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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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신윤복 (申潤福: 1758-19세기 초반) – http://www.koreaedunet.com/technote/read.cgi?board=picture&y_number=5,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800359

며칠 전인 4월 20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간송미술전을 열고 있다.. 이번 미술전의 백미는 역시 신윤복의 미인도다. 조명이 어두운 감이 있어 그 화려함을 감상하기엔 좀 미흡한 감이 있었지만 명불허전 미인도에서의 인물은 금세라도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옅게 웃음이라도 지어줄 것처럼 생생한, 그러나 새초롬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어떤 평론가의 해석에 따르면 그림 속 여인은 옷을 벗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것은 여인의 한복 고름이 풀어진 채로 밑을 향하고 있고, 여인은 고름에 달려 있는 노리개가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여인은 필시 막 옷고름을 푸는,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이 평론가의 분석이다.

이러한 해석이 아니더라도 미인도는 관능미가 압축된 작품이다. 일단 여인은 요즘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보았을 때 가장 관능미를 자극하는 부분은 의외로 버선을 신은 여인의 발 한쪽이다. 짐작컨대 화가는 일부러 한쪽 버선발만 삐쭉 드러냄으로써 은근한 관능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인의 발은 특히 동양에서 관능미를 느끼게 하는 신체 부위로 여겨졌다. 이런 문화가 중국에서는 전족(纏足)이라는 비극적인 풍습을 낳기도 하였지만, 신체 노출이 심하지 않은 동양의 복식 문화에서 발의 노출은 그만큼 남성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체 부위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신윤복은 미인도에서 이런 문화와 관념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이런 발의 관능미를 잘 활용한 영화가 최근에 본 ‘지온바야시(祗園囃子)’라는 일본영화였다. 내키지 않는 남성과 억지로 잠자리를 해야 하는 게이샤에 관한 일화를 담은 이 작품에서, 감독은 여주인공이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상황을 버선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여인의 발과 버선이 의미하는 바를 잘 활용한 장면으로 여겨졌다.

사회가 청년에게 각자도생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동층의 비중이 높아서 정치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었다. (아래 참조) 이글을 쓴 사람들은 그 정치적 성향을 굳이 나누자면 “진보”측으로 여겨진다.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적인 투표성향의 노인층에 대항하여 청년층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 즉 청년층은 야권을 지지할 것이라는 –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젊은 부동층은 벚꽃구경가느라 투표안한다. 지들 앞길을 지들이 망친다.”
“10대 20대에서 43%. 그러나 투표를 하는 사람은 4.3% 정도??”

실제로도 청년층의 대통령 지지도를 보면 反여권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를 제외하고는 위 베스트 댓글이 비아냥대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여태의 투표에서도 청년층의 투표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투표해서 뽑은 정치권이 실제로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1 이는 주요하게 이미 청년층의 비중이 갈수록 작아지는 과소대표성 경향을 보이고 있고, 정치권이 이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4년 ILO 보고서는 각국 청년의 교육 및 고용현황을 비교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 청년의 열악한 처지가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는 1996년 및 2006년 각국의 교육수준을 지수로 표현해놓았는데, 우리나라는 각각 5.96과 7.34를 기록하였다2. 이 수치는 각 년도 2위,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과 고용률은 1996년 꼴찌에서 두 번째, 2006년에는 꼴찌를 기록했다. 요컨대, 남한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이 가장 열악한 고용수준에 시달리는 나라다.

각국 노동시장에서의 청년층의 교육수준

출처 : At work but earning less : minimum wages and young people, Damian Grimshaw, ILO, 2014, p13 에서 재구성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청년고용률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의 상황이 이러한데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정치권이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다. 많은 청년층 노동자들이 해당사항일 최저임금을 올리는데 인색하던 여권이 부랴부랴 총선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놓았지만, 이런 그들이 또 지자체에서 실시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예의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보수층은 “흙수저”3, “헬조선”이란 유행어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비난하고, 진보층은 투표를 안 해서 그런 것이라 비아냥댄다.

이 나라는 여태의 노동자와 자본가의 역학구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노년층은 정치4, 경제5, 문화6 등에서 권력을 잡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어 노자(勞資)간의 대립에 중층적으로 고통 받는 新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더군다나 젠더의 문제로 가면 한층 복잡해진다. 남녀간 임금차이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문화적으로도 “여혐”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고통 받는 청년, 여성, 노동의 이슈가 맞물려 피해의식을 특정계층에 쏟아 붓는 양상으로 추측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各自圖生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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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감독의 돈이 필요했던 이유

나는 돈의 요점은 그걸 쓰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의 요점은 내가 정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그걸 보유하는 데 있어요. 생활수준을 높였는데 갑자기 무일푼이 돼버리고 스튜디오 몇 군데에서 원하지 않는 영화를 찍으라고 강요한다면. [중략]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의 영화화 권리를 사들이는 데 돈을 써요. 마음에 드는 다른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책의 권리도 사들이려고 돈을 저축하고요.[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p39~40]

역사상 어느 영화감독보다도 탄탄한 필르모그래피를 구축한 것으로 인정받는 스탠리큐브릭의 돈에 대한 생각이다. 평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오던 차에, 그 맥락이 수긍이 가는 유명인(!)이 이런 말을 하니 반가운 맘에 옮겨 적어봤다. 즉, 그의 독보적인 필르모그래피는 그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를 찍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자유를 확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닌 창작과 그에 따른 기쁨으로서의 일이 현실적으로는 물질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현실에서 큐브릭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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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ley Kubrick ; cropped by Off-shell

File:KubrickForLook.jpg
Original image: LOOK Magazine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Prints & Photographs Division, [Reproduction number e.g., LC-L9-60-8812, frame 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5534727

물론 돈이 아주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희생만 각오한다면 하고 싶지 않은 노동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다. 소위 “자발적 가난”이라는 표현이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소비를 줄이고 덜 노동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택한 삶을 그렇게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큐브릭에게는 당연하게도 돈이 필요했다. 영화창작이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로리타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몇 십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직접 투자해야 했고, 이를 통해 그는 창작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이 없이도 나름의 창작세계를 구축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에드 우드는 ‘글렌 혹은 글렌다’와 같은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며 버텼고 사후에 어느 정도 그만의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더 독특한 예로는 “핑크 영화”라 불리는 1960~70년대의 일본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일인데, 감독은 일정수의 섹스신만 넣기만 하면 상당한 정도의 연출의 자유가 주어진 덕에 때로 정치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핑크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그래도 큐브릭이 돈이 있어서 더 좋은 작품을 찍은 것은 사실이고, 그저 그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알파고가 경제시스템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회?

신용평가업계도 위기감이 감돈다. 알파고, 아니 ‘알파크레딧’이라는 이름의 AI가 신용평가 영역을 침범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AI의 재무 분석 결과 00사 부도율 7.25%, 고로 신용등급은 BB+”와 같은 계량적 판단은 당장이라도 가능해 보인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빠르게. 사실 신용평가가 1200대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할 정도의 계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분명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AI가 신용평가업계에 도입될 경우 애널리스트 상당수가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고 했다.[알파고가 신용등급을 매긴다면]

알파고가 인간들에게 – 그 인간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한국인이겠지만 – 충격을 안겨준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알파고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지에서는 이미 주기적으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바둑이 꼭 경제와 관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바둑이라는 작은 세계에서의 알파고의 가치판단과 정책결정이 경제 시스템이라는 더 큰 바둑판에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에 따른 보도내용이 많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켄쇼라는 애널리스트를 대체할 소프트웨어 이야기도 있고 인용한 기사와 같은 호사가적 가십성 기사도 있다.

인용기사처럼 인공지능이 신용평가에 도입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용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했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에 관한 부조리는 크게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이나 국제금융기구에 근무하는 엄격한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는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은 고객유치를 위한 등급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선제적으로 등급조정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투자자는 발 빠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처럼 냉정한 신용평가로 등급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SF영화나 스릴러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마이클 케인 주연의 Billion Dollar Brain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한 미국 자본가가 소련을 침공한다는, 비틀린 냉소적 정치 스릴러인 이 작품에서 소련 침공 계획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냉정한 판단으로 명령을 내리기에 때로 브레인은 아군인줄 알았던 이까지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극중 한 배신자가 컴퓨터에 잘못된 명령을 몰래 입력하여 의사결정을 바꾸는데, 결국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를 잘 말해주는 장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순환론이기는 하다. 인간의 결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계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그 기계는 인간이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계가 기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도”나 “국가”라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인공물로 때로 매몰차 보일 정도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판단을 내리는 소프트웨어랄 수 있다. 신용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기계적이고 냉정해야 할 신용평가 분석가가 실적에 시달리고 친분에 판단이 좌우된다면, 기계가 의사결정과정의 상당부분을 대체한다고 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신용 시스템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다면 우리 경제 시스템의 큰 부분 하나가 인공지능에 맡겨지는 셈이다. 이런 고급 의사결정에서 인공지능의 효율성이 검증된다면 장래에 보다 고차원적으로 전반적인 사회의 경제기획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개인의 한계효용을 빅데이터 형태로 수집하여 이를 분석하고 파레토 효율이 도달하는 시점에서의 상품생산량을 결정해주는 과정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SF적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미래는 바로 신고전파의 한계효용이론이 적용된 계획경제 시스템이란 점이다.

시장경제 이론과 계획경제 이론의 조화로운 만남일지도?

전경련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위한 보고서를 하나 썼는데

자영업자, 수익성은 낮은데 자영업자 종사자가 많아, 장기적으로 자영업자 비율이 현재의 27.4%(‘13)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질 필요. [중략] 연간 사업소득 2,000만원 이하인 4대 저수익 업종에 종사하는 자영업 종사자 223만명 중 절만 정도는 장기적으로 신사업 발전을 통한 임금 근로자 일자리 신규 창출을 통해 임금근로자로 전환할 필요.[가계소득 현주소 및 향후 과제, 전국경제인연합회, 2015.12, 8p]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013년 현재 약 27.4%로 4만불 소득 국가(11.6%)나 OECD국가(15.8%)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다. 전경련의 보고서는 그 와중에도 최근 10년간의 자영업자의 소득 증가율이 임금근로자의 소득증가율보다 낮다는 것을 배경으로 한계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임금근로자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그 취지에서는 공감이 가는 바가 없지 않으나 다만 그 자영업자의 생성배경이나 인력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자주 지적되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하지만 고령자의 재취업 여건이 여의치 못해 임금근로로 흡수되지 못한 인력들이 자영업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략] 2012년 1~5월 50대 이상 자영업자수는 17만 5천명 증가하여 3~40대 자영업자수가 3만 명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자영업자수의 증가를 이끌었다.[저부가가치에 몰리는 창업 자영업 경기 더 악화시킨다, LG경제연구원, 2012.7]

즉, 다른 나라와 두드러지게 다른 우리나라 자영업의 특징은 짧은 시간의 빠른 경제성장 시기에 임금근로자로 활동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거나 해고된 와중에 자영업 시장에 생계형 창업으로 진행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LG연구원의 지적처럼 이들의 재취업 여건은 연령이나 전문성 부족 등의 제약조건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전경련의 보고서가 이들의 재취업 경로로 제안한 업종은 의료, 금융, 통신·사업서비스 등 지식집약적 사업이다.

고용률을 고소득국가처럼 향상시키려면 의료, 금융, 통신·사업서비스 등 고임금인 지식집약 서비스업종의 고용 및 부가가치 정체 등 성장정체를 해소할 필요. [중략]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보건·의료 4.1%로 선진국의 절반수준(48%), 금융·보험 5.6%, 정보통신업 3.9%, 전문과학기술 5.1%로 선진국의 70~80% 수준에 불과.[가계소득 현주소 및 향후 과제, 전국경제인연합회, 2015.12, 10p]

보고서는 고용창출을 위한 산업으로 제시한 분야가 선진국에 비교할 때에 부가가치가 낮음을 지적하며 이 산업을 성장시켜 자영업자들을 흡수하는 프로세스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분야 중 몇몇은 그동안 업계가 계속 정부의 규제완화 내지는 지원을 요구하던 분야다. 특히 의료 및 보험 분야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법안 중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다. 이쯤에서 과연 보고서가 과연 진정 저수익의 자영업자들을 위해 쓰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유럽경제의 또 하나의 악재, 유럽은행들의 에너지 관련 대출

전 세계적으로 순수 에너지/발전 기업의 약 35%에 해당하는 175개의 기업이 고위험의 사분면에 놓여 있는데, 이는 높은 레버리지와 낮은 부채상환비율의 조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도합 1,500억 달러의 부채를 재무제표에 담고 있다. 이들 175개 기업 중 50개 기업이 자본잠식 혹은 100이 넘는 레버리지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은 위태롭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주가가 5달러 미만으로 떨어져 휴지조각이 되었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2016년 파산할 위험이 높다.[The Crude Downturn for Exploration & Production Companies, Deloitte Center for Energy Solutions]

기록적인 저유가 시대의 지속으로 에너지 관련 기업의 재무적 위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상승하지 않는 한은 현 위기를 벗어날 뾰족한 방도가 없는 상황이지만, 유가는 당분간 현재의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의 배경에는 ▲ 이란의 시장 가세로 인한 공급 증가 ▲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불황, 및 석유 위주의 에너지 소비 탈피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석유수요 증가율이 과거 1990년~2013년 평균 6.2%에서 2013년~2020년 2.9%로 감소할 것이라는 IEA의 전망은 석유수요가 근본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개연성을 말해주고 있다.

전문가의 가격전망은 에너지/발전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암울하다. J.P. Morgan의 경우 2016년 국제유가를 기존의 48.88달러/bbl에서 31.5달러/bbl로 크게 낮추었다. 좀 더 장기적인 전망도 어둡다. IEA는 2015년 연차보고서에서 2020년 실질 국제유가를 표준 시나리오에서 배럴당 80달러로, 저유가 시나리오에서 배럴당 50~60달러로 전망했다. 2년 전에 쉐브론의 CEO가 배럴당 100달러가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호언했었지만, 이제 아무도 100달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업이 기술개선이나 인력감축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지만 유가급등이 없이는 지속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Gusher Okemah OK 1922.jp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52541

한편 이러한 에너지/발전 기업의 위기는 금융권으로 전이될 개연성이 크다. 인용기사의 한계기업의 부채가 1,500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한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관련기업들의 총부채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이런 많은 부채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은행들이 고유가 시절 에너지/발전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보도된 바로는 대륙으로는 유럽(분석에 따르면 전체 자산의 약 3~5% 수준), 국가로는 프랑스의 금융기관이 특히 에너지 사업에 많은 투자 및 대출을 실행하였다. 다만 이들 기관 상당수는 정확한 거래내용이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유럽의 : 역자주) 은행이 보유한 담보, 헷지가 어떠한 형태인지나 그들의 차입자의 신용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유럽의 은행은 보다 통일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공개한 내용으로는 모두가 관리 가능한 이슈라는 은행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다른 예는 더 나쁘다. 도이치 은행은 자신들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익스포져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 분야에 대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수준이라고만 말하고 있다.[European Bank’s Crude Awakening]

관련기사들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 공히 에너지 기업들에게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예를 들어 웰스파고는 전체 자산의 2%, 유럽은행들은 전체 자산의 3~5% 수준), 미국은행들이 비교적 익스포져를 정확히 공개하고, 이미 많은 자금이 펀딩에 성공했고, 충당금 등을 쌓아두고 있지만 유럽은행들은 통일된 기준도 없고, 많은 자금이 미인출 상태이고, 발표내용들도 은행의 주주들이 만족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경제의 침체, 이에 따른 마이너스 정책금리 등의 상황과 맞물려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악순환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갈 길이 갈수록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