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삼성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전 국민의 눈길이 최순실 씨를 비롯한 국정농단세력의 추한 행태에 쏠려 있는 와중에도 – 이하 박근혜 게이트 -, 그들의 국정농단에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은 – 보다 정확하게는 이재용 씨는 – 꿋꿋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포함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줄곧 부정해 왔는데 이번에 이제 그 전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정국의 혼란을 틈타서 조용히 발표하려는 것일까? 중론에 의하면 바로 어영부영 박근혜 게이트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의 턱 밑에 특검이 와 있는 것처럼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강화하려는 이재용 씨의 턱 밑에 이러한 꼼수를 막으려는 각종 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법 개정안, 같은 당의 제윤경 의원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회사의 분할 또는 분할합병 등을 통하여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면서 분할하기 전에 자기주식의 비율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후 분할·분할합병의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지주회사는 자기주식을 그대로 보유하여 그 자기주식에 대하여 자회사로부터 주식을 배정받아 현행법에 따른 모회사와 자회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지분 요건을 확보하고 있음.[상법 일부개정법률안, 2016.7.12.]

자기주식은 흔히 “자사주(自社株)”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업에서 발행한 주식을 회삿돈으로 다시 매입하는 주식’을 말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는 흔히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들면서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결권이 제한되는 자사주의 특성에 따라 적대적 M&A 세력의 의결권을 약화시키는 목적에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이 자사주를 소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창조경제를 구현하였다. 지난 2011년 정부는 “자사주 매입과 처분의 장점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자사주 매입·처분 요건을 완화했다. 그런데 이런 규제완화가 소위 인적분할과1 결합하면 지주회사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활용하여 사업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아 의결권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마술을 부리게 된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3년 대한항공을 지주회사(한진칼)와 사업회사(대한항공)로 나눴다. 인적분할 방식의 회사 나누기로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자사주 주식 6.75%를 갖게 됐다. 이후 한진칼에 승계된 대한항공 자사주 6.75%는, 그 비율만큼 사업회사로 된 대한항공의 신주 배정 발행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기존에 보유한 대한항공 대주주지분율 9.87%에 인적분할로 생긴 대한항공 신주 지분(6.75%)를 합쳐 총 지분을 16.62%까지 늘렸다.[재벌 지배력 강화 ‘자사주 꼼수’ 막는法…박용진 의원 발의]

삼성전자는 자사주 비중이 12.18%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하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의 자사주 12.18%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 개정안들에 따르면 삼성은 ‘회사를 분할할 때 분할회사 자사주에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상법 개정안)당하거나 ‘대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하려면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공정거래법 개정안)해야 한다. 한진이 하던 절도를 삼성은 못하게 된다.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의 저자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국내 시장의 과점화, 대외 직접투자 증가, 국내 투자 축소, 인건비 인하, 원화 약세, 법인세 인하2 등 한국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갖가지 시책과 전략 속에서 성장률을 높이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정부와 국민의 희생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과의 합병에서 불합리한 합병비율로 합병하여 이재용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시켰던 삼성이, 이제는 다시 그 지배력을 활용하여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자사주를 동원하고 이를 통해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는 2차 퀀텀점프를 시도하고 있다. 노동자의 희생과, 원화 약세를 위한 국가적 희생과, 차별적인 대우를 통한 자국 소비자의 “호갱화”로 거대기업이 된 삼성전자가 그렇게 이재용의 품에 안기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국익”을 위해 도와줘야 하나?

때가 되자 본색을 드러내는 조선일보

국회가 탄핵의 정치적 관문이라면 헌재는 탄핵의 사법적 관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 요소다. 최대 7~8개월을 잡는다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상황이라 해도 임기는 거의 채우는 셈이 된다. 애초에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내고 2선 후퇴를 제의했을 때 야권이 이를 받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문씨, 안철수씨 등이 ‘웬 떡이냐’면서도 더 먹으려고 반대했다가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야권의 과욕과 두뇌 부족이 빚은 결과다.[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오늘자 김대중 칼럼 중 일부다. 그간 마치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살벌한 구호를 외쳐대던 조선일보의 본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김 씨는 그간 박 대통령의 탄핵을 미적거리던 야권의 우려사항 중 하나를 지적했다. 바로 탄핵절차를 밟자면 의도한대로 간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임기에 필적하는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김 씨는 그런 현실을 지적하며 야권이 “과욕과 두뇌 부족” 탓에 김병준 총리 카드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놓쳤다고 조롱한 것이다.1

하지만 그 상황은 조선일보가 원하는 상태일지는 몰라도 야권, 더불어 국민이 원하는 미래는 아니다. 대체 야권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총리와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 김병준 총리 체제가 거국내각도 아님은 물론이고 – 그 어느 것도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박근혜를 보수 세력의 본류가 아닌 일탈자로 취급하여 골방에 처넣고 전열을 정비하여 보수 재집권을 노리는 조선일보나 원할 극히 어정쩡한 상태다.2

이 사태의 본질은 “저잣거리 아녀자의 국정농단”이나 “최태민 교주에 정신적으로 지배당한 위정자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 이래 지속되어 오던 사익추구집단의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사익추구다. 지난번 수사결과 발표에서 검찰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칭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직접 정유라를 지원한 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죄목도 현재까지는 뇌물죄가 아닌 강요죄다. 언급되지 않은 이가 바로 주범이다.

경제범죄가 악랄한 점은 그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안한화와의 방산 업체 거래에 있어, 최순실 씨등의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로비를 통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러한 심증이 법정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판결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칼럼이 원하는 상황이나 검찰의 발표 내용은 그러한 길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그게 보수의 생존전략이다.

‘기승전순실’이라고 지금 교육, 의료, 재난구조, 인사, 경제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가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일 정도다. 믿기지 않기는 하지만 그 부조리의 신경망에서 최순실 씨만 걷어내고 보면, 그간 사익추구집단이 얼굴만 바꿔가며 해오던 짓이다. 김대중 씨가 원하는 김병준 총리 체제는 그렇게 얼굴만 바꾼 사익추구의 체제다. 따라서 야권은 이번 기회에 이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두뇌 부족이다.

한데 김용철 씨는 그들의 서술구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100% 실존인물이 100% 실제 벌어졌던 일을 꾸미고 저지르고 있는 양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의 이건희 가족, 현 대법원장인 이용훈 판사, 돌아가신 두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등 지배계급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 이유는 만약 이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면 이건 나라가 두 번 뒤집어질만한 대사건이고, 사실이 아닌 것을 김용철 씨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사상최대의 인격모독이자 무고이기 때문이다.[‘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자기기만의 世界에 대한 단상

내부 메모에서 공매도를 공격한 것이 클라이언트의 역린 逆鱗 을 건드린 것이었다면, 그들을 한층 더 분노하게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뉴욕 주 법무장관 쿠오모가 공매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었고, 그에 관한 성명서의 초안을 맥이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성명서가 그의 클라이언트를 분노하게 하고 일부를 떠나보낼 것이라는 것을 맥은 잘 알았지만, 그로서는 검찰을 이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664]

2008년 9월의 맨해튼, 인용문이 묘사하는 시점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AIG는 정부의 소유가 된 상태에서 다음으로 몰락할 기업이 어디인지를 시장이 주시하고 있던 시점이다. 인용문에서의 맥은 바로 금융위기 당시 모건스탠리의 CEO였던 John J. Mack 이고 쿠오모는 뉴욕주 법무장관 Andrew Cuomo다. 맥은 리먼의 딕 펄드처럼 공매도가 회사의 몰락을 초래할 악의 세력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 “우리 주가나 CDS가격이 비이성적인 근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공매도 세력을 지목했다.

주가하락의 배경으로 공매도 세력으로 지목하는 사고의 정서에는 ‘자사(自社) vs 공매도자’의 전선(戰線)을 형성함으로써 내외부를 단속하고 기업가치 하락을 방지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때 자신의 회사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펀더멘털, 이성, 피해자 등이고 공매도와 이에 부화뇌동하는 시장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두려움, 비이성, 가해자 등이다. 이러한 정서가 진실이든 아니든 몰락하는 기업은 – 특히 경영진은 – 대개 이 정서를 자기최면에 가깝게 가지고 있어 실제로 몰락할만한 오류를 범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인지부조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1

어쨌든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는 맥이 악의 세력으로 지목한 공매도자, 즉 헤지펀드가 바로 그들의 고객이라는 점이다. 다른 투자은행처럼 모건스탠리도 프라임브로커리지가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인데, 이 서비스는 높은 레버리지를 쓰는 헤지펀드에게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결제 수수료와 이자 등의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다. 헤지펀드의 뒷돈을 대줄 만큼 강고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인 모건스탠리의 경영진이 이제 자신을 공격하는 헤지펀드를 비난하며, 심지어 뉴욕주 법무장관의 힘까지 빌리는 그 자기부정이 관전 포인트다.

이 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당시의 허다한 에피소드가 그러한 자기부정과 자기기만의 역사였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행크 폴슨 재무부 장관은 순진한 시장자유주의자인 의원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욕을 먹어가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은행 구제에 투입했고, 영악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인 투자은행 경영진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바로 모건스탠리처럼 기꺼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다. 다행히 정부와 시장 모두 서로 친한 시장자유주의자들로 채워져 있어서 도움은 신속했고,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구현한 사회주의인 셈이다.

당시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망했다면 자본주의는 궤멸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였다고는 해도 그 둘은 미묘한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고, 그 상황에서 투자은행뿐 아니라 기업과 서민들도 신용붕괴로 인해 경제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듯 자기기만이 전문인 세력이 지구경제의 신경망을 구성하는 현 상황에 염증을 느낀 미국 유권자들은 선악(善惡)을 자신의 입맛대로 구분하는 포퓰리스트에 표를 던졌다. 물론 그는 위의 문제점을 해결할 신경외과 의사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녹슨 지대(Rust Belt)”에서의 외침

출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58:37의 추세로 유권자의 70%를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했다. 백인 유권자 중 대졸자가 아닌 이들의 유권자의 비율은 67:28이었다. 그러나 학위를 가진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49:45의 비율이었다.[‘Forgotten’ white vote powers Trump to victory]

이러한 눈에 두드러진 결과 때문에 결국 트럼프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가진 저학력의 백인 유권자의 몰표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록 어떤 트위터 사용자는 “모든 트럼프 지지자가 인종주의자인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이 트윗에 다른 사용자가 “트럼프를 지지한 모든 이는 인종주의자에게 투표한 것이다”라고 응수함으로써 그의 볼멘소리에 돌직구를 던졌다.

성난 백인 유권자의 목요일의 외침은 오하이오와 인디아나와 같은 러스트벨트에서 가장 시끄러웠고 이전의 민주당 강세지역이었던 미시간이나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곳에서도 – 두 곳 모두 1988년 이래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승리한 적이 없다 – 작동하였다.[‘Forgotten’ white vote powers Trump to victory]

백인 투표자의 몰표가 더욱 극적으로 두드러졌던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소위 “러스트벨트(rust belt)”였다. 트럼프는 위스콘신,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오대호 주변 미국의 전통적인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위치한 5개주에서 승리함으로써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클린턴은 당초 이 중 적어도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에서 우세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인종주의적 언행을 지속했고 이로 인해 많은 양심적 유권자들과 유색인종을 마음 아프게 하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트럼프의 이런 공격은 주로 경제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백인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전략적으로 미국 정부가 정당에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한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 응답자의 93%가 미국에서 “너무 많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 응답자의 74%가 “중국산 제조품”에 대해 비호감이었는데, “보수적” 응답자는 77%가 그랬다.
– 응답자의 96%가 “미국산 제조품”에 호감을 보였고, “공화당의 보수적 당원”중에서는 98%였다.
– 응답자의 92%가 “너무 많은 일자리가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86%는 “미국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만들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Free Trade”: The Elites Are Selling It But The Public Is No Longer Buying]

올 초 한 단체가 오하이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다. 러스트벨트의 유권자들이 무역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 이 결과 당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는 역시 “자유무역”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미시간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하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 유권자의 58%는 무역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없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제3세계로의 공장의 이전을 유혹하는 자유무역협정, 자동화 기술의 발전, 혁신을 거부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 등등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이 중 어느 원인이 더 주되게 지역의 쇠퇴를 초래하였는지는 계속 논의할 주제이지만, 당연히 정치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이 가장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공격에서 외통수로 몰린 것은 단연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가 퍼스트레이디이던 지난 1994년, 남편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당초의 정치적 입장을 뒤집고 그 뒤 악명이 높아질 NAFTA에 서명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훗날 입장을 바꾸지만, 당시 이 협정에 찬성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는 자유무역협정, 특히 TPP지지하였다. 러스트벨트의 유권자에게는 무척 인기 없을 공약이었다.

외교관계협의회의 Edward Alden은 “NAFTA는 상징적일 뿐이다. 다만 그 협정은 미국이 자신보다 훨씬 임금이 싼 나라와 맺은 최초의 대규모 협정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즉, 이전부터 이미 러스트벨트를 포함한 미국의 제조업은 쇠퇴하던 중이었고, NAFTA는 그러한 경향을 상징하는 하나의 변곡점이 된 것이다. 따라서 힐러리 클린턴은 적어도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민주당 후보가 될 운명이었다.

어쨌든 이 지역의 실제 경제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1999/2000년의 피크를 지난 후 이 지역의 소득은 – 아이오와를 제외하고 – 퇴보했다. 최근 다시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노동자들은 트럼프가 재건하겠다는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 시절의 노동자의 고임금 정규적 일자리가 아닌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상황을 트럼프가 되돌릴 수 있을까?


트럼프는 집권 이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제소하고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무역에 대한 무모하리만큼 단순한 접근은 많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은 러스트벨트가 쇠퇴하는 와중에 중국의 저가 제조품 덕에 고성장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던 골디락스 시절을 누렸었다. 트럼프의 현재 공약은 이 경제순환 고리를 대책 없이 끊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노동계급들은 골디락스라는 환상 속에서 자신들이 일하던 일터를 멕시코나 아시아의 노동계급에게 빼앗겨버리고 줄어든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빚을 얻고, 월마트에서 중국산 싸구려 상품을 구입하는 자기 파괴적인 소비패턴으로 버텨왔던 것이다. 물론 아시아 노동계급이라고 나을 것은 없었다. 약간의 실질소득 증가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잉여는 다시 자국 내 기업의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돌아가거나 국가의 외환보유고에 쌓여 선진국에 재투자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다.[골디락스의 환상과 그 결과]

나는 자유무역협정의 위험성이 단지 트럼프의 지나친 허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자유무역협정이 그렇듯이 TPP역시 지적재산권에 대한 지나친 보호, 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 다국적 자본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면에서 트럼프를 찍은 백인 노동계급도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꿈꾸는 위대한 미국이 “위대한 백인의 미국”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리버럴은 – 브렉시트를 수세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의 리버럴도 마찬가지지만 –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의 노동계급(또는 그 노동계급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의 외침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 표에 의존하던 서구의 리버럴이 이제 그들을 무시하고 사회문화적인 진보에 주력하는 동안, 이 (쇠퇴하는?) 계급은 트럼프와 같은 극우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 노동계급 남성은 현재의 시스템이 자신들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미국(Working America)’의 멤버인 ‘전미철강노동자(United Steelworkers)’의 부의장 Fred Redmond의 말이다. “펜실베이니아의 전역에 걸쳐 트럼프를 그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 시스템의 대안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철회사의 매니저인 Matt Sell이 이중 하나다. “우리는 한번 흔들어 엎어줘야 합니다. [중략] 트럼프를 찍는 것은 진정 워싱턴에 있는 복도 양쪽에 있는 정치 내부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Labor Makes Clinton’s Case to Rust Belt Whites Curious About Trump]

하필 그 메시지의 전달자가 트럼프라니. OTL

산업은행과 리먼과의 협상자리에서의 딕 펄드의 행동

민유성은 리먼 주식의 과반수를 살 의향이 있었다. 단, 조건은 리먼의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자산을 따로 떼어 배드뱅크를 만듦으로써 리먼 본체, 즉 굿뱅크에 행하는 한국산업은행의 투자가 침해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략] 이때 펄드가 나서서 말머리를 잘랐다. “내가 볼 때 그쪽이 큰 실수를 하는 거예요.” 펄드가 민유성에게 말했다. “커다란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리먼의 부동산 자산에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363~364]

어쨌든 불발한 거래고 민유성이라는 개인 자체에 그리 신뢰가 가지 않지만, 인용한 이 부분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민유성을 포함한 산업은행 측이 나름 성의 있는 협상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의식 과잉의 딕 펄드는 이전 협약당사자였던 워런 버핏,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 그랬듯이 주제 넘는 고압적인 자세로 리먼의 자산에 대해 착각에 가까운 자부심을 가지고 산업은행에게 무리한 조건을 요구했다. 이러한 태도는 시장의 관점과도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다른 경영진 등 내부자의 관점과도 다른 것이었다.

가격협상이라는 것이 매도희망가와 매수희망가의 간극을 좁혀나가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관점이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당시 리먼을 포함하여 많은 투자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자산이라는 것이 여러 희한한 프로세스를 거친 증권화 상품이었다는 점에서 정확한 시장가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정황이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협상을 할 즈음은 이미 그 복잡한 증권화 상품의 민낯이 드러난 시기였다. 그럼에도 펄드는 저런 허풍을 떨었던 것이다.

Richard S. Fuld, Jr. at World Resources Institute forum.jpg
By World Resources Institute Staff – http://flickr.com/photos/wricontest/369118382/, CC BY 2.0, Link

매서운 외모만큼이나 투박한 성격으로 유명한 딕 펄드는 자신이 쌓아올린 제국인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져 내릴 즈음에는 거의 인지부조화에 가까울 정도의 심적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인용한 책에 보면 그가 이사회에게 당시 금융시장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초청한 라사드의 한 전문가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이어가자 이 발언을 제지하고 나중에 “넌 해고야!”라고 했다고 한다. 산업은행과의 이 협상자리도 애초 리먼 측이 배드뱅크 설립을 전제로 협상하던 자리에 갑자기 나타나 저런 발언을 했다고 한다. 황당한 노릇이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이들보다 보상의 규칙은 재빨리 알아채고 이를 활용하는 반면, 처벌의 규칙에는 둔감하거나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연구기관은 이런 상황이 실제 뇌활동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연구하였는데,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집단은 쾌락과 행복감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사이코패스 성향이 약한 집단에 비해 4배 이상 배출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사이코패스는 타인이나 자기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가 오더라도 끝까지 보상을 추구하도록 뇌의 회로가 프로그램돼있다”고 분석했다.[당신 회사의 CEO는 사이코패스일까?]

해당 전문가가 아닌지라 사이코패스가 명확하게 병적 징후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난히 그러한 성향이 강한 이들을 집단화할 수 있다면 딕 풀드는 당연히 사이코패스 성향의 집단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처벌의 규칙에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보상을 추구했다가 망한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투자은행의 임직원들은 이런 사이코패스적 인지부조화에 전염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유명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문구가 회자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금융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는 어느 정도 이런 사이코패스적인 매몰참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다른 직종에 비해 보수가 많지 않았던 금융시장이 세계화/증권화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보수를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금융업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보상에 따른 쾌락을 더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LTCM 사태랄지 엔론 사태1,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금융위기가 있다. 한 사회의 뇌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전화해달라는 펄드의 부탁을 거절한 폴슨

오후 12시 35분, 뱅크오브아메리카와의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폴슨에게 전화로 알리며 펄드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남은 대안이라고는 한국인들뿐이었다. 펄드는 폴슨에게 리먼을 위해 한국에 전화를 좀 해달라고 했다. 펄드를 위해 워런 버핏에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에도 전화했던 폴슨은 이번에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352]

리만브라더스가 쓰레기가 된 자산을 끌어안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리만의 오만한 독재자 딕 펄드는 침몰하는 함선 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배는 튼튼하다는 착각을 하며 구매의향자들에게 배 값을 비싸게 불렀다. 2008년 7월 21일 구매협상을 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에게 리먼이 제안한 주당 가격은 최소 25달러였는데 그날 종가는 18.32달러였다고 한다.

이런 핵노답 상황에서 펄드가 미국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행크 폴슨에게 산업은행에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어 인용해보았다. 만약 당시 폴슨이 이 부탁을 수락하고 산업은행에 – 또는 청와대에? – 전화를 했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시장상황으로 봐서는 도저히 성사가 어려운 딜이었지만, MB치하의 부조리한 상황을 감안하면 결과는 모를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 전체가 우리가 신정(神政)국가였음을 확인하고는 멘붕 상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공통분모로 수렴된 현대국가의 합리성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부정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단 이러한 극단적으로 “혼이 비정상”인 상태가 아니더라도 현대국가 역시 언제든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부조리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개인적으로는 지난 금융위기라고 생각한다.

인용한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장 뛰어난 금융전문가와 정치가들이 맨해튼 등의 미국 동부에 모여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웅전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웅들이 합작으로 자본주의를 망쳐놓은 시점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때로는 과연 대의민주제나 市場이 神政보다 무엇이 어떻게 우월한가 하는 망상마저 생기는 것이다.

어떤 주인의식 없는 주주에 관한 이야기

미국 재무부는 지난 달 씨티그룹에 250억 달러를 투입한 데 이어 이번에 2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고 그 규모만큼 우선주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지난 주말 씨티그룹의 종가는 3.77달러였고 [중략] 시가총액은 205억달러수준이다. [중략] 결국 개인이 주식시장에 200억달러를 투자했다면 씨티그룹의 지분을 99% 가까이 다 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선택은 결국 AIG처럼 국유화하지 않고 기존 경영진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美는 왜 씨티 살리기 도박 택했을까?, 아시아경제, 2008년 11월 24일]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당시 금융회사들에 자본을 투입한 이유는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로 자산을 늘려놓는 바람에 자본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부실한 자본비율은 곧 파산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美정부는 (반대급부가 거의 없는) 재정지원 혹은 (반대급부가 배당인) 우선주의 형식으로 금융회사의 자본을 보충하였다.1 주식 중에서도 우선주의 형식으로 출자한 이유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주식에 출자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성지인 미국 경제에서의 금칙어인 “국유화”라는 이념적 공세를 피해가려 했기 때문이다.2

물론 재무부의 씨티그룹의 우선주 매입이 “국유화”에 대한 미국정치의 알러지 반응을 피하고자 함이라는 사실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인용문에서 언급하듯 사실 재무부는 이미 AIG를 국유화한 바 있다. 그리고 주택 모기지 채권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담당하고 있는 프레디맥과 패니메도 “후견체제(conservatorship)”라는 요상한 명칭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 회사들을 국유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무부는 유독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허울 좋은 이름만 남아 있는 씨티그룹은 기를 쓰고 국유화의 길을 피해갔다.

리 삭스가 지하실 체육관에서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운동을 멈추고 씨티의 완충 자본인 보통주 500억 달러를 추가하는 서명을 하였다. 우리가 국유화를 원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만큼이나, 쓰러지게 좌시하지 않는다는 모습도 중요했다. 우리는 “리먼 상황은 없다”는 의도를 진지하게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간투자자는 금융시스템의 자본 확충이라는 위험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었고, 우리는 TARP 자금만으로 충분할지 알지 못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366]

한편 구제금융과 우선주 매입이라는 긴급수혈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의 정상화 기미는 요원했다. 그래서 마침내 재무부는 자신들의 우선주와 민간투자자의 우선주 500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했다. 재무부가 이런 조치에 나선 것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기준인 단순자기자본비율(tangible common equity)에서는 보통주가 보다 신뢰도 높은 주식이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그야말로 국유화와 파산이라는 양쪽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씨티그룹을 – 아니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을 – 지켜주는 수호천사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당시 재무부는 보통주 전환을 통해 36%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됐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의 대주주인 재무부는 이제 당연히 주주의 권리와 의무에 따라 회사를 정상화하고, 나아가 국가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어야 했다. 애초에 구제금융의 명분이 금융시장 정상화였고, 금융회사에 대한 자금투입이 대출로 이어져 시중에 다시 돈이 도는 것이 바로 그 정상화의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대주주이자 규제당국인 재무부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무부는 2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유 우선주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민간 주주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중략] 놀랍게도 재무부는 씨티에 자구책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통주 전환을 통해 정부가 확보한 씨티 지분은 전체 주식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뿐 아니라 연방예금보험공사에는 씨티그룹의 자회사이며 부보은행인 씨티은행의 영업을 정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다.[정면돌파, 실라 베어 지음, 서정아/예금보험공사 옮김, 곽범국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p302]

실라 베어는 “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파산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p341)고 주장하는 시장주의자였다. 그런 실라베어가 보기에 티모시가이트너는 항구적인 구제금융이 가능하게끔 논리를 펴는 재무부 백서를 내는 등 이른바 “구제금융주의자”였다. 그런데 실라베어가 보기에 가이트너의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되었음에도 주주로서의 마땅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재무부는 구제금융만으로도 국유화할 수도 있었던 회사를 열등한 조건의 우선주로 수혈하고 급기야 대주주가 됐음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이다.3

이념적 지형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실라베어는 명백하게 “자본주의자”다. 그는 저서에서 “자본주의자인 나는 정부가 우선주 투자라도 은행을 소유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정면돌파, pp361~362)라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우선주 투입은 기업의 파산할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그러면 이 반대편에 서있는 가이트너는 어떤 주의자일까? “구제금융주의자”는 뭔가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는 “사회주의자”다. 소비에트식의 사회주의자는 아니고 “빈자를 위한 자본주의,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는 당시의 이념적 공세의 맥락에서의 “사회주의자”다.

씨티는 완전히 다른 경우로 오랫동안 통화감독청과 뉴욕연준은행의 ‘최고’ 인가 은행 자리를 유지했다. 국제적인 인지도도 높았다. 따라서 씨티가 부실화된다면 두 규제기관 모두 국내에서만 비난받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가이트너의 멘토이자 영웅인 로버트 루빈이 씨티의 회장으로 있었다는 사실도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중략] 씨티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그토록 대대적인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했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까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정면돌파, p232]

하지만 어떠한 형식으로든 “국유화”라는 타이틀을 피하려 했던 가이트너 역시 그의 회고록과 실라베어의 회고록을 동시에 읽은 내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한 자본주의자다. 다만 가이트너는 “정실(crony) 자본주의자”다. 시장 전체의 이익이나 소비자의 이익이 아닌 일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의 돈을 쓰는 관료라면 그를 세금을 낭비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 부를 이유가 없다. 그런 정의라면 개발도상국의 정치권은 온통 사회주의자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공직자가 주도하는 경제를 일컫는 표현으로 “정실 자본주의”란 표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 공화당을 위시한 보수층은 이런 적절한 표현을 피하고 구제금융 자체를 “사회주의적” 조치라 맹비난하였고, 이런 이념적 혼란을 틈타 보수층 내에서는 티파티라는, 진보층에서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세력이 성장하였다. 즉, 부시 정권의 헨리폴슨이 시작한 정실 자본주의가 오바마 정권의 티모시가이트너에서 만개함으로써 보수층이든 진보층이든 초당적으로 이루어진 구제금융에 대한 – 그렇지만 그들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한 – 분노가 정치지형을 더욱 더 양극화시켰던 것이다. 그 현재진행형이 도널드트럼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