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험시장에서는 개나 줘야 할 pacta sunt servanda

그동안 보험사는 “자살은 재해가 아니고 이 약관은 실수”라며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했다. [중략] 이번 판결로 대법원은 약관 해석에 관한 하급심의 혼선을 정리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문제가 된 약관을 쓴 재해사망특약은 2001~2010년 17개 생보사에서 282만 건이 팔렸다.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이 처음 만든 약관을 다른 회사가 그대로 베껴 쓴 탓이다.[그냥 베껴 쓴 약관 한 줄 때문에…잠재 부담 1조에 떠는 생보 업계]

그동안 자신들이 만든 약관에 엄연히 지급하기로 되어 있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던 보험사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이 약관을 처음 만든 때가 2001년이었다고 하니 이 정상적인 판결 하나 받는데 15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보험사가 그 동안 “약관이 실수”였다는 논리(?) 하나 깨는데 그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보험약관 계약당사자의 힘이 얼마나 비대칭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의사가 암이라고 판정한 진단서가 있음에도, 보험사는 ‘경계성 종양’이지 암이 아니라고 주장한 겁니다. 암이라면 8천만 원을 보상받게 되지만 경계성 종양일 경우엔 10분의 1 수준밖에 받지 못합니다. 전문의의 암 진단서를 반박하기 위해 보험사가 내민 근거는 7년 전 발행된 대한병리학회의 학술지. “크기가 1cm미만일 경우 암이 아닌 경계성 종양으로 본다”는 부분을 근거로 들었습니다.[암 수술했는데 암 아니다? 보험사 황당 횡포]

힘의 비대칭을 실감할 수 있는 다른 사례다. 보장성 보험 중 국민이 가장 많이 가입했을 암보험이 암을 진단받은 환자조차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편하게 암이라고 부르는 여러 질병의 정식 명칭은 암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국가암정보센터는 “가성점액종”, “수막종”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질병들을 암의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보험사는 의사의 암 진단에도 불구하고 “종양”이기 때문에 암이 아니라는 기막힌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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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l:Albert Hahn (1877 – 1918) – www.geheugenvannederland.nl (Reclamearsenaal),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952833

자신이 엄연히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약관에 적어 넣은 것은 “실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암에 대해서는 암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보험사의 태도에서 계약충실원칙의 본질인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인가? 가장 불행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줘야 할 보험이 너무나 어이없는 사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면 보험의 존재의의 그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

한국의 보험사들이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약관을 멋대로 해석하여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견으로는 그간 지인을 통한 품앗이식의 보험판매에 익숙한 “한국형” 보험시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보험을 일종의 저축으로 여기는 소비자의 마인드도 보장성 보험 상품의 안일한 지급관행에 한몫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금리 상황에서 간신히 연명하는 보험사가 정신 차려야 할 또 하나의 엄중한 상황이다.

다시 자살보험금 이야기로 돌아가서 인용기사에 있는 그래프를 보자. 이번 판결로 가장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할 보험사는 ING생명과 삼성이다. 국내 4위권과 수위권 보험사다. 이들이 이 “우발채무”를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ING는 게다가 한 사모펀드가 매입하여 곧 매물로 나올 기업이다. IFRS등 규정 변경 등으로 많은 준비금을 쌓아야 할 보험사의 앞날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다. 자승자박일지도.

중앙은행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2006년의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우리의 인식에 어떤 거대하고 부정적인 충격이 없는 한, 주택 가격에 예상되는 냉각의 효과는 완만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농담 분위기를 빌어서 뉴욕의 조합(co-op) 아파트의 미친 듯한 가격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고, 위원들은 웃었다. [중략] 그러나 2007년 3월은 서브프라임에 대한 경고를 하기에는 게임에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 견해로는, 위험을 줄이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감독자들이 주요 금융사들이 위기에서 생존하는 데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뿐이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p133~135]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집값하락에 대해 Fed의장이 농담을 할 정도로 그렇게 낙관적이었던 분위기가 가이트너가 뒤늦게 고백하는 “경고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으로 바뀌는데 불과 1년이 걸렸을 뿐이다. 그 1년 사이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가 돌변하였을까? 왜 경제위기는 이렇게 우리 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최근 우리나라의 조선/해운업의 위기 상황에서의 정부와 한국은행의 갈등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의문이다.

우선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의 시간상의 차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롱포지션은 각종 채권이 가격을 오름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은 일반적으로 서서히 오른다는 전제 하에 이 위치를 롱포지션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whatever). 그리고 숏포지션, 즉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하락은 서서히 과열되었던 거품이 터지며 투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급락하는 경향이 있다. 인용문에서의 기간이 바로 이렇게 급격한 투매의 시기였고, 많은 참여자들은 시장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버냉키처럼 농담으로 그 경고를 무시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의 한계다. 회의 시간에 농담을 한다고 해서 정책집행자들이 마냥 시장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Fed는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0.25%씩 인상하면서 긴축정책에 돌입하였다. 문제는 이런 단기금리 인상이 장기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경제가 전통적인 Fed의 정책수단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커지고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수단의 한계를 깨달은 현 상황을 우리는 “새로운 정상” 심지어 “새로운 비정상”이라 이름붙여 정당화하게 되었다.

세 번째, 두 번째의 배경과 겹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정책집행자들의 믿음 혹은 그들의 계급적 성향이었다. 버냉키 전의 그린스펀은 아인랜드에 열광했던 시장근본주의자였고 시장 불개입주의자였다(다만 거품 붕괴로 인한 채권자의 채권회수에 문제가 있을 시에는 예외였다). 경제학자 제럴드 앱스테인(Gerald Epstein)은 금리조정 등을 – 주로 단기금리 – 통해서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경제가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라 여기는 이러한 발상을 신자유주의 적이고 금융엘리트를 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금융위기 도래 이후,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을 비롯한 여러 비정상적인 조치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지연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정책집행자들의 – 행정부나 의회로부터 독립되어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여겨지는 고매한 금융 엘리트 – 손에 흙을 – 또는 피 – 묻히는 행위는 이미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좀더 일상적으로 취해지던 조치와 유사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라고 하지만 Fed의 조치가 “미국판 관치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판 양적완화”든 “미국판 관치주의”든 간에 경제의 순환은 금융시스템에서의 유동성을 통해 가속화되고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에는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시장의 본질이든 오작동이든 간에 거품이 터지고 나면, 그 치유는 주로 – 여태 시장과 함께 사태를 마냥 낙관했던 – 중앙은행을 포함한 금융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태의 행위가 주로 자산가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1

늘 그렇듯 중앙은행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시장의 완벽한 작동에 미세조정만을 가하는 금융엘리트 집단으로 남기를 꿈꾸지만, 시장은 늘 미세조정 이상을 요구하며 요동쳤고 결국 중립성과 독립성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만 남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앙은행 재무제표는 국가재정의 부외금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주머니일 뿐이란 사실은2 현재 한국정부의 한국은행 흔들기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1. 너무 순진하거나 2. 너무 무력하거나 3. 너무 고매한 것일지도?

싸움에서 선빵이 중요하듯이, 정책실행에선 용어가 중요하다

어느 정부나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은 일단 멋진 용어로 포장해야 한다. 여론이 정책실행 동력의 주요한 변수가 되어버린 현대의 정치지형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 의외로(!) – 경제정책의 용어 선점에 익숙했다. 멀리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의 “경제민주화” 용어 선점이 있었다. 이후 그 용어는 집권 성공과 김종인의 퇴장과 함께 짧은 생을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경제용어(?)는 “창조경제”다. 이 표현이 쓰일 즈음 당시 유행하던 농담이 ‘도대체 정체를 모를 것이 ㅇㅊㅅ의 “새정치”와 ㅂㄱㅎ의 “창조경제”’라고 할 정도로 오리무중인 이 용어는 그래도 “경제민주화”보다는 오랜 생명력을 가지며 버텼다. 주로 서구의 각종 성공사례가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고 주장하는 식이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한 것이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표현이 “노동개혁”으로 대표되는 “4대개혁”이다. 행정부는 자신의 개혁의지가 담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며 “국회심판론”을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국회가 심판당한 것’이라며 – 우리는 평행우주를 살고 있는가? – 노동개혁을 중단 없이 밀고 가겠다고 할 만큼 집권 후반기인 현재까지 행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콘텐츠 없는 레토릭에 가까웠다면 “노동개혁”은 개혁과 거리가 먼 노동개악의 모습을 지닌 존재이자 노동자의 삶에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 또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 존재다. 여론이 이 “개혁” 레토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보자면 유권자를 박근혜 식 “개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현 정부가 꺼내든 또 하나의 신박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한국형 양적완화”다. 총선 국면에서 여당의 강봉균 선대위원장(뭐 그런 비스무리한 직함)은 난데없이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각국이 제로금리를 넘어 더 이상의 금리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장기 금리를 낮추기 위해 내놓은 이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던 와중에 다행히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카드를 청와대가 꺼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묻지마 양적완화”인 반면에 우리의 양적완화는 “특수 목적을 갖는 양적완화”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에 의문의 1패를 안기는 자화자찬까지 곁들였다.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선거에서 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든 것부터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이 용어를 선점한 의도는 무엇일까? 전에 담뱃값 인상 등 사실상의 증세를 실행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강변했고 이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특정산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국책은행에 중앙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는 행위는 “양적완화”가 아닌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명명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들 다하던 바로 그 한국형 “양적완화”.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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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신윤복 (申潤福: 1758-19세기 초반) – http://www.koreaedunet.com/technote/read.cgi?board=picture&y_number=5,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800359

며칠 전인 4월 20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간송미술전을 열고 있다.. 이번 미술전의 백미는 역시 신윤복의 미인도다. 조명이 어두운 감이 있어 그 화려함을 감상하기엔 좀 미흡한 감이 있었지만 명불허전 미인도에서의 인물은 금세라도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옅게 웃음이라도 지어줄 것처럼 생생한, 그러나 새초롬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어떤 평론가의 해석에 따르면 그림 속 여인은 옷을 벗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것은 여인의 한복 고름이 풀어진 채로 밑을 향하고 있고, 여인은 고름에 달려 있는 노리개가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여인은 필시 막 옷고름을 푸는,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이 평론가의 분석이다.

이러한 해석이 아니더라도 미인도는 관능미가 압축된 작품이다. 일단 여인은 요즘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보았을 때 가장 관능미를 자극하는 부분은 의외로 버선을 신은 여인의 발 한쪽이다. 짐작컨대 화가는 일부러 한쪽 버선발만 삐쭉 드러냄으로써 은근한 관능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인의 발은 특히 동양에서 관능미를 느끼게 하는 신체 부위로 여겨졌다. 이런 문화가 중국에서는 전족(纏足)이라는 비극적인 풍습을 낳기도 하였지만, 신체 노출이 심하지 않은 동양의 복식 문화에서 발의 노출은 그만큼 남성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체 부위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신윤복은 미인도에서 이런 문화와 관념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이런 발의 관능미를 잘 활용한 영화가 최근에 본 ‘지온바야시(祗園囃子)’라는 일본영화였다. 내키지 않는 남성과 억지로 잠자리를 해야 하는 게이샤에 관한 일화를 담은 이 작품에서, 감독은 여주인공이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상황을 버선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여인의 발과 버선이 의미하는 바를 잘 활용한 장면으로 여겨졌다.

사회가 청년에게 각자도생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동층의 비중이 높아서 정치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었다. (아래 참조) 이글을 쓴 사람들은 그 정치적 성향을 굳이 나누자면 “진보”측으로 여겨진다.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적인 투표성향의 노인층에 대항하여 청년층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 즉 청년층은 야권을 지지할 것이라는 –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젊은 부동층은 벚꽃구경가느라 투표안한다. 지들 앞길을 지들이 망친다.”
“10대 20대에서 43%. 그러나 투표를 하는 사람은 4.3% 정도??”

실제로도 청년층의 대통령 지지도를 보면 反여권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를 제외하고는 위 베스트 댓글이 비아냥대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여태의 투표에서도 청년층의 투표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투표해서 뽑은 정치권이 실제로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1 이는 주요하게 이미 청년층의 비중이 갈수록 작아지는 과소대표성 경향을 보이고 있고, 정치권이 이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4년 ILO 보고서는 각국 청년의 교육 및 고용현황을 비교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 청년의 열악한 처지가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는 1996년 및 2006년 각국의 교육수준을 지수로 표현해놓았는데, 우리나라는 각각 5.96과 7.34를 기록하였다2. 이 수치는 각 년도 2위,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과 고용률은 1996년 꼴찌에서 두 번째, 2006년에는 꼴찌를 기록했다. 요컨대, 남한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이 가장 열악한 고용수준에 시달리는 나라다.

각국 노동시장에서의 청년층의 교육수준

출처 : At work but earning less : minimum wages and young people, Damian Grimshaw, ILO, 2014, p13 에서 재구성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청년고용률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의 상황이 이러한데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정치권이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다. 많은 청년층 노동자들이 해당사항일 최저임금을 올리는데 인색하던 여권이 부랴부랴 총선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놓았지만, 이런 그들이 또 지자체에서 실시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예의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보수층은 “흙수저”3, “헬조선”이란 유행어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비난하고, 진보층은 투표를 안 해서 그런 것이라 비아냥댄다.

이 나라는 여태의 노동자와 자본가의 역학구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노년층은 정치4, 경제5, 문화6 등에서 권력을 잡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어 노자(勞資)간의 대립에 중층적으로 고통 받는 新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더군다나 젠더의 문제로 가면 한층 복잡해진다. 남녀간 임금차이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문화적으로도 “여혐”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고통 받는 청년, 여성, 노동의 이슈가 맞물려 피해의식을 특정계층에 쏟아 붓는 양상으로 추측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各自圖生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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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감독의 돈이 필요했던 이유

나는 돈의 요점은 그걸 쓰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의 요점은 내가 정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그걸 보유하는 데 있어요. 생활수준을 높였는데 갑자기 무일푼이 돼버리고 스튜디오 몇 군데에서 원하지 않는 영화를 찍으라고 강요한다면. [중략]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의 영화화 권리를 사들이는 데 돈을 써요. 마음에 드는 다른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책의 권리도 사들이려고 돈을 저축하고요.[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p39~40]

역사상 어느 영화감독보다도 탄탄한 필르모그래피를 구축한 것으로 인정받는 스탠리큐브릭의 돈에 대한 생각이다. 평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오던 차에, 그 맥락이 수긍이 가는 유명인(!)이 이런 말을 하니 반가운 맘에 옮겨 적어봤다. 즉, 그의 독보적인 필르모그래피는 그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를 찍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자유를 확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닌 창작과 그에 따른 기쁨으로서의 일이 현실적으로는 물질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현실에서 큐브릭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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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ley Kubrick ; cropped by Off-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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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image: LOOK Magazine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Prints & Photographs Division, [Reproduction number e.g., LC-L9-60-8812, frame 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5534727

물론 돈이 아주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희생만 각오한다면 하고 싶지 않은 노동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다. 소위 “자발적 가난”이라는 표현이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소비를 줄이고 덜 노동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택한 삶을 그렇게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큐브릭에게는 당연하게도 돈이 필요했다. 영화창작이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로리타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몇 십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직접 투자해야 했고, 이를 통해 그는 창작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이 없이도 나름의 창작세계를 구축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에드 우드는 ‘글렌 혹은 글렌다’와 같은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며 버텼고 사후에 어느 정도 그만의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더 독특한 예로는 “핑크 영화”라 불리는 1960~70년대의 일본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일인데, 감독은 일정수의 섹스신만 넣기만 하면 상당한 정도의 연출의 자유가 주어진 덕에 때로 정치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핑크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그래도 큐브릭이 돈이 있어서 더 좋은 작품을 찍은 것은 사실이고, 그저 그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