에 “기반 부식과 이윤 이동(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 또는 BEPS라 알려진 패키지가 탄생했다. [중략] 예를 들어 이로 인해 이들 기업들의 이윤과 세금 납부에 관한 국가간 과세 당국 보고서의 공유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표준은 오로지 거대 초국적 기업에만 적용되었고 보고서는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아 시민사회에 필수적인 투명성을 담보해내지 못했다.[Decision Time for the Future of Corporate Taxation]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다뤘던 바,1 초국적 기업들, 특히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생산물의 특징상 더욱더 자유롭게 그들의 이윤과 비용을 지구적 범위에서 이윤극대화의 지역으로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별국가의 과세정의를 초토화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예외적으로 초국적 기업이 징벌적 과세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보도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의 제시는 요원한 가운데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프로젝트가 OECD 등에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온갖 꼼수를 – 꼼수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 동원하고 있는 기업의 세금회피 시도를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2017년에도 구글은 네덜란드의 쉘을 통해 227억 달러를 버뮤다로 송금했다. 같은 해에 페이스북은 13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린 영국에서 7백4십만 파운드의 세금을 냈다. 보다폰은 2016~2017년 기간 동안 이윤의 거의 40%를 조세회피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생산물의 유동성, 국제적 로비, 과세당국간 협조체계의 미흡이 이런 과소과세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ICRICT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단일 과세를 위한 토론을 지지하는데, 이를 통해 그 기업들의 전 세계에서의 수입을 통합하여 그들의 이윤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이전비용의 지불을 좌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국제적 이윤과 상호연결된 세금은 기업의 매출, 고용, 자원, 그리고 심지어 각국의 디지털 사용자와 같은 객관적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지역에 배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초국적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에 대해 20~25% 정도의 지구적인 기초 실효 법인세율의 도입을 지지한다.[같은 글]

ICRICT는 인용문의 저자가 의장으로 있는 국제 법인세 과세 개혁을 위한 독립적 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for the Reform of International Corporate Taxation)를 가리킨다. 저자는 BEPS와 같은 협의체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 단일 과세나 지구적 법인세율 적용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조치 없이 초국적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악마가 안 되려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 들어 이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홍석천 씨의 선의는 어떻게 악의로 둔갑하는가?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수완 좋게 여러 접객업소를 운영 중이던 홍석천 씨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수완 좋은 그 역시 높은 임대료와 상승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운영 중이던 가게 두 곳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재 문제는 기존의 높은 임대료라는 한계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 이 둘은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는 가장 큰 두가지 변수임은 틀림없다.

홍석천은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한다는 데 다행히 동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제의 인상 역시 너무 가파른 게 현실이지만 결국 장사를 잘해야만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홍석천은 수제맥주의 본산지였던 경리단길의 특색을 살려 특정 요일에 차 없는 거리, 수제맥주의 축제, 원주민이었던 아티스트의 전시공간 확보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인터뷰)]

홍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장사를 잘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해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간 경리단길은 – 또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상업지역 – 상업지역으로 인기를 얻은 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찾았던 그 매력을 제시해주는 것이 현 위기의 타개책이라 보는 것이고 나도 그의 그런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씨의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 들의 보도행태가 논란이다. 홍 씨가 직접 페이스북에 언급한 중앙일보는 홍 씨의 이데일리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 타이틀에 마치 자사 기자가 직접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따옴표를 따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 … 최저임금 여파”라고 적어놓았다.1 홍 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욕은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만 그래도 전화한통이라도 하시고 기사내시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는 기본도 안 된 “기레기”들을 향한 쌍욕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동아 역시 임대료 언급은 쏙 뺀 채 최저임금만 걸고넘어진 악랄한 기사 타이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동아의 타이틀은 한발 더 나아가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中 두 곳 폐업…“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 해” 이라고 써서, 홍 씨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타이틀로 보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매체에서 다시 홍석천 씨의 중앙에 대한 항의 소식까지 전하며 홍 씨를 소재로 조회수 장난질을 두 번 우려먹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대다수 언론의 최저임금에 대한 맹공은 융단폭격에 가깝다. 상업중심지가 텅 비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2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도 최저임금 탓이다. 이러한 꾸준한 마타도어는 실제로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그 직접적 수혜자라 할 청년층의 예비노동자군에서조차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고,3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보수 “언론”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나아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정책이 폐기돼야 진정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현 정부의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그 정책의 폐기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들이 꿈꾸던 우익국가로의 회귀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자기들 월급은 올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겠는가?4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한 독립형 일자리 경제

확실히 오늘날의 새로운 기술들은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언제나 그러했었고, 사람들은 특정 경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교체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동안, 특히 오늘날의 독립형 일자리 경제(gig economy)는 그것이 어떻게 고용인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경제적 불안정을 증가시키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의 공포감은 실재(實在)하는데, 이것이 노동운동이 이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이유다. 오늘날 기후변화 혼란의 상황에서 쓰이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개념을 기술 관련 분열에 확장하는 것이 자동화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이 없음을 보장할 수 있는 가치 있는 혁신이 될 것이다.[Rewriting the Future of Work]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 카풀 서비스 개시를 계기로 날이 갈수록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이 ‘독립형 일자리 경제’ 분야다. 그간의 택시 서비스에 불만이 많았던 상당수 소비자들은 택시 노동자의 편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도 한 노동자가 분신(焚身) 시도로 운명을 달리하셨지만, 여론은 그다지 동정심을 보이지도 않고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1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워낙 기술 혁신에 빨리 적응하는 편인 한국의 소비자들은 천편일률적이고 불친절한 것으로 낙인찍힌 택시 서비스에 거는 기대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이고 불친절한 그 택시 서비스가 아직도 우리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많은 노동자가 그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친절한 “개저씨”일 확률이 높은 택시 기사라 할지라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 기술 혁신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 당위에 있어서만큼은, 소비자인 우리도 동의해줘야 한다. 다만 그것이 러다이트(Luddite)적 해결책이 아닌 바로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와 정계에서 합의되어야 할 대전제이기도 하다.

2016년 UNIA — 스위스에서 가장 큰 건설노동 및 산업노동 관련 노동조합 — 은 보주(Vaud) 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혹독한 날씨일 경우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보장을 쟁취해냈다. 이제 겨울에 노동조합과 고용주 조합과 주정부 간의 협의 메커니즘을 통해 호우, 강설 또는 차가운 날씨일 경우 외부 건설 현장에서의 노동은 중단될 것이다.[A Just Transition Must Include Climate Change Adaptation]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한 개념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연교차가 벌어지고 있어서 올여름에도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에는 서울시가 발주한 건설 현장의 실외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진보”적 시장의 일시적 조치에 의한 것이지 제도나 노사협상이나 제도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우리 노동운동 단체에서도 이러한 권리를 항구적으로 확보를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권리를 첫 인용문의 저자가 주장하듯 기술 혁신 분야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완전월급제’도 하나의 대안이다. 한편으로 새로운 서비스 혁신을 도모하는 경제 분야에 안전한 노동이 제공될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자격요건이 느슨한데, 별도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일반 운전면허만 있으면 운전자로 일할 수 있다. 범죄 이력도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서비스 질 차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안전한 노동의 하부구조를 새로 짜서 플랫폼 기업에 강제하는 것은 정부의 고유한 권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