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렌의 이례적인 발언

1989년 이래로 현재의 형태로 조사를 시작한 소비금융조사에 따르면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상위 소수 가구로의 소득집중이 증가세다. [중략] 물가상승을 보정한 상위 5%의 가구소득은 우리가 표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89년에서 2013년 사이 38% 증가하였다. 반면 나머지 95% 가구의 평균 실질소득은 10% 미만으로 증가하였다. [중략] 그리고 소비금융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1989년 이후 부의 불평등은 소득의 불평등보다 더욱 증가세다. 표3에서 보면 1989년 조사에서 상위 5%의 미국 가구는 전체 부의 54%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지분은 2010년에는 61%로 증가하고 2013년에는 63%로 증가했다.[Perspectives on Inequality and Opportunity from the Survey of Consumer Finances]

이 발언은 재야의 “좌파” 경제학자의 발언이 아니라 재닛 옐렌 美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10월 17일 가진 보스턴 연방준비제도은행에서의 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연준 의장이 경제 전망이나 통화정책이 아닌, 이른바 “사회적 이슈”를 연설에서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불평등 이슈가 경제정책에서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한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어쩌면 피케티 열풍의 한 편린일 수 있을 것이고 관찰한 현상도 피케티의 그것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금융 및 제조업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제조업의 일자리를 뺏어서 중산층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반면 금융자산을 쥐고 있는 상위가구의 재산을 증식시켜주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위시한 대기업 경영진의 보수는 해당 기간 동안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 역시 소득불평등에 기여했을 것이다. 옐린 의장은 교육과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근본해결책일지 미봉책일지는 알 수 없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같은 현상을 놓고도 다르게 해석하여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불평등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세는 그들이 현실사회에 대해 발언할 때 더욱 냉혹하게 비쳐지는데, 예를 들면 소득불평등의 주요한 원인인 불법 파견근로1 에 대한 시각도 ‘다른 나라 다 하는 것을 법원이 막으면 우리는 경쟁에 뒤쳐질 것이다2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이제 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경제수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포항제철 건립에 대해 다시 한번

역사적 기록을 보면 자본의 이동성 capital mobility 이 부유한 국가들과 가난한 국가들의 수렴을 촉진하는 주요 요인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타이완이건 그리고 더 최근 들어서는 중국을 막론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선진국 코앞까지 쫓아온 아시아 국가들 중 그 어느 곳도 대규모 외국인 투자로 수혜를 입지는 않았다. 본래 이들 국가는 모두 물적자본과 그리고 더 중요한 인적자본의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조달했는데, 최근 나온 연구들은 특히 인적자본이 이들 국가의 장기성장에서 핵심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식민지 통치 시대건 오늘날의 아프리카에서건 다른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들은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고, 만성적으로 정치적 불안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글항아리, 2014년, p90]

피케티의 이 책은 역사적으로 자본의 수익률(r)이 노동의 수익률(g)보다 크다는 “근본적인 불평등”에 다룬 책이다. 인용한 구절은 이러한 경향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부유한 국가에서 ‘자본의 한계생산성 marginal productivity of capital’이 낮아지면서 자본의 흐름은 가난한 국가로 흐르게 마련인데, 이럼으로써 이들 국가들 사이에 불평등이 감소할 것이라는 고전파 경제학 이론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자체적으로 자본을 조달한 국가들이 더 고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피케티의 관찰이다.

이러한 관찰은 한 예로 든 우리나라의 경우를 놓고 볼 때 그리 틀린 관찰은 아니다. 한국은 강제적인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제 강점기부터 사실상 자력으로 인적자본을 늘려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일정 부분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과거 및 현재의 선진국들의 물질/비물질적인 도움이 있었지만 –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인 편향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지만 – 교육을 책임진 가정의 헌신은 거의 유례없을 정도로 혹독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불어 피케티는 인적자본을 더 강조하기는 했지만 물적자본 역시 자체적으로 해결했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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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angyangIronworks” by 저작자 김소민의 허가를 받고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함 – 저작자 김소민의 허가를 받고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함. Via Wikimedia Commons.

포스코 광양제철소

이미 이 블로그에서 몇 번 다뤘던 포항제철 건립의 비화가 대표적 사례다. 박정희 정권은 국제금융기구들로부터 무모한 계획이라고 비판받았던 제철소 건립을 대일청구권 자금을 활용하여 건설한 – 사실상의 내자조달 – 사례는 남한의 ‘국가주도형 자본주의 모델’에서 매우 중요한 국면이다. 또한 박 정권은 당시 절대적인 자본부족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독일에는 간호사와 광부를, 베트남에는 군인을 보내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외자를 조달한다. 사실상 이런 자금이 그런 조달 배경 덕분에 자본수익이라는 반대급부의 꼬리표가 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포항제철이 ‘자본의 한계생산성’으로 인해 새로운 고율의 자본수익을 쫓던 투자자들의 자본에 의해 건설되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금물이지만 아마도 포항제철의 모습, 나아가 남한 전체의 모습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지금 봐도 무모하기 그지없는 두 박씨의 원대한 계획은 “공상과학”이라 치부되어 사업계획이 수정되었을 것이고 투자에 쓰일 잉여는 배당에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두 박씨는 사실상의 주주인 일제의 피해당사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마패’까지 등장하는 개발독재로 포항제철의 투자효율을 극대화하였다.

고전파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하기 매우 난해한 사건이었다.

“서울시 청년주거 빈곤 개선방안” 토론회 참관기

어제 한 토론회에 갔다. “사회적 경제 주체 활성화를 통한 서울시 청년주거 빈곤 개선방안”이라는 긴 이름의 토론회였다. 주최는 한국도시연구소에서 한 것으로 보이며 발제는 한국도시연구소, 민달팽이유니온,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토론은 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 KBS경제전문기자, 서울시 임대주택과장 등의 참석자가 진행했다. 발제에 제법 시간이 길어 토론은 듣지 않고 돌아왔다.

이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도시연구소의 최은영 박사의 발표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다른 도시와 달리 청년 주거의 빈곤 문제가 다른 세대의 그것을 압도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16세 이상 34세 이하의 연령대로 범주화한 이 세대의 서울시에서의 주거문제가 여타 도시나 다른 세대의 상황에 비해서 두드러지게 나쁘다는 것이 통계 분석 등을 통한 그의 관찰이었다.

상기 표는 가구주의 연령대별 최저주거기준을 미달하는 가구를 서울과 전국으로 비교한 그래프다.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아동과 노인의 주거문제가 전국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다만 서울시의 경우에는 노인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비율이 전국 대비 비약적으로 낮아지는 반면, 청년의 미달 비율은 전국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원인은 한마디로 서울로 청년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최 박사는 다른 이들과 이 주제로 대화를 하면 그들은 “젊을 때는 누구나 고생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곤 한다며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하지만 최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청년의 임금 대비 주거비용이 과거 세대에 비해 더 열악해서 이런 상황이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로 인한 또 하나의 파괴적인 부작용은 소위 “출산 파업”이다. 집이 없으니 애를 낳지 않는 것이다.

최 박사를 비롯한 발제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이른바 “사회주택”의 활성화다. 영리적인 목적의 주택과는 금을 그으면서 최하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주택”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는 사회주택은 유럽에서는 “Housing at Moderate Rent”, “Not-for-Profit Housing”, “Limited-Profit Housing” 등으로 불린다 한다. 이러한 호칭을 통해 사회주택의 특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사회주택을 가동시킬 종자돈일 것이다. 이를 위해 도시연구소 등은 관련조례를 제정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율적으로 공공주택보다는 보조가 덜할지 몰라도 어쨌든 시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을 위해서는 청년의 주거 빈곤이 빈곤의 악순환, 나아가 출산파업으로 인한 사회재생력의 소진으로 이어질 것이란 증거를 보다 확실히 제시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카카오톡 사태에 대한 斷想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이라는 챗앱을 좋아하지 않았다. 왓츠앱벤치마킹해서베껴서 – 만들어낸 “대한민국 대표 챗앱”은 왓츠앱과 달리 처음에는 말끔히 지어놓은 빌딩에 온갖 간판과 네온사인이 붙은 것처럼 산만한 외양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안본지도 몇 년 된 “카톡 친구”가 이상한 게임을 깔라며 메시지를 보내고, 친구 추천란에 수시로 뜨는 온갖 기업 “친구” 추천 등등. 약간은 결벽증이 있는 취향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앱이었다.

하지만 그 앱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에게 왓츠앱이 조용하니 그쪽으로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앱이 카카오톡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포탈 중 하나인 다음을 흡수해서 ‘다음카카오’가 출범하고 은행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송금과 기타 결제기능이 결합된 금융서비스를 구축하는 등 카카오톡은 바야흐로 챗앱을 넘어선 모바일포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게 거칠 것 없던 카카오톡의 앞날에 어두운 구름이 끼는 사태는 어떤 분의 사소한(?)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발언 이후로 관련자들이 어떻게 뻘짓을 하고, 그 뻘짓이 이해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 글에서 잘 정리를 해놓았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사태의 – 이하 “카톡 사태” – 최대 피해자는 다음카카오, 최대 수혜자는 텔레그램이 되었다.

우선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감시가 정당한 것인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간단히 사견을 적자면 공권력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른 –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킨 – 개인정보에 대한 수집 및 분석은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한 법집행이 없다면 실질적으로 범죄에 대한 공권력 집행도 불가할 것이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위기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다. 다음카카오톡의 대응은 “대한민국 대표 챗앱”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한 것이었다.


난 텔레그램의 이 로고가 맘에 든다

트위터 공식계정은 법적 절차 없이 누구에게도 대화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오해하지 마세요”란 거만한 말투로 법집행의 정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했고, 다음 前 CEO는 한 시민운동가와의 설전에서 그에게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기업을 탓할 거면 이민가라”고 했고, 다음카카오의 법률 대리인이라는 분은 소비자에게 “영장집행이 와도 거부할 용기가 없는 비겁자들”이라고 발언했다. 이 모든 발언들이 불과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놀랍다.

法人도 자연인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다음카카오는 지금 참 억울한 자연인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억울할 만하다. 다만 법인은 억울함이 해소되어도 사업 환경이 악화된다면 별무소용이다. 기업 이미지는 법률적 타당성에 맞먹을 정도로 기업이익과 연계된다. 기업은 그것을 알기에 이미지 광고를 하고 홍보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다음카카오가 오해 말라고 강변해봤자 소비자는 텔레그램으로 이민가면 그만이다. 비겁자라기보다는 망명자다.

옳은 방식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선 의문이 있지만 소위 “대기업”의 대응방식은 이와 다를 것이다. 일단 부정적 사건이 발생하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자사의 이름을 언론기사에서 뺀다. 이후 일사불란하게 입단속을 하면서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적어도 홍보 전략이 있는 회사의 대응이다. 하지만 다음카카오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공식사과문”에서도 뭔가 치기어린 장난기를 느낄 수 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한 눈치다.

내가 텔레그램을 깐 이후에도 하루가 다르게 지인의 텔레그램 가입이 늘고 있다. 이런 증가세가 실질적인 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왓츠앱과는 다른 통신환경이 다듬어진 것은 사실이다. 언제든 지인들이 텔레그램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이제 소셜네트워크 특유의 고착성 때문에 더 이상 카톡을 유지하여야 할 이유가 딱히 없을지도 모른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네이트온 메신저가 그랬던 것처럼 카카오톡도 그런 몰락의 길을 걷지 마란 법이 없다.

이번 사태는 MBA에서 홍보 전략 부재에 따른 기업위기의 한 사례로 써도 될 것 같다.

이스탄불 紀行文 – 아직 가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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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ople 1453” by Bertrandon de la Broquière in Voyages d’Outremer – www.bnf.fr.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스탄불에 가기로 결정했다. 知人이 이스탄불에 발령이 났는데 아내에게 겨울에 놀러오라고 제안했다. 아내가 먼저 그곳에 가기로 결정했고 나도 망설이다 그때에 맞춰 가기로 결정했다. 오래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이스탄불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언젠가 한번은 가보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겨우 일주일 동안.

사실 이스탄불, 그리고 터키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동로마 제국, 모스크, 오스만 튀르크 제국, 성상파괴운동 등등. 파편적이고 단편적이다. 짧은 일주일 동안의 여행으로 이 성기게 엮여져 있는 그 광대한 역사의 조각의 한 구석이라도 더 채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둬야 겉핥기 여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서관에서 이스탄불 관련 책을 빌리는 것이었다. 유재원이라는 분이 쓴 터키 관련 기행문과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이 쓴 이스탄불에서의 추억에 관한 그의 에세이를 빌렸다. 1970년대부터 터키를 오간 유재원 씨의 해박한 지식 덕택에 대충 가볼만한 곳의 사전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파묵의 글은 이 정보에 색칠을 해주는 조미료가 되고 있다.

티케팅은 완료했고 숙소는 현재 무난하게 호텔로 예약할지 아니면 이색적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할지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에어비앤비를 잘 고르면 특이한 경험을 할 것 같기도 한데 재수 없으면 돈값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 여행자는 에어비앤비에서 고른 숙소가 사실은 지하였고 열쇠가 작동하지 않아 고생했다는 경험담을 올려놓기도 했다.

일정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서 정리해보기로 했다. 방문지나 먹거리 등 현지에서 빼먹지 않고 해볼 거리를 to-do 앱으로 체크해나갈 요량으로 여러 앱을 써보았다. 하지만 의도에 부합하지 않거나 에러가 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포기하고 결국 고른 앱은 toodledo. 웹에서도 쓸 수 있고 다양한 기능이 있어 현재까지는 만족. 하지만 디자인은 너무 구리다.

어리바리 멍때리고 있다가 갈 시기가 닥쳐서야 서둘러 가서 겉만 훑고 오는 여행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이렇게 서둘러 기행문을 – 시작도 안한 여행의 기행문 – 미리 적으며 마음의 다짐을 하고 있다. 파묵의 글에서 안 사실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땡땡의 모험’ 실사영화가 이스탄불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한다. 우선 그 영화를 통해 사전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객관성에 대한 절대 신뢰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관해

제국중앙보안본부는 친위대의 열두 개 본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의 맥락에서 볼 때 쿠르트 달뤼에게 장군 휘하의 치안담당 경찰본부였는데 유대인의 체포가 그 책무였다. 친위대 행정경제본부(W.V.H.A.)의 수장은 오스발트풀이었는데, 이 기관은 집단수용소를 담당했고, 후에는 유대인 몰살의 ‘경제적’ 측면을 담당했다. 이러한 ‘객관적인’ 태도(집단수용소를 ‘행정’을 중심으로, 죽음의 수용소를 ‘경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태도)는 친위대 정신구조에 전형적인 것으로 아이히만이 법정에서도 여전히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다. [중략] 세르바티우스는 “유골의 수집, 종족 근절, 가스를 사용한 살인,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의학적 문제들”에 대한 책임에 기초한 고소 내용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할레비 판사는 그의 말을 중지시키고 “세르바티우스 박사, 가스 살인을 의학적 문제라고 말한 것은 말실수라고 생각되는군요”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세르바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실제로 의학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의사가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살인의 문제이고, 살인 역시 의학적 문제입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한길사, 2014년, pp129~131]

어제 글에서도 언급했던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한나 아렌트 책의 일부분이다.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어떻게 조직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와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잘 설명한 부분이라 인용해보았다. 제3제국은 잘 알다시피 독일을 비롯한 유럽대륙에서 유대인을 몰아내려 했었다. 그래서 이들은 심지어 초기에 시온주의 세력과 협의하여 팔레스타인으로의 집단이주를 돕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협조적 태도는 그 뒤 ‘유대인 제거’라는 뼈대만 남은 채 보다 악랄한 방법으로 그들을 제거하였다. 행정적이고 경제적이고 의학적인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현대에 들어 인류는 천부인권의 개념 등을 통해 이전사회에서 정당화되기도 했던 각종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이를 토대로 한 도덕적 기준을 세워 제반행위를 금지시켜왔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곧잘 인류역사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조국 또는 여타의 조직을 위한 대의(大義)를 통해 정당화되어왔다. 오히려 인용한 것에서 보는 나치의 행위는 이러한 대의가 현대적인 조직 및 절차에 의해 더더욱 “객관적”이 되어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나치의 전체주의 국가기구에서 사용하는 “관청용어”는 감정이 담긴 표현을 말끔하고 냉정한 용어로 대체했다. 담당자는 일처리만 할 뿐이다. 현대화가 가지는 모순의 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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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Kennedy and Secretary McNamara 1962“.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맥나마라

인용한 구절을 읽으며 생각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S.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였다. 1961년 케네디 前 대통령이 기용하여 린든 존슨 행정부 때까지 장관직을 수행한 맥나마라는 하바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근무하였고, 美육군항공대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장관직 직전에는 포드 자동차 회사의 CEO도 역임했다. 참 이색적인(strange) 경력인 셈이다. 이런 이색적인 경력은 그가 본격적으로 관여했던 베트남 전쟁과 그의 부처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바로 전쟁에 “효율성”, “재무적 타당성”과 같은 비즈니스 분석기법이 결합한 것이다.

그는 국방부 내에 ‘시스템스 분석 기관(Institution of Systems Analysis)’을 만들고 민간인 분석가들을 기용하여 각종 문제에 대한 시스템적 분석을 수행하게 하였다. 그는 군사고문의 조언을 듣는 대신 이들 민간분석가들의 분석을 더 신뢰했다. 그는 방위 상황에 대해 시스템적으로 접근하여 계획적인 예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오늘날 정책분석이라는 독립된 장르로 존재하게 됐다. 이런 군현대화의 공신은 또한 베트남 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통계적 전략에 근거해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고 수많은 지상군을 투입하였다. 결과는 알다시피 그의 “과학적” 분석의 결과와 달랐다.

말년에 맥나마라는 전쟁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고 한다. 그의 고백이 그의 과학적 분석의 결과와 달랐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아이히만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다만 만행에 대한 ‘객관적’ 시스템에 복무했던 아이히만과 달리 맥나마라는 그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달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고백은 더 빨리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또 다른 시사점이 있다면 유대인 학살은 전체주의 시스템에 의해 수행된 반면 베트남인 학살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해 수행됐다는 점이다.

객관성에 대한 절대 신뢰는 모든 정치체제의 적(敵)이다.

‘악의 평범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단초

아이히만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를 분명히 괴롭혔을 결점(경미한 실어증 증세)을 희미하게 깨닫고 있던 그는 사과하면서, “관청용어(Amtssprache)만이 나의 언어입니다”라고 말했다. [중략]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한길사, 2014년, pp105~106]

이 서술은 수백만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과정의 주요한 기여자 중 하나였던 유명한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특징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묘사다. 이스라엘에서의 그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그의 정신을 감정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가 그를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으로 판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는 그가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일을 하고도 정상적인 업무처리였을 뿐이라고 강변하던 이 충실한 조직형 인간에게서 결여되어 있는 무언가를 짚어내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즉, 사람들의 말하는데 있어서의 무능력과 생각하는데 있어서의 무능력함이 깊이 관련되어 있고, 아이히만이 말을 함에 있어 “관청용어”이외에 여타의 다른 표현을 생각해낼 수 없다면 그에게 있어 “유대인 가족들의 끔찍한 죽음”은 단지 “유대인의 수송 및 처리”에 불과할 것이다. 현실의 조직에서도 이러한 “정상적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