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孤獨のグルメ) 트윗 단상

#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를 즐겨 보는 이유로는 단연 주인공의 먹방이겠지만, 그가 즐겨 찾는 골목길 풍경도 한몫한다. 적어도 카메라에 잡히는 일본 도시의 골목길은 프랜차이즈에 포획되지 않은 순수 자영업자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골목이기 때문이다.

#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를 찍을 때쯤이면 골목길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한 시점이라 이렇게 찍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혜리 도시락’을 먹으며 “오~ 이거 의왼데?? 마구마구 먹게 돼!”하고 ‘빽다방’의 커피로 입가심할지도??

# 시장자유주의의 주창자 아인란드는 소비에트가 유일한 주인인채로 모든 인민을 노예상태에 놓이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대자본이 골목 안까지 들어와 모든 소매점을 서열화하고 근로대중을 노예화하는 현 상황을 뭐라 할 수 있을까?

# 오늘 들른 편의점은 전에 중규모의 동네 슈퍼였다. 이제 그 공간은 대자본 프랜차이즈의 유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에 편입됐다. 난 사실 이런 대자본을 효율성 측면을 본다면 무조건 반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소유가 사유화되는 것이 우려될 뿐.

# 요컨데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가 사회화되고 있는 와중에 다만 그 소유권은 소수의 사적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신성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사실 시장경제와 그다지 관계도 없는 경제적 독점에 대한 신앙적 태도다.

# 그나저나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은 원래 소식하는데 드라마를 위해 하루 전에 단식하고 촬영일 몰아서 마구 먹는다고 한다. 극을 보면 먹방을 위해 흰 쌀밥을 마구 먹는데, 그렇게 몰아서 마구 먹으면 배우의 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회기반시설의 공급과 유지관리,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1663년 영국의 도로 관련 법규에 또 다른 이정표가 등장한다. 최초의 유료도로법(Turnpike Act)이 “하트퍼드, 캠브리지, 헌팅턴 주내의 고속도로 보수를 위한 법”이란 이름으로 통과된 것이다. [중략] 이 법의 서문이 말하길 “이 지역에 대한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과정이 도로의 효과적인 보수에 불충분”하기 때문에, 그리고 도로가 놓인 지역의 거주민들이 더 많은 자금 지원 없이는 이를 고칠 수 없기 때문에, 법에 정한 수단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치유하는데 조력하는 것이 이 법에서 고려되었다. [중략] 이들 세 개 주의 도로를 보다 신속하게 보수하기 위해 각 주의 감찰관은 사법관의 동의하에 현재가치로 자금을 내는 이에게 9년 이하의 범위에서 그 이윤을 저당 잡힐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in Modern England, W. T. Jackman, Cambridge at the University Press, 1916, pp 61~62]

이 도로들과 법률이 오늘날 흔히 “민자도로”라고 불리며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 및 유지·관리되는 도로와 – 예를 들면 신공항 고속도로나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같은 – 이 사업을 규정하는 법률의 원조 격의 법률이다. 도로와 같은 사회기반시설은 통행하는 이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거나 무역의 필요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이들 도로에 대해 통행인이 직접 대가를 지불하게끔 하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이 시기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통행료가 징수된 역사도 존재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13세기 경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일부 성은 왕의 허가 하에 성에 들어오고자 하는 상인들에게 일종의 통과세인 이른바 “성벽세(城壁稅, Murage)”를 징수하였다. 이 돈은 주로 성벽의 보수에 사용되었으나 또한 성 주변의 도로의 보수에도 이용되었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통행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통행료를 걷은 것은 앞서의 유료도로법에 의해서가 처음이다.

여하튼 도로 이용자가 통행료를 지불하는 원칙, 이른바 “오염자 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이 영국에서 시도된 데에는 이전의 법령과 권위로 도로의 건설과 유지·관리가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사회기반시설은 여러 특징이 있지만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외부효과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기꺼이 도로를 건설 혹은 관리하려는 이가 없었기에 당국은 꽤 오랜 기간 지주, 교구 등에 그 의무를 부담시키고 주민의 강제노역을 부과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해 왔다.

A toll bar in Roumania, 1877.jpg
By The Graphic – The Graphic,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0435592

하지만 이것이 가지는 한계는 명백했다. 즉, 강제적인 경제행위 – 물론 자발적인 노동으로 미화되었겠지만 – 가 가지는 인센티브 부여의 실패가 그것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사회기반시설의 또 하나의 특징인 비배제성(非排除性)1을 배제성으로 전환하여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유료도로의 영단어 turnpike는 창(pike)을 길 가운데 설치하여 돈을 낸 이가 지나갈 수 있게 돌린다(turn)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권한을 민간에게 위양한 것이 중세의 민자도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유료도로가 저항 없이 순탄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19세기 중반 남부와 중부 웨일스 지역에서 발생한 레베카 폭동이다. 영국에서의 유료도로로 돈을 버는 유료도로 기금(turnpike trust)는 한때 1천개 이상일 정도로 흥했다. 그런데 어느새 준조세가 된 이들의 징수요금이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 계층에게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폭동의 결과로 당국은 입법을 통해 부당한 요금의 인하 등을 시행하여 민심을 달랬다.

자원의 강제동원 실패가 “정부의 실패”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면 레베카 폭동의 사례는 “시장의 실패”의 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의 사회기반시설은 이러한 역사의 양측에서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그 시행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우리의 상황을 보면 정부주도의 공급이 정치적 요소에 따라 지역편중적인 폐단이 있다면 민간주도의 공급은 비싼 서비스 가격에 대한 저항의 폐단이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현재진행중인 것 같다.

The Big Short 感想文

전에 읽었던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스크린에 옮긴 동명의 작품 The Big Short를 어제 감상했다. 원작자가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금융폭탄” 중 하나인 MBS의 발명가 루이스 라니에리를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칫 영화감상의 맥락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한 CDS니 CDO니 하는 복잡한 금융공학 발명품의 개념을 모델, 요리사 등 비전문가의 입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달지 극중 배우들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한달지 하는, 굳이 구분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의 스타일을 빌려 매끄럽게 극을 진행시켜 나간다.

2005년 5월 19일 마이크 버리(Mike Burry)는 그의 첫 서브프라임 모기지 계약들을 성사시킨다. 그는 도이치뱅크로부터 6천만 달러의 신용부도스왑(이하 CDS)를 구입했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채권에 각각 1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중략] 그는 모기지 풀 중 가장 부실한 것을 찾아다니며 수십 권의 투자설명서를 읽고 수백 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때까지도 매우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그것들을 작성한 변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읽은 유일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The Big Short, Michael Lewis, Norton, 2010, pp49~50]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마이크 버리는 영화에서 주택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소수 중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버리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춤을 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외골수적인 기질을 타고난 펀드매니저였다. 그래서 그는 – 당연히 해야 할 일인 – 모기지 채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읽고 시장이 붕괴될 것임을 직감한다.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 마크 바움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역시 면밀한 점검을 통해 춤을 추는 대신 음악이 꺼질 것이라는 것에 돈을 걸고, 시장의 붕괴를 기다린다.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뛰어난 안목으로 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는가 보다는 – 그런 부분을 다 설명하다보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니라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터이니 – 이들의 선지자적 태도와 이후의 시장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서로 긴장감을 유지해가며 갈등하게 되는지를 주로 조명한다. 부실이 증가함에도 그 자산과 연계된 CDO 채권의 값은 상승한달지, 신용평가사가 투자은행을 상대로 채권등급 장사를 한달지, 기자는 시장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기사쓰기를 거부한달지 하는 등의 부조리가 선지자들을 괴롭히는 상황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이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바 주인공들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마이크 버리는 400%가 넘는 수익률을 시현하였고, 마크 바움은 개인적으로도 1억 달러를 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이들은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비극적인 코미디다. 우리가 알다시피 월가나 금융당국 그 어느 곳에서도 시장의 붕괴에 대해 책임진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영화는 후일담으로 버리만 네 차례의 회계조사를 받는 등 당국의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승리자는 결국 부조리한 세상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평온해진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시장도 안정을 찾은 듯 하고 Fed도 금리를 인상했다. 그렇다면 이제 경기는 늘 그랬듯이 경기변동설에 따라 다시 상승기로 접어드는 것일까?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은 동반 폭락하였고, 유가는 30달러 바닥을 뚫고 내려갔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고신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마치 투자은행이 증권화와 부외금융을 통해 버블 붕괴를 이연시켰던 것처럼, Fed 등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와 긴축재정을 통해 더 큰 버블의 붕괴를 이연시키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크루그먼에 빡돈 로버트 라이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크루그먼이 어제 버니의 지지자들에게 변화는 “변화의 레토릭”이 아닌 “정치적 실리주의” – “절반의 애증이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것을 인정하는” -를 통해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수단과 목적에 대한 깊은 고심하는 것보다 (힐러리를 의미하는) 행복한 꿈을 (버니를 의미하는) 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썼다. 크루그먼은 뭘 모르는 것이다. 난 워싱턴 근처에서 내각 생활을 포함하여 거의 50년을 몸담거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오로지 미국의 대중의 상당수가 변화하고, 조직화되고, 충전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확정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Bernie’s Movement]

미국판 “비판적지지”론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가보다. 크루그먼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만드는 방법’이라는 칼럼에서 그 첫 단계로 버니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으면 된다고 비아냥댔다. 로버트 라이시는 이런 크루그먼이 못마땅해서 “빵 한 덩어리를 꿈꿔야 반 덩어리라도 얻는 법”이라고 반박했다. 반박의 근거(?)로 크루그먼은 못해본 라이시의 관료 경험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꽤나 빡이 돈 것 같다. 한편 당연히 버니를 찍을 것 같던 촘스키의 힐러리 지지설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암튼 그 동네의 진보진영도 이런저런 변수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다.

내 경우엔 국내정치에서는 사실 로버트 라이시와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입장은 내가 투표를 던졌던 정당이나 정치인보다 덜 급진적이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런 정치세력이 유의미해져야 사회의 균형추가 어느 정도는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과거에 최악을 막기 위해 “상대적 진보”를 택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상대적 진보성을 무기로 더 수구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뿐이었다. 진보의 급진성이 두렵다면 한국을 비롯한 열강의 現정치를 보라. 그 면면이 이전에 보지 못하던 보수적인 급진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초저유가 시대에 대한 단상

지난 5년간 미국의 셰일 생산이 치솟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초과하였고 이로 인해 18개월 동안 유가는 75% 아래로 떨어졌다. 금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이벌인 이란이 제재의 해제에 따라 시장에 재진입할 준비를 함에 따라 원유가 30% 떨어지며 폭락이 가속화되었다. [중략] 미국의 셰일 생산자들은 2010년에서 2014년 기간 동안 배럴당 평균 가격이 100달러에 달했던 빠른 확장기 동안 조달한 대규모 부채를 갚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펌프질을 해댔다. 만약 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위로 오르지 않는다면 많은 기업들이 올해 파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Saudi Arabia says $30 oil is ‘irrational’]

석유업은 최근에 들어서야 석유 메이저, 국영석유기업, 대형 석유화학 기업 등의 존재 때문에 매우 안정적인 사업 분야로 인식되는 것이지, 그 초기에는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의 투전판이었다. 금을 찾아 헤매는 황금광시대의 채굴업자처럼 석유를 찾아 헤매는 이들 역시 “검은 황금광시대”의 남루한 채굴업자였던 것이다. 다만 주요한 차이라면 원유의 발견에서 굴착, 그리고 상품화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궁극적으로 석유생산업이 금광업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개연성일 것이다.

그래서 석유업은 진작부터 프로젝트파이낸스라는 금융기법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였다. 계속기업의 신용이 아닌 미래의 잠재적인 현금흐름을 분석하여 장기의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인 프로젝트파이낸스는 가진 것이라고는 땅속의 원유밖에 없는 석유업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조달기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조달기법은 1930년대 미국의 유전개발에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BP의 영국 북해 유전 개발에는 9억4천 달러의 조달을 위해 66개의 금융기관이 신디케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세대 석유업인 셰일 생산에 뛰어든 업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이저가 아닌 회사가 셰일 분야에 뛰어들려면 결국 프로젝트파이낸스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했다. 자금조달을 위해 필요한 사업성분석은 당시의 유가인 배럴당 100달러를 비용은 그들의 주장에 근사값인 배럴당 60달러 정도를 적용했을 것이다. 이 금액을 재무모델에 적용하면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 투입하지 않아도 채산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어 자금조달이 가능했을 것이다. 유가가 그 가격을 유지하는 한 모두가 행복했을 시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요소들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새롭고도 중요한 요소는 최근 석유 섹터가 부담하는 부채의 현저한 증가다. 투자자들이 기꺼이 원유자산과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기 때문에 원유기업들은 부채 수준이 광범위하게 상승하는 와중에도 대규모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중략] 생산자들이 변제능력이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오일 섹터의 이러한 과중한 부채부담이 석유 시장의 최근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중략] 높은 부채 수준으로 인해 유가 하락이 생산자의 재무상태표를 악화시키고 잠재적으로 원유자산 판매의 결과로써(예를 들어 더 많은 생산량이 선물로 팔린다) 가격하락을 부추기면서 신용수준을 조이게 된다. 둘째로, 낮은 유가는 현금흐름을 감소시키고 기업이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유동성 부족의 위기를 증가시킨다. 부채 상환 요구 조건은 현금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질 생산을 지속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이것이 시장에서의 공급 감축을 지연시킬 수 있다.[Box: Oil and debt (February 2015)]

하지만 2014년 중반 이후 유가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수요를 넘어선 공급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이미 유가 하락의 환경을 조성했지만, 석유업 벤처들의 높은 레버리지 활용으로 말미암아 셰일 업자들은 – 파이낸셜타임스의 인용기사에서 표현한 것처럼 – 빚을 갚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펌프질을 해대야 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닷컴버블에서 볼 수 있었던 버블이 석유업에서도 복합적인 요인과 맞물려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세가 꺾인 중국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노쇠한 유럽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 같지는 않다. 공급 쪽을 보면 비록 사우디가 배럴당 30달러가 비정상적이라고 주장을 했다지만 스스로 감산 추세를 주도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사우디가 총대를 멘다할지라도 최근의 사우디-이란 분쟁 등을 감안할 때 산유국의 공동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셰일 업자들에게나, 전통적인 산유국에게나, 그리고 그들로부터 사업을 수주했던 건설/조선업자들에게나 모두 우울한 전망이다.

아담 스미드는 현대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데이빗 리카도와 아담 스미드는 무역협정 안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의 포함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들은 생물학 약품의 판매에 5년 혹은 8년의 독점권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에게 기본적인 노동 및 환경 조건을 준수하도록 확인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환율조작은 어떠한가? 그리고 대량의 자본이동에 따른 인터넷이나 해외에서의 일자리에 대한 서비스의 거래는 어떠한가? 비교우위 이론은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직 이것들은 현재 TPP 협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다.[Sander M. Levin – Testimony before the 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의 ‘TPP에 대한 미국경제와 특정 산업분야에 관한 영향’ 청문회에서의 샌더 레빈 미 하원 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레빈 의원은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미국에서의 노조 등 노동자 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미FTA 체결 시에는 한국이 자동차 시장을 충분히 개방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서 상기 발언을 읽어보면 미국의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일면을 관찰할 수 있다.

위에 나열한 여러 현대적 자유무역협정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조항들에 대해 과연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담 스미드는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아담 스미드가 주창한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농산물 수입 통제 등을 통해 이득을 보려던 경쟁력 떨어지는 자산가의 기득권 타파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나 장기 독점판매권이 아담 스미드의 그런 이상과 부합하는 것일까? 오히려 기득권의 보호가 국제적으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

샌더 의원의 이어지는 증언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자유무역”에 대한 서구의 – 특히 미국의 – 믿음은 1980년대 미국의 對일본 무역적자에 대한 경험으로 강화되어 온 측면이 있다. 하나의 신조가 된 더 적은 정부개입과 “자유”무역은 이후 NAFTA나 각종 FTA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무역협정에서 당사국들은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일까? 여전히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나 독점적 판매권을 “자유”무역이라 여기는 것일까? 이 글 등을 읽어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기도 하다.

이번이 생물학 생산품에 대한 시장 독점권에 대한 조항이 등장한 첫 사례다. 그리고 이는 많은 TPP 조약국들에 대한 새로운 의무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다음 개발단계에 있는 제네릭 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biosimilar)의 경쟁이 지연될 것이고, 이는 적정한 약품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 개발도상국 혹은 심지어 호주에서의 많은 시민들이 이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 의미한다. TPP 의무조항은 장래에 적정한 약품에 대한 접근을 향상시키기 위해 취해질 시스템의 개혁을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현재의 지적재산권을 옥죌 것이다.[TPP Intellectual Property Chapter is “A Disaster for Global Health”]

어떤 “부적”

그래서 우리의 공화당 예비후보들인 Ted Cruz, Rand Paul, Mike Huckabee 는 Fed가 金에 달러를 고정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실질적인 제안이라 여기는 것은 다소는 너그러운 것이다. 제안자들은 Fed가 1933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 대해 해당 가격에 금을 공급할 의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1945년과 1971년 기간에 그랬던 것처럼 외국정부에게만 그렇게 할 의무가 있는 것인지 명확히 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은 이 의무가 이전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비상시에는 유보될 수 있는지의 여부도 설명하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그 부적(talismanic)으로써의 특성을 제외하고 금이 왜 그렇게 특별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Fed가 대표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바스켓 가격보다는 이 특별한 금속에 가격을 안정화시켜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만약 비판자들이 전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그들은 그 제안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제안을 “인플레이션 타겟팅”이라고 해도 된다.[Reforming or Deforming the Fed?]

“부적”, 적절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